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도토리

4월 11일

by 한우주

그러니까 저녁 여섯 시쯤 통영에 도착해서 공연을 보고 아침 여섯 시까지 이야기를 계속한 탓에 낮 열두 시에 깨어났는데도 몹시 피곤하다. 당연한 건가. 그런데 뭔가 축축하다. 피다. 코에서 피가 나고 있다. 급히 화장실 거울에 얼굴을 비춰본다. 아 아니 이건 피곤해서 나는 코피가 아니고 코가 어딘가 걸려 찢긴 부위에서 나는 피다. 뭘까. 하고 돌아서 보니, 새삼 이 집에 고양이가 많구나 싶다. 우리 집에도 큰 고양이가 있는데...

숨어있던 새끼 고양이들도 조금은 익숙해졌는지 누워있는 어미 고양이의 젖을 먹으러 나왔다. 잠깐! 젖을 먹이는 고양이의 앞발이 붉다. 잠든 사이에 이 녀석 저 녀석 번갈아 가며 배를 밟고 다리사이에서 골골 대더니 요 어미 고양이가 이렇게나 귀엽고 살벌한 흔적을 남겨주었구나. 역시 범인은 이안에 있었어! 바로 너!......

탐정 놀이도 잠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젖을 빠는 새끼들을 본다. 정말 있는 힘껏 열심이다. 그렇게 냥멍을 한참 하고 있는데 젖을 빠는 새끼들 중에서 한 아이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하얀 얼굴. 검정 털모자를 쓴 것 같은 무늬가 꼭 도토리 같다. 그리고 또 뭐냐. 제일 못생겼네... 데려가면 장고가 싫어하려나.


“선배! 고양이가 꽤 많네, 새끼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 어- 마음 같아서는 다 데리고 있고 싶은데... 이번에는 입양 보낼까 해, 왜 데려갈래?”

“응. 장고도 외로워하는 것 같고 동생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이름도 지었다. 토리.

저기 모자 쓴 애기 데리러 올게 다음 달에, 아직은 엄마랑 더 있어야 하니까 좀 더 있다가 데리러 올게."

“아이고 그럴래? 그러면 고맙지, 네가 데려간다니까 마음이 편하다. 고맙다.”

“응? 고맙기는 내가 고맙지.”


눈도 뜨지 못한 토리와 짧은 인사, 그 많은 아가 중 처음 이름을 가진 아이.

우리는 다음 달 중순쯤 다시 보기로 하고 시락국을 먹으러 나간다. 반찬이 끊임없이 나오고 부른 배로 해안 길 산책도 하고 아기자기한 카페도 가고 충무김밥까지. 운명 같은 만남을 준 통영의 여행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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