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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6.2025

by 한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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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글자

너무 많은 문장

너무 많은 생각

아무것도 못하는 손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입

아무 곳도 가지 못하는 발

감히, 쉽게 다 떨쳐냈다고 입 밖으로 꺼냈다.

더 이상 나는 나를 죽이지도 않을 거고,

그래서 나는 외롭지 않을 거라고.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을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고 나가겠다고.

이제 나는 깨달았으므로...

드디어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나는 여전히 냉동실에서 비닐에 쌓인 베이글을 꺼내고

차가웠던 베이글을 뜨겁게 달궈 모든 것을 올릴 것이다. 무너져 내릴 때까지.

그리고 먹을 수 없어진 베이글을 접시 위에 두고, 멍하게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고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버린 나를 탓하고 세상을 탓하고 억울한 그대로 살아버릴 것이다.

나는 때때로 예쁜 접시에 베이글을 담고 적당한 양의 크림치즈를 발라 맛있게 한입 베어 물 것이다. 신선한 과일과 갓 내린 커피도 함께. 설거지는 쌓아두지 않도록 바로 정리하고, 단장한 나를 데리고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서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느낄 것이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되는 거라고, 용기를 얻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멍한 눈으로 얼룩덜룩하게 데워진 베이글에 온갖 것을 올려두었다.

그 안을 가만 들여다보다가 그대로 비닐봉지에 담아 묶고 다시 냉동실에 넣었다.

눈가가 자꾸만 시큰거리고 살은 간지럽다.

배고프지만 속이 울렁거리고, 나가고 싶지만 힘이 빠지고, 책을 읽고 싶지만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가 오는 것.

비가 오면 대비되는 감정이 없어 모든 감정이 자연스럽다.

지나면 또 괜찮아질 거니까. 하고 믿을 수 있다.


얼마 전 보았던 지렁이가 생각난다.

뙤약볕에 보도블록으로 나와 차마 젖은 땅을 찾아가지 못하고 바닥에 눌어붙은 채 죽은. 여러 마리의 지렁이가 무늬처럼. 거기에 있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을 보았는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냉동실에 가득 쌓인 베이글이 생각난다.

언제고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들을 잔뜩 냉장고에 얼려두고,

나는 펜을 든다.




자꾸만 아파서,

작업도

운동도

먹는 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이 꽤 오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이런 내 모습 그대로 펜을 들 수 있게 한.

‘황정은’ 작가님의 ‘작은 일기’ 작품에 큰 존경과 감사함을 보냅니다.

저의 글과 그림이, 작가님의 작품이 제게 그랬듯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작업은, 한 영화의 오마주 이기도 합니다.

깊은 공감과 감정을 이끌어준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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