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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주 May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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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15.2024

너무 대놓고 날이 날이라. 

선생님들의 날이기도 하고, 세종대왕님과 부처님 탄신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태어난 날.이라.     


...

줄줄이 쓰다 보니 신상정보를 다 쓰고 있길래 다시 지우고 올라왔다.     


...

몇 자 적다 보니 의미 없는 말만 둥실 떠다니길래 다시 지웠다.       

   


작년부터는 나를 소개하는 것이 정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가물거리기에 명확하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문장도 단 하나의 단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나에 대해 더 분명하게 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안다고 착각했던 부분을 계속 깨나 가게 되고, 나는 나를 정말 모른다고 하는 사실만 알게 되어 간다.     


 망망대해에서 파도에 몸을 싣고 무서워하면서도 재밌어했던 어린 나는 이제 잠시 잔잔해진 물결 위에 작은 뗏목 하나 띄우고 아슬하게 앉아있다. 그리고 고요한 물결의 끝에 다가오는 일렁임을 본다. 아마 다시 큰 파도로 변할 것이다. 파도를 견디는 방법은 그 파도를 타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 분명 무섭지만, 어딘가 재밌는 구석이 있었는데, 이제 무서움은 더 크게 느껴지고 재미는 흐릿하다. 혹, 재미를 잃는 것이 나의 본성을 잃는 것 아닐까.      


 어린 시절 쓴 일기장을 펴보았다. 혹시 내가 잃은 것이 여기에 있을까 싶어….

다소 엉뚱하기도 하고 웃기고 싶어 하는 장난기 그득한 모습이 보인다. 선생님이 일기 밑에 써둔 글을 봐도 진짜로 재밌게 읽으신 듯하다. 

 질투심도 많고 감정표현도 솔직하였지만 지금 비난이의 새싹도 보인다. 그 싹이 어린 왕자의 바오바브 나무처럼 클 줄 모르고 장미인 줄 알고 그대로 놔두고 키운 것이 나중에 화를 부를 줄은 몰랐지, 그때는 뽑기 쉬웠을 텐데….

잠자리채를 들고나가서 잠자리는 한 마리도 못 잡고 파리만 잡아도 즐거워하고 계절과 나무, 꽃 이야기와 가정의 불화에 힘들어하면서도 부모님을 걱정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11살에 미술 평론가나 미술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도 적혀있고, 처음에는 그림이 좋다고만 하다가 고학년이 될수록 그림은 못 그리지만 그림이 좋다는 말이 수시로 등장한다. 마음 아프게- 그런 생각이 들게 일조한 사건들도 보이고 귀엽기도 안쓰럽기도 한 어린이가 보인다. 


 어렴풋이 나의 유년 시절 모습이 그려진다. 그 위에 지금 나를 겹쳐 본다. 여전히 같은 것은 무엇이고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일을 맞아 오늘만큼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봐야겠다. 생일 축하한다. 지금까지 살아내느라 고생했고 앞으로 더 고생해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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