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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22.2023

by 한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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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눈앞에 다른 일을 벌여 계속해서 미루고 회피하고 한쪽으로 치워버린다. 하지만 이 녀석은 존재감이 크기 때문에 아무리 숨겨두어도 그 몸집이 드러난다.

그래도 못 본 척 다른 일을 가지고 오고 고개 숙여 코앞만 보려고 할 때는, 하는 수 없이 절벽에 세운다.

아주 가파른 절벽에 저 멀리 아련한 풍경만이 보이는 정말 갈 곳 없는 벼랑 끝에-

‘ 더 이상 도망갈 곳은 없어 ’

그럼에도 너머로 갈 곳이 있지 않을까 사방을 둘러본다.

다른 사람이 열망하는 인생이 보인다.

지금 저 너머에 내 것은 없다.

이제는 뒤돌아서서 내가 열망하는 것을 똑바로 보고 원하고 행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주할 때라고, 정면으로 고개를 들어야 할 때라고, 나아가야 할 길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라고 낭떠러지 앞에 세운다.

그럼에도 보려 하지 않고 도망치려 한다면, 결국 떨어지는 수 밖 에는 없도록.

아마 아직은 믿는 것 같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잠시 앉아 절벽 아래 피어있는 산수유도 보고 원경으로 펼쳐진 산도 눈에 담고, 이건 이거대로 멋있네- 하고 엉덩이 툭툭 털고 일어나 나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라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나의 풍경은 저 멀리 있는 것보다 더 멋있지 않을지는 몰라도 분명히 재미는 있을 거라고 위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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