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듯이

나도 그러지 않을 거야.

by 한우주

양치를 해도 설거지를 해도 빨래를 개고 책을 읽어도 뭘 해도 네가 떠나질 않는다. 허전하다고만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하고도 낯선 감정이 온몸에 내려앉는다. 그래도 밥은 잘 들어간다.

잠자리에 누워서는 휴대폰을 손에서 뗄 수 없다. '고양이 당뇨', '고양이 당뇨 관리', '고혈당', '저혈당', '쇼크'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한다. 여러 이야기들이 위안이 되기도 더 큰 불안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밤은 지나고 장고를 얼른 데리러 가고 싶은 마음에 시간도 보지 않고 서둘러 집에서 나와 버렸다. 병원에 주차를 하고 시계를 보니 바로 들어가기엔 민망할 정도로 이른 시간이라 근처 카페에서 마음을 진정시켜 보기로 한다. 고소한 커피향기와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의 소음이 나름의 안정을 준다.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커피 한잔을 두고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앉아 책을 읽는다. 그래도 조급한 마음은 감출 수 없고 결국 퇴원 한 시간을 남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앉아 초조함에서 벗어나 보려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어보지만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듯 모든 신경은 처치실 문에 쏠려있다.

퇴원시간을 조금 넘긴 시각. 담당의사가 나를 부른다. 진료실로 들어가니 이동장 안에 힘없이 누워있는 장고가 의사의 손에 들려 나에게로 온다. 장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하고는 억울하다는 듯 운다. 나도 같이 눈물이 핑 돈다.

의사가 전달하는 이런저런 주의 사항을 여러 번 확인하며 빼곡히 적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량 정시인데, 정시에 정량을 먹고 정량의 인슐린을 맞는 것이다. 하루에 두 번 오전 9시와 오후 9시로 시간을 정했다. 그리고 혈당을 계속해서 체크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3시간마다 확인해서 혈당 곡선을 그려봐야 한다고 하셔서 입원했을 때 '리브레'라는 연속혈당측정기를 장고의 등에 달았다. 이 신기한 기계는 휴대폰에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등에 단 장치를 스캔하면, 따로 피를 내어 혈당 체크를 해볼 것 없이 바로 혈당을 알 수 있다. 최대 2주까지 밖에 장착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 기계 덕분에 가장 두려웠던 부분인 채혈의 부담을 덜었고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내가 수시로 스캔해서 어플에 올린 자료는 병원에서도 공유할 수 있다고 하니 뭔가 장고를 위해 원팀이 된 느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슐린 주사를 놓는 것까지 배웠다. 자, 이제 이 주간 잘 돌보며 인슐린이 잘 작용하는지 혈당 곡선을 그려보며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고 안정되는 지점을 찾으면 된다. 힘내볼 테니 같이 잘해보자고 괜히 씩씩하게 주치의에게 너스레를 떤다. 장고와 차에 타서도 우린 잘할 수 있어 힘내자며 계속 집에 도착할 때까지 주문을 외듯 소리쳤다. 생각해 보니 장고 피곤한데 시끄러웠겠구나 싶다.

집에 도착해서 장고를 꺼내주었더니 비틀비틀 걷다가 힘없이 바닥에 눕는다. 어제부터 이틀 동안 먹은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지 병원에 다녀오더니 더 환자가 된 것 같다. 그런데도 밥을 바로 줄 순 없다. 우리는 이제 9시. 가 약속된 시간이다. 눈을 질끈 감고 장고를 외면한다.

병원에서 아이스팩에 챙겨 온 인슐린을 흔들리지 않게 조심히 냉장고에 넣고 주사기와 소독솜을 넣을 상자를 스티커로 꾸며 한쪽에 잘 놓는다. 소파에 장고자리를 마련해 주고 나도 그 옆에 매트를 깔고 자리 잡는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장고를 추적관찰 할 표를 만들며 마음을 다잡는다.

'장고가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거나 연민하지 않듯이 나도 이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일 거야.' 하고.

하지만 이런 비장함이 너무 과했는지, 나는 이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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