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5.2023
한 줄을 쓰더라도 일기는 매일 쓰려고 한다. 차마 매일 쓴다고 말할 수는 없지.
초등학교 때는 <새모습 일기장>에, 세상에! 이 글을 쓰면서 새 모습이 ‘새롭다’의 새 모습인 줄 이제야 깨달았다. 정말 가끔 스스로 소름 끼치게 무신경하고 무관심하다. 일단 이 놀라움은 잠시 옆에 치워두고, 하여간 초록색 새모습 일기장에 매일 같이 담임선생님께 보여 드려야 하는 숙제형식의 일기를 썼다. 일기라기보다는 선생님과 필담으로 상담하는 느낌의 일기장이었는데, 등교해서 교탁 위에 일기를 올려두면 종례 시간에는 ‘참 잘했어요’ 도장과 빨간색 수성펜으로 몇 글자가 적힌 일기가 돌아왔다. 그때는 억지로 썼던 일기의 기억이 선생님의 댓글을 기다리는 나름의 즐거운 추억으로 자리한 것을 보니 나쁘지 않았구나 싶다.
중고등학교로 와서는 스케줄러로 하루의 일과를 확인하는 형태의 일기로 바뀌었다. 반성과 다짐으로 꽉 찬, 가장 감정을 살폈어야 하는 시기인데, 모든 감정을 배제한 일기를 썼다. 이 시기를 버티고 나면 답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경주마처럼 내달렸던 사투의 흔적만이 있는 일기였다.
스무 살부터 스무 살 중후반까지는 ‘느낌 장’이라는 형태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그때 느낀 감정이나 아이디어를 기록하기 위해 한 손에 잡히는 메모장에 단편으로 기록했고, 대부분 작업의 주제로 쓰였다. 사람들의 친목과 일로 가득 찬 이십 대에도, 십 대와 마찬가지로 감정보다는 일의 생산성을 내기 위한 용도로 일기를 대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가장 시끄러운 순간을 맞이했고, 몸은 이곳에 있었지만 영혼은 길을 잃었다. 궁지에 몰리자, 드디어 현재에 살고 감정에 솔직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쓰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모두가 알고 있는 일기의 순기능인 하루의 기록, 반추를 통한 반성과 다짐 그리고 고마움. 이외에 내가 일기를 쓰는 중요한 이유는 삶의 객관화와 과거의 현명한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는 내가 주관적인데 객관화를 시킨다는 말이 어불성설일 수 있겠으나, 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객관성을 강하게 띄게 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그렇다. 그래서 일 년 정도 숙성한 일기는 이상한 힘을 갖게 되는데 이때는 장자와 아리스토텔레스 버금가는(느낌적인 느낌) 통찰력으로 현재의 나를 관통한다. 그런 문장을 만났을 때는. 하- 이 맛에 일기를 쓰지 싶다. 정신 못 차리고 허우적거리는 나를 구해내는 것은 외부의 것이 아닌 결국 ‘나’이다. 과거 일기 속 내 모습보다 지금이 더 별로 이거나, 그때와 비교해 전혀 새 모습이지 않다면 그 역시도 큰 가르침이 된다. 가끔은 오~ 그래 이런 생각을 할 줄 아는 나인데 벗어날 수 있어, 해낼 수 있어!라는 실낱같은 희망도 얻게 된다.
매일 쌓는 일기는 끊임없이 외면하던 나와 ‘직면’할 수 있는 계기, 사이 안 좋던 나와 ‘대화’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이윽고 잃어버린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용기 내어 세상에 내보냈던 첫 글이 일기에서 시작된 만큼 오늘은 일기 찬미의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여전히 대부분 쓰기 싫다. 마치 운동 가기 전처럼. 씻기 전처럼. 하지만 아이- 다 알지 않나. 결국 쓴 게 몸에는 좋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