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결 방법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by 이수연



요즘 약간 거슬리는 고민이 있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 고민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리가 복잡해졌다. 머릿속이 지배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결국 불쾌해졌다.


어제 보니 아이들의 머리가 뒷머리는 단발머리가 되려고 하길래, 춥다 싫다 하는 얘들을 욕실에 앉혔다.

내 검정패딩은 머리카락이 잘 안 낄 것 같아 보여서 (실제로 그랬다) 무릎 위로 둘러주고 윗도리는 미용실커버로 덮어주었다. 지난 8년간 항상 내가 머리를 잘라주었기 때문에 둘의 머리는 항상 똑같고 아이들의 또래에 비해 조금 유치하다. 우리는 그 머리를 도토리 머리라고 한다. 어제는 마음을 먹고 아이들이 싫어하는 악어가위 (숱 치는 가위인데 악어이빨처럼 생겼다.)로 앞머리를 1.5센티 아래쪽부터 숱을 쳐보았다. 너무 깊게 치면 이빨 빠진 앞머리가 되기 때문에 초집중해서 아이들의 여리여리한 앞머리를 다듬었다. 충전 배터리의 문제인지 작동이 잘 안 되는 이발기는 선을 연결하자 짤뚱해져서 움직이기 불편했고, 춥다고 징징대는 아이 의자를 옮겨서 뒷머리와 옆머리를 다듬었다.

찡그리지 말고 얼굴을 펴야 머리카락이 끼지 않는다고 눈을 감고 웃으라고 했다.

스펀지로 얼굴을 터는데 웃는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이럴 때 보면 세상 천사들이 따로 없다.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 같으면 바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추우니까 얼른 몸을 닦아주고 샤워가운을 입히고 머리를 타월로 초벌 말리기를 하고 드라이기로 얼른 말려줘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한 명당 10분을 넘어가면 생짜증을 내기 시작하기 때문에 나는 초긴장 상태로 아이들 입에서 춥다는 말이 두 번 이상 나오기 전에 이 모든 과정을 끝낸다.


한 아이가 끝나자 단발머리가 돼 가는 두 번째 아이가 들어온다.

어쩜 쌍둥이인데도 이렇게 머리카락 나는 것도, 숱도, 곱슬 기도, 머리가 자라는 속도도 다 다를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비슷한 머리에 비슷한 덩치에 닮은 쌍둥이겠지만, 내 눈에 이 둘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다르게 생긴 오묘한 조합이다.

유독 더 짜증을 내는 두 번째. 참 신기한 게 머리카락이 더 가늘어서 그런가.. 기름도 더 잘 끼는 것 같고 신기하게도 샴푸하고 나서 말리면 머리가 그렇게 빤짝거리고 찰랑거린다. 어쩜 이렇게 다 다를까.

같은 과정을 거쳐서 둘을 옷을 입혀두고 나는 가위들과 이발기를 창가에 건조해두고, 창문을 활짝 열고, 더운물이 나오는 샤워기로 머리카락들을 물청소하기 시작한다. 둘을 자르면 제법 머리카락이 쌓인다. 앉았던 의자도 닦고, 내 패딩도 탈탈 털고 솔을 들고 타일 사이사이에 낀 물때도 겸사겸사 씻어낸다.


그리고 거실로 돌아오니 새삼스럽게 아이들의 갑자기 조금 자란 얼굴과 짧아진 머리로 낯설어진, 동그랗게 정리된 둘이 나를 바라본다. 빨갛고 조그만 입술이 피자가 먹고 싶다고 중얼 거린다. 아래층 내려가서 대충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어서 구워 올라오는데 이렇게 저렇게 한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한 시간 동안 고민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늘 이렇게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사랑하는 것을 돌보고 아끼고 바라보면 그런 고민들 같은 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아이들 손가락을 하나하나 붙잡고 손가락 살을 손톱과 반대쪽으로 바짝 당긴다. 그리고 작은 가위로 동그랗게 아이들의 손톱을 자른다. 손의 크기가 손톱의 크기가 매번 느낌이 다르다. 정말 빨리 큰다.

언제까지 나에게 이렇게 달콤하고 나른한 마음의 평화를 줄거니? 언젠가는 너희들이 모든 걸 혼자 해내고 그러는 순간들이 올 때, 나는 고민에 짓눌릴 때 어디에 마음을 쏟고 다시 평안해질 수 있을까.

이만큼 무언가를 또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너희들의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큰 구원인지 새삼 깨닫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왜 9년 동안 못 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