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화일까?
유튜브에 올려진 예고편 영상부터 감상하면
https://www.youtube.com/watch?v=q3t-I-qZpm4
영화 <연인, The Lover, L’Amant>의 원작자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1914년~1996년)는 필명이고 그녀의 본명은 마르그리트 도나디외(Marguerite Donnadieu)이다. 아래 사진은 그녀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영화 <연인>은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생애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1914년생인 뒤라스는 당시 프랑스령 식민지였던 베트남의 사이공 인근 사덱(Thành phố Sa Đéc)의 작은 동네 Ke Hoach Hoa Gia Dinh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식민지 지배층인 프랑스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현재 구글맵으로 검색하면 사이공(현재의 호찌민) 공항에서 서남쪽으로 140km 지점에 있는 메콩강 강변의 마을이다. 자동차 이동거리가 3시간 정도 소요되는 되는데, 아마도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듯...
영화와 같이 그녀에게는 오빠와 남동생이 있는 집안의 외동딸이었다. 부모가 모두 교사였는데 그녀가 7살 무렵에 부친이 병으로 죽어 모친이 가족을 데리고 프랑스로 갔지만 10살 무렵에 다시 가족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이 무렵 그녀의 어머니는 부동산 투자에 실패하여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아마도 이때의 궁핍한 경험이 그녀를 작가로 만들었던 것 같다. 사업에 실패한 그녀의 모친은 다시 인근 마을 빈롱(Vinhlong)으로 이사했다.
당시 빈롱에는 프랑스의 식민지 총독이 전임지 라오스를 떠나 막 부임을 했는데 그가 라오스를 떠나자 라오스의 젊은 애인이 자살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우연히 이 소문을 듣게 된 뒤라스는 '나는 그녀의 자살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라고 회고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성적 공포와 남자에 대한 두려움을 알지 못했다. 설사 남자에게 원하지 않는 강간을 당한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 정말 우연히 중국인 애인이 생겼고, 그것이 사랑인 줄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모친이 투자한 땅은 쓸모없는 땅이었다. 모친은 땅으로 밀려드는 바닷물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오히려 심각하게 건강을 해치고 말았고, 극도로 어려워진 재정상태 때문에 어린 뒤라스는 열대우림에서 헤매며 세상의 불공평에 대해 광기에 사로잡힐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가 어린 시절 겪었던 이러한 두려움, 절망, 소외감은 영화와 소설 속에 그려지는 처절한 에로티시즘과 죽음이 연상되는 내레이션이 겹쳐져 그려지고 있다.
프랑스 총독의 애인이 자살했다는 소문은 그녀에게 작가가 되는 동기가 되었다면 그녀가 가족과 함께 겪었던 가난과 갈등은 그녀가 쓰는 소설의 어두운 배경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1931년, 그녀가 17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가족은 다시 프랑스로 이주했고, 다음 해 다시 사이공으로 돌아왔지만 1933년 다시 프랑스로 가서 대학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1938년 학업을 마친 후 다시 식민지 정부를 위해 일하던 중에 대학에서 사귀었던 로버트 앙텔메(Robert Antelme)라는 작가 결혼했다.
1943년 첫 소설을 출판할 때 부친의 출신 마을 이름 '뒤라스'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후 그녀는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단편 소설 등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나이가 70세가 된 1984년에 완성한 소설 <연인, The Lover>이 히트 작품이 되어 43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고 마침내 1992년 영화 <연인>으로 각색되었다.
당시 그녀의 소설 출간은 거의 기적적인 결과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1982년부터 심각한 알코올 중독으로 폐기종 합병증을 앓고 있었고, 1988년의 경우 거의 5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기적적으로 깨어난 그녀는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았고, 목에는 어쩔 수 없이 은색 단추가 달린 철사 목걸이를 하고 살아야만 했다.
그녀가 쓴 소설 <연인>은 두 개의 버전이 있다.
하나는 어린 소녀가 내레이션을 하는 자전적 스토리이고 (이 버전이 영화화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1991년 발표한 <북중국 애인 The North China Lover>이라는 제목으로 3인칭의 영화 대본 형태로 쓴 것이다.
1992년 8월 29일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주간지 <파리 마치 Paris Mstch>에 뒤라스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뒤라스가 과거 자신이 사귀었던 중국인 남자 친구를 공개한 것이었다. 남자 친구의 이름은 후인 투이 레(Huynh Thuy Lê) 이다.
하지만 그녀가 사귄 남자가 실제로 돈 많은 집안의 청나라 귀족 출신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녀의 기숙사 동창생이 밝히기를 '그녀가 어느 날 다이아몬드 반지를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지의 출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고 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녀의 집에서 가정부를 지냈던 사람은 '당시의 시대적 환경에서 프랑스인이 중국인 남자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또한 소설과 영화에서 그려지는 타락한 그녀의 가족(어머니, 오빠, 남동생) 모습은 전혀 아니라고 했다.
그녀의 가족은 매주 일요일마다 미사를 빠지지 않았고, 그녀가 다닌 기숙학교의 교사는 그녀의 모친을 훌륭한 교사였다고 증언했다.
그녀의 남자 친구 후인 투이 레(Huynh Thuy Lê)가 살았던 저택은 지금도 베트남에 존재하고 있다.
사이공에서 남서쪽으로 140km 떨어진 이곳은 현재 관광 명소가 되어 있다. (Tp.Sa Dec, 구글맵에서 Huynh Thuy Le old house로 검색하면 나온다)
영화에서 그녀의 가족과 남자 친구가 함께 식사한 후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돈을 요구하는 장면은 그녀의 몸을 파는 대가가 아니라 그녀가 다시 프랑스로 출국하는 비용 문제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녀가 과거 어떤 형태로 인터뷰를 했든지 간에 1996년 그녀가 사망한 후에 발견된 그녀의 수첩에는 그녀의 남자 친구가 중국인이 아닌 베트남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베트남인의 경우 프랑스인, 중국인 다음으로 낮은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베트남인을 남자 친구로 두었다는 사실은 당시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또한 그녀의 베트남인 남자 친구는 천연두로 인해 얼굴이 심하게 다쳐 있었고 (하지만 옷은 매우 부유스럽게 입었다고 한다) 사귄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