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계>로 이해하는 중국이야기

3. 색과 계의 경계

by 발길 가는대로

소설 <색, 계>는 이미 1950년에 탈고된 상태였지만

정작 발표는 29년이 지나 1979년 타이완의 신문 <中国时报·人间副刊>에 발표되었다.


이렇게 29년이 지나 발표된 이유는

소설의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또 자신에게 내막을 알려준 후란청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세상에 소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후란청은 1981년 75세의 나이로 도쿄에서 죽었다. 당시의 국적은 타이완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장아이링의 소설이 모두 30여 편에 이르고 인기를 끌었지만 그동안 영화로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리안 감독은 달랐다.

2_리안.jpg


리안 감독에 대한 소개는 끝없이 할 수 있지만 특이한 점 하나만 소개하고 싶다. 그가 발굴한 신인 배우는 반드시 크게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섹스 앤 센서빌리티>에서 캐스팅한 신인배우 게이트 윈슬렛은 그 후 <타이타닉>으로 인기를 얻고 <더 리더>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와호장룡>에 캐스팅한 신인급 배우 장쯔이는 현재 할리우드를 넘나드는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했고,

별 볼 일 없던 중국 드라마의 조연급이었던 탕웨이를 <색, 계>에 출연시켜 오늘날 중화권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리안 감독의 이러한 창작 능력은 <색, 계>를 구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더러운 창녀의 얘기라는 세간의 비평이 있을 정도로 빈약한 단편 소설이었지만

욕망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고자 했던 장아이링의 생각을 자신의 시각으로 재구성했다.


그가 만들어 낸 주제는 색, 色, LUST - Sexual Desire, 정욕, 욕망으로 드러내고 계, 戒, CAUTION - Carefulness, 조심, 신중, 경고를 담아 영화 속에 매끄럽게 녹여내었다.


그리고 일부 비평가들이 혹평했던 두 남녀의 섹스 장면은 체모가 드러날 정도로

- 거의 강간 수준으로 진짜 행위를 하는 것 같이 리얼하게 연출했다.


불과 1분 정도의 러닝 타임이지만 리안은 이 1분을 위해 무려 11일 간이나 촬영했고 이로 인해 배우는 물론 스태프들도 녹초가 되었다고 한다.


훗날 탕웨이는 촬영을 마칠 때마다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초주검 상태였다고 하고,

량챠오웨이는 촬영 이후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으로 심한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했다.


(우스개 이야기지만 영화를 본 중국의 청년들이 두 주인공의 섹스 장면을 구현하다가 숱하게 골절 부상을 입었다는 얘기가 인터넷에 나돌았다)


처음으로 이 영화를 접했을 때는 단순한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두 주인공의 섹스 장면은 영화를 반복적으로 보았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3차례 계속 다르게 진행되는 섹스 씬이 단순한 남녀의 액정 행각이 아니라 소설과 영화의 제목처럼 色과 戒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뒤엉켜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1942년 상하이의 부유한 집 골목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골목 곳곳에는 중절모를 쓴 기관원들이 총을 들고 상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곧이어 4명의 부인이 마작을 하며 씨잘데기 없는 수다를 떨고 있다.

마작은 비싼 상아로 만든 것이었고

카메라는 언뜻 봐도 비싼 치파오를 입은 부인들이 모두 굵은 다이야 반지를 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찌아즈는 비취반지를 끼고 있다.

마작1.jpg 마작을 하는 부인네들

원작 소설 <색, 계>는 바로 이 마작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麻将桌上白天也开着强光灯,洗牌的时候一只只钻戒光芒四射。”

(마작 테이블에는 낮에도 강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마작을 섞는 손가락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빛을 발하고 있다)


집에 도착한 량챠오웨이는 이선생으로 불리는데

여기서 이선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李先生이 아니라 易先生이다. 그

의 이름은 이모청(易默成)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이모청(易默成))이라는 이름은 76호의 실존 인물 방첩대장 딩모춘(丁默邨)과 자신의 연인이었던 후란청(胡兰成)의 이름에서 각 한 글자씩 떼어온 것이라고 한다.


또한 탕웨이(湯唯)는 막부인(麥太太 마이타이타이)로 불리는 것으로 보아 이미 결혼한 유부녀임을 알 수 있다. 이선생과 막부인은 서로 수상한 눈짓을 교환한 후에 마작판을 떠난다.


이어서 막부인은 상하이의 번화가 난징루(南京路)의 어느 카페로 들어간 다음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전화기의 반대편에는 젊은이 몇 사람이 뭔가 행동을 시작한다.


리안 감독은 당시의 난징루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했으며 출연 배우들은 완벽한 상하이 방언을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또한 부인네들의 마작판 촬영을 위해 배우들에게 마작을 완벽하게 익히도록 7일 동안 붙들어 놓고 훈련시켰는데, 마작을 죽자고 연습하던 부인네들은 훗날 마작에 재미를 붙여 촬영 도중에 시간만 나면 마작판을 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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