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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25,2022

by 한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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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글을 썼다. 글이 써지지 않아도 글을 썼다. 뭐라도 표현은 하고 싶은데 나의 그림은 아직 끓는점에 닿지 못한 미지근한 물처럼 손끝에서 머물렀다. 글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형태로는 옆에 있는 일상인데 그림은 내게 일상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연필을 잡을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쓰는 행위보다는 그리는 행위를 먼저 해왔는데도, 늘 그림이 훨씬 더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종이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선은 그림을 전공으로 하겠노라 마음먹은 순간부터 더 이상 날지 못했다. 마치 ‘그리는 법’을 완전하게 까먹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돈벌이에 정신이 좀 팔려 있는 동안 마침내 완벽하게 까먹었다. 내가 먼저 등을 돌렸다.
하지만 기어이 붓을 들었다. 붓을 잡은 손등 위에 수많은 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듯 하나의 점도 마음대로 찍을 수 없고 어떤 선도 몰입하여 그려낼 수 없었다.

좌절감.이었다. 나의 유일한 안식처, 내가 아무리 계속해서 떠나가도 돌아갈 곳이라 느꼈던 ‘그림’이 등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붓을 들고 있는 한 캔버스 위에 매분 매초 무명의 눈들이 나를 따라왔고 그것들을 떼어내고 또 떼어내며 더듬더듬 찾아내듯 힘겹게 그려낸 그림은 도무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다시 붓을 들었다 놓았다 들었다 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 올 곳은 여기뿐이었으므로. 시간은 걸리겠지만 다시 몸을 돌려 안아줄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냥 긋고 마냥 칠한다. 툭. 하고 내맡긴다. 태초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간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면 다시 한번 돌아서 안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림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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