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개꿈을 기록하자
하얀 벽이 눈부시게 빛났다. 창문이 많았고 지붕이 없는 듯 해가 눈부시게 드는 집이었다.
하지만 그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의자 하나도, 싱크대도 없는 맨숭맨숭한 흰 벽이 이상했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평소 좋아하고 존경하는 친구 부부가 옆집에 살고 있었다. 친구와 친구의 남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나보고 언제 이사 왔냐고, 집이 왜 저러냐는 듯 쳐다보았다. 그래도 늘 그렇듯 둘 다 표정이 좋았다. 그래서 꿈속에서 우리들은 집이 왜 저러지? 그러면서 같이 깔깔 웃었다.
그러고 나서는 나는 어딘가에 생뚱맞게 바지를 사러 갔다. 처음에는 마트라고 생각했었는데 걷다 보니 나는 점점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옷들을 뒤지기 위해서였는데, 들어갈수록 그 건물은 지하로 깊이 들어가 있는 낡은 집이었다. 그 집안에 싱크대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가구 마감재료인 옥색 필름지가 발라져 있었다. 어떤 층으로 내려가자 필름지가 세월이 지나서 조금 벗겨지다 못해 동그랗게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다. 왠지 만지면 끈적끈적할 것 같았다. 그 난해한 집은 지하 7층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반쯤은 길을 잃은 기분으로 정리되지 않은 어두운 지하집의 기괴한 민트색을 둘러보았다. 바퀴벌레가 어디서 튀어나올까 긴장하면서 나는 내 양팔을 감싸 쥐었다.
필름지를 싫어하는 이유는 진짜 그 재질이 아닌데 무늬로 얄팍하게 흉내 낸 그 가짜 이미지가 싫다. 그리고 시간이 몇 년만 지나면 벌어져 버리는 그 약한 물성도 싫다. 예전에 가구 영업을 할 때 수많은 필름지 도장 가구들의 벌어져 가는 모서리를 보면서, 왜 저런 것을 굳이 대량생산하는 것인지, 그리고 큰돈을 들여 굳이 저런 가구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꾸밀 때 일부러 식탁과 싱크대를 목수에게 맡겨서 치수를 발주해서 모두 원목으로 맞추었다. 매일 지내는 집에 가구 모서리가 벌어지는 걸 지켜보는 것보다는 시간이 지나서 빛바래고 찍히고 파이고, 닳다 못해 손때를 타서 반들반들해지는 재질들을 곁에 두는 게 좋다. 그게 더 진짜라는 기분을 나에게 주기 때문이다.
집 꿈은 너무 자주 꾸니까 이제는 무언가를 찾아보지 않아도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바로 복기하고 정리하고 웃음이 나왔다.
수면시간이 며칠 만에 괜찮았다. 기분이 좋아서 한강으로 나갔고 잔잔하고 행복한 노래를 들으면서 8킬로를 뛰고 돌아왔다. 아침에 뛰다가 국회의사당을 보니 기분이 다 개운했다. (아니, 꿈속의 그 옥색이군!)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