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나에게 꿈이라는 것은 거의 매일 찾아오는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할 때가 많지만 요즘 꾸는 꿈들은 조금 무시하기가 힘들었다.
어제는 친구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등과 팔에 총을 맞는 꿈을 꾸었고 누가 쏘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꿈속에서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병원에 실려 가는 건가 그러면서 꿈에서 꺴다.
보통 꿈을 꾸고 이렇게 왜 그랬을까 생각을 잘 안 한다는데 어떤 꿈은 여운이 며칠이 간다.
그리고 오늘은 모델 한혜진이 나왔다. 연예인이 가끔씩 등장하기는 하는데 공통점이 다 초장신 연예인만 나온다는 거. (취향인가..) 문제는 한혜진이 나왔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혜진의 집에 내가 몰래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꿈속의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내가 몸이 작아 작은 구석에 숨기가 편했고, 장난기가 넘치는 상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혜진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 내 꿈에 찾아와 크고 넓은 휑한 집을 지었다. 그리고 어떤 널찍한 방을 쓰지도 않은 채 문도 잘 열어보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 방은 창문도 크고 해도 잘 드는 방이어서 나는 그 방에 숨어서 살기로 했다. 심지어 남의 집안에서 창문에 커튼도 달고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리모델링 같은 것을 하기도 했다. 무심한 주인은 (한혜진으로 나왔지만 한혜진이 아닐 것이 분명한) 내가 자신의 집속에 기생충의 가족처럼 몰래 방을 점거한 것도 모른 채 같이 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무심히 지나갈 때마다 그 방 너머에 숨어 키득거리며 신나 하고 재밌어했다. 동시에 들키면 얼마나 크게 혼날까 무섭기도 했다.
왜 하필 등에 총을 맞았을까?
다른 부위도 아니고. 팔에도 맞다니.
아이들과 동물농장을 보는데 아이바오도 육아하다 한계에 다다르니 푸바오의 등짝을 퍽퍽 떄리는 모습을 보고 신기했다. 동물도 무의식적으로 아는 걸까, 직관적으로 등이 잘못을 깨우치게 하면서도 비교적 자존감을 건드리지 않은 안전한 부위라는 것을.
그런데 팔은 좀 기분이 안 좋았다. 병원에 실려가면서도 팔이 돌아가면서 내 몸에서 분리되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아야 했다.
팔은 소중한데. 팔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에게 팔과 눈의 상실은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 중에 하나일 것이다.
왜 팔은 그렇게 많이 다쳤던 것일까?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에 어떤 식으로 위기가 온 것일까.
집에 관한 꿈은 엄청나게 자주 꾸기 때문에 내 책에 등장하고는 하는데, 타인에 집에 숨어 들어가서 방을 꾸미는 발칙한 어린이가 되는 꿈은 처음이라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꿈속의 집은 나의 마음상태를 보여줄 때가 많았다. 적어도 그 집이 나의 집이라는 전제에서.
그런데 이번에는 타인의 집이었다. 그게 마음에 걸리고 불편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해는 참 따뜻했고 나는 계속 웃고 있었다. 왜 하필 꿈속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철없는 어린아이였을까?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또 생각이 멈추었다.
나의 영역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에서 새롭게 확장되어 가는 것일까. 아니면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일까.
이런 대수롭지 않은 꿈들도 시간이 지나서 생각하면 거리가 벌어지면서 더 정확하게 읽힐 때가 있다.
세상에는 이런 것으로 글을 쓰고 기억해 두고 십 년 가까이 지나서 그걸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이런 이상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우선은 저장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