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놀이

by 이수연

-머리 너무 예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앞머리가 예쁘게 잘려있다. 목욕탕에 갔다가 처음으로 이발소에 가본 것이다. 머리가 한결 가볍고 층이 많아졌다.

-이발소 아저씨가 어디 미용실에서 잘랐어? 물어보셨어.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엄마가 잘라줬어요,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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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가 태어나고 돌이 지나자 남자아이들의 머리는 생각보다 빨리 자랐다. 산꼭대기 빌라에서 돌쟁이 아이들을 데리고 미용실까지 가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릴 때 아이들은 ‘미용실 놀이’를 무서워했다. 큰 욕실에 욕실 의자 위 아이를 앉힌다. 쿠팡에서 간단한 미용도구를 샀지만, 날카로운 가위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미용가위를 사지 않았다. 집에서 가장 작고 뭉툭한 분홍색 어린이 가위가 미용가위가 되었다. 그 선택이 십 년이 되도록 이렇게 유지가 될 줄이야, 내 뭉툭한 엄지가 늘 위태롭게 손잡이에 걸쳐져 있다. 두 아이는 이란성쌍둥이답게 모질도 다르고 숱도 다르다. 숱이 많고 두꺼운 아이의 머리를 자르기에 꼬마 가위가 버거워 보인다. 미용실에 가는 것이 두려웠던 첫 번째 이유는, 조리원 동기방에서 미용실 후기를 들을 때마다 저 오열하는 소리를 미용사와 함께 또 듣는다는 거구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차가운 욕실에서 속옷만 입고 가운을 입는 그 자체를 싫어했고, 무섭다면서 끝나기 전까지 내내 울었다. 나는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서 가장 짧은 시간에 미용을 끝마치기 위해 아이 주변에 쪼그리고 앉아 빙글빙글 서둘러 돈다. 아이들이 자라자 우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재촉은 더 심해졌다. 기장을 자르고 나면 숱가위를 꺼내든다. 아이들이 ‘악어가위’라고 부르는 그 가위. 날카롭다고, 생긴 게 무섭다고 멈추었던 울음이 다시 터지기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클리퍼로 뒷머리를 조심조심 다듬는다. ‘잉’ 소리를 내는 이발기는 방심하면 깊게 머리에 구멍을 낸다. 마치고 나면 가장 마지막은 앞머리다. 이건 내가 무섭기 때문에 늘 마지막인데, 지난 십 년간 두 번 크게 망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놀릴 거라며 등굣길에 나 안 보는데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뒤로 앞머리는 초긴장 모드다.

-얼굴 찌푸리지 마, 눈에 머리카락 들어간다.

매번 이야기하지만 한결같이 찌푸리는 얼굴을 스퍼진로 털어낸다. 그리고는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다시 다음 아이와 같은 과정 반복한다.

-이발소 아저씨가 엄마가 미용기술을 따로 배운 적 있느냐고 물어보셨어.

-진짜?

-응, 엄마가 그렇게 이상하게 자르지는 않았나 봐. 나름 잘했나 본데?

그렇지. 지난 십 년간 계속 잘랐으니까.

아마도 알게 모르게 늘지 않았을까.

내가 하는 일들이 약간은 다 그렇지 않았을까?

무얼 알고 하는 것도 아니고 배웠던 것도 아니고.

그저 하다 보니 익숙해진 것들.

당장 필요했기 때문에 주먹구구식으로 시작하게 되었던 일들은 늘 처음에는 등에 땀이 날 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편해져 버린 일들.

그 모든 게 항상 처음은 닥쳐서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다.

유치원까지만 해도 도토리 머리는 귀여움으로 모든 것이 용서가 되었다. 앞머리를 일자로 자르는 모양이었는데 예민하지 않은 수더분한 두 꼬마에게 그 머리는 적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부쩍 또래보다 커버린 아이들의 키만큼, 도토리 머리는 더 이상 용납되지가 않았고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요구가 시작됐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앞머리에 다양한 층을 요구하기도 했고, 가끔은 ‘고급스럽게’라는 이상한 단어를 가지고 와서 주문을 하기도 했는데,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도토리머리에서 조금 진화해서 약간의 층을 조심조심 앞머리에 두는 것. 최근 몇 년은 나도 미용실에 가지 않고 있다. 예약을 하라던가, 가서 기다리는 시간 같은 게 아까워서 그냥 기르다 보니 머리가 길어졌는데, 집에 있는 가위로 대충 자르고 지내다 보니 더 이상 미용실에 가지 않게 되었다. 염색도 펌도 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그냥저냥, 가끔은 삐뚤 삐뚤 한 채로 머리끝이 거칠어지면 그냥 쳐내면서 지낸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내 관자놀이를 근처로 흰머리가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며칠 전 가만히 앉아 있는데 하늘이가 대뜸 작은 가위를 들고 온다.

-엄마, 흰머리 있다!

-어, 많아?

-골고루는 아닌데,... 여기 조금 모여 있어.

-잘라줘.

-내가?

-응

하늘이는 흰머리 근처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가장 짧은 길이로 잘라내고, 나에게 잘라낸 것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보여준다. 생각보다 잘 찾고 골라내서 놀랍기도 하고 내심 감동이었다. 끝나고 일어나 보니, 검정머리가 옆에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잘린 것은 흰머리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너를 완전히 믿은 내가 잘못이지.

그래도 다음번에도 흰머리가 많이 보이면, 또 아이들 앞에 앉아서 믿고 맡겨볼 것 같다. 머리 좀 구멍 뚫리면 어떤가. 티도 잘 안 나는데. 나려나?

기분이 묘했다. 내가 너희를 키우는 걸까? 너희가 나를 키우는 걸까? 검은 머리까지 이렇게 잘라버리면 어쩌냐고 짜증을 내며 내심 웃겼다. 오늘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희와 지내며 하나씩 천천히 배워가는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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