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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L 동문회에 가보다.

12년 만에 처음 가보았다.

by 이수연

Official UAL Alumni Korea 런던 예술대학교 공식 한국 동문회에서 매년 이메일로 초대장은 보내주셨으나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해가 처음이었다. 내가 졸업한 Camberwell 학교 자체가 한국인이 잘 선택하지 않는 학교이기도 하고, 항상 코스에 한 명 정도였다니, 동문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분홍색 초대장을 보고 이번해는 한번 가볼까? 혹시 여러 학교 중에서 캠버웰 학생을 만날지도 모르잖아, 그런 생각이 든 것도 며칠 전이었다. 집에서 그래픽 노블 붙잡고 있다가 음악 들으면서 방심하며 영국대사관을 찾아가다가 영하에 날씨에 길에서 30분을 넘게 헤맸다. 한쪽 입구가 최근에 막혔을 줄이야, 네이버 지도를 믿지를 못하겠다. 가보니 예상대로 갓 졸업한 20대가 제일 많았고, 대학원을 마치고 온 30대들, 아무리 물어보고 다녀도 내가 제일 졸업 연도가 빨랐다.

드레스 코드가 레드라서 빨간 드레스를 꺼내놓았었는데, 온도를 보고 결국 나다운 검정옷을 꽁꽁 안에 껴입고 갔다. 빨간 구두를 신고 갈까 하다가 굽이 있어서 포기하고 갔는데, 그러기를 잘한 것 같다. 어젯밤은 너무 추웠다.


행사장 맨 첫 줄 왼쪽 자리에 앉았다. 다들 초면이라 어려운지 너무 조용해서 말을 걸기도 애매한 분위기였는데 다 그런 생각하고 있겠지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 매우 어려 보이는 청년이 앉아 있었다. 언제 졸업했는지부터 물어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참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왜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지, 요양사 자격증과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과정,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가지고 싶어서 한국 군대를 선택하게 된 과정 같이 막상 써놓으면 문장일 뿐이지만 그 어떤 것 하나 쉽게 쉽게 행동으로 삶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가능한 피하고 싶은 귀찮은 과정일 텐데 일부러 무언가를 더 알고 싶어서 한 선택들이 대단해 보였다. 4년 만에 한국어를 공부한 게 지금 수준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데 대화 내내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어서 더욱 놀라웠다. 다중언어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정말 얼마나 재밌을까? 런던에서 패션과 머천다이징을 전공하고 있다는 나와 스무 살이 차이나는 분과의 대화는 길지는 않았지만 잠시 여러 세계를 여행하고 온 것 같은 기분 좋은 혼란을 주었다. 일찍 와서 맥주박스 나르는 거 도와줬다고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끝날 때 보니 동문회 임원이 되신 듯하다. 나는 일 년에 분기별 오프라인 모임이 부담스러워서 포기했다.)


나에게 캠버웰 파인아트를 나온 분을 한분 안다고 소개해 주셨고 그것을 계기로 우리는 하나 둘 희귀한 캠버웰 졸업생 찾기를 시작했고 어제 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네 명의 동문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들은 하나같이 이게 얼마나 만나기 힘든 조합이기를 알기에 진심으로 반가워했고, 아직 대학원 과정을 고민하고 있는 분도 있고 졸업 후에 전혀 다른 일을 하고 계신 분, 사진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분과 첼시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하신 이규선생님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졸업 후에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나는 같은 전공을 했던 작가들이 어떻게 작업을 멈추는지, 계속하고 있는지를 지켜보게 되었다. 새로운 작업을 보여주고 활동하는 동기가 전체 40여 명중에서 손에 꼽게 남았다. 졸업 후에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고 책을 낸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 맞는 것 같다. 정신적으로 제일 힘들다. 나도 그런 시기가 길게 있었기 때문에 그리던 친구가 더 이상 그리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조용히 마음속으로 응원을 하고 있다. 그 모든 과정에 다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섣부르게 끝났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동문들과 서로서로 연락처와 인스타를 맞팔하고 캠버웰 동문 채팅방을 만들었다. 솔직히 온다고 생각해도 이런 만남은 기대를 못했는데, 돌아가는 길이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잠을 별로 못 자서 너무 피곤해서 오래 남는 뒤풀이는 가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돌아가면서 제일 이야기를 길게 한 분에게 '멋진 분'이라고 웃으며 인사하고 나왔다.

내년 동문회에서 또 모두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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