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손길들이 부리는 시간의 마법
명절이었다. 친정집에 가서 아이들과 서랍을 뒤졌지만 윷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새로 사와야 하나, 명절에 문을 연 곳이 어딜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빠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바깥으로 나가셨다. 그리고는 짙은 갈색으로 부러져 있는 나뭇가지 네 개를 주어 오셨다. 그리고 주머니칼을 꺼내셔서 같은 길이로 네 개를 자르고 가장 자리를 동그랗게 다듬었다. 그리고는 자와 연칠을 가지고 와서 같은 위치에 X자로 세 개씩 홈을 팠다. 그리고 매직을 가지고 와서 그 세 개의 홈을 매꾸어 색칠하신다. 그리고 한 개만 뒤집어서 뒤쪽에 까맣게 색칠하며 마무리다. 빽도 윷을 만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십여분 정도 걸렸다. 망설임도 없고 익숙한 동작들, 나무를 고르고 메만지고 동그랗게 밤톨같이 곱게 칼로 다듬는 것. 아주 오랜 시간, 아마도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해왔을 그 수많은 반복의 흔적들. 아빠는 아주 두꺼운 손목과 두터운 속가락을 가지고 계셨다. 지문은 닳아버린 것처럼 매끈거렸고 모든 손가락에 굳은 살이 항상 베겨있었다. 아빠의 손은 우직한 아름다움이 있었고 항상 따뜻하거나 뜨겁거나 온도가 높았다. 아빠가 내 팔과 손목을 보며 말하셨다. 너는 그림을 그릴 팔자라서 손목이랑 팔이 이렇게 가늘게 태어난 거야. 아빠는 평생 힘쓰며 일할 손이라서 이렇게 두꺼운 뼈대로 태어난 거라고. 아빠의 그 두터운 손은 힘이 세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아빠는 나를 자주 무릎 위에 모로 눕혀두고 귀를 파주셨다.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단 한번도 아빠는 나의 귀를 아프게 판적이 없으셨다. 귀 안에 난 잔털 위만 훓어야 한다고 말하셨다. 더 깊게 파면 귀 피부가 상한다고, 잔털 위만 살살 훓으면 잠이 솔솔 올만큼 기분이 좋고 포근해졌다. 귀가 간지러워서 라기보다 아빠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참 좋아서 나는 자주 아빠의 무릎위로 모로 누웠다. 요즘 내가 아홉 살 아이들의 귀를 파주면서 나는 새삼 아빠가 얼마나 대단했던 건지 실감한다. 아이들은 조금만 힘이 세져도 아프다고 자지러진다. 아빠의 섬세한 솜씨를 따라가려면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돌아가시기 삼 년 전에 우리는 함께 한탄강에 간 적이 있었다.
아빠는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돌을 오래도 고르셨다. 납작하고 부드럽게 마모된 날쌔게 생긴 야무진 돌을 고르셨다. 그리고는 망설이지 않고 옆으로 서서 힘을 실어서 재빠르게 돌을 물 위로 날리셨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열 몇 번이 지나도 돌을 한 번씩 수면 위로 뻐끔뻐끔 얼굴을 어김없이 내밀었다. 강 건너 편에는 관광객 무리가 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아빠의 물수제비를 보더니 우와! 하고 박수를 쳐주었다. 아빠는 보란 듯이 한번 더 돌을 골라 날리셨고 아빠의 물수제비는 항상 열 몇번을 넘기고서야 강 바닥으로 사라졌다.
아빠는 강원도 탄광촌에서 자라셨다. 키가 다 자라기도 전에 무거운 나무 지게를 메고 산을 헤매셨다. 그래서 키가 충분히 자라지 못하고 160cm 근처에서 멈추고 말았다. 아빠의 단단하고 두꺼운 어깨는 어린시절부터 훈련된 아빠의 고된 노동의 흔적을 오랜 시간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빠가 하는 많은 일들이 그랬다. 한없이 투박한 것이 나올 것 같은 그 두터운 손가락과 손바닥에서 누구보다도 섬세하고 야무진 것들을 차분하게 빚어 내셨다.
아빠가 내 손가락의 손톱을 잘라주시면서 말하셨다.
-어리고 건강해서 손톱이 투명하고 아주 통통 가볍게 튀네.
그 말을 듣고 서야 처음으로 아빠의 손톱이 보였다. 아빠의 손톱은 내것과 비교도 안되게 탁했고 노르스름했고, 두터웠다. 손톱깎기로 자르기가 벅찰만큼. 그렇게 두꺼운 손톱을 그 뒤로도 보지 못했다.
아빠가 내 손등을 만지면서 말해주셨다.
-아빠도 어릴 때는 손등에 이렇게 털이 없었어. 바깥에서 일을 너무 많이 하니깐 언젠가부터 손등에도 털이 많이 나더라. 팔등까지 타고 올라서.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피부를 보호하려고 그런 건지.
그랬겠지. 아빠도 어릴 때부터 손등이 저렇게 검붉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하루아침에 그렇게 손이 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은 동작으로 같은 일을 너무 많이 자주 반복해서 생기는 굳은살, 휘어버린 손가락의 각도, 타버린 손가락의 검붉은 피부, 두꺼워진 손톱. 그 모든 게 아빠 였다. 아빠는 한번도 어린시절에 악기를 배우신적이 없었다. 악보를 볼 줄도 모르시면서 하모니카를 기타를 혼자 깨우치셨다. 나이 들어서는 아코디언을 학원에 가서 몇 년을 배우셨다. ‘잘 모르지만, 배우면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 아빠는 그런 단순하고 아이 같은 면이 항상 있으셨다. 고된 노동에 늘 지쳐 계실때도 음악을 좋아해서 남이 버린 LP를 주어 오셨던 날이 기억난다. 그때 같이 양희은 님의 ‘봉우리’를 들었었다. 악기를 더 배우고 싶어 하셨던 아빠의 모습을, 할아버지가 되었는데도 아직 호기심이 남아있는 아빠의 눈빛을 좋아했다.
아빠는 하루는 어린 시절에 강을 건너간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빠는 또래에 비해 항상 작았고 다른 친구들은 다 수영을 잘해서 쉽게 강을 먼저 건너 가버렸다. 어린 아빠에게 따라 올 수 있으면 강을 건너오라고 친구들이 강 건너편에서 약을 올렸다. 당연히 수영을 못하니 못건너 올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조그만 아빠를 따돌리려고 머리들을 쓴 것이다. 아빠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강 주변을 둘러보니 어린 아빠의 몸집 만큼 큰 바위가 보였다고 했다. 아빠는 그 돌을 들어보았다. 겨우 걸을 수 있을 만큼 돌은 충분히 무거웠다. 아빠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돌을 가슴에 꼭 안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강바닥으로 걸어 들어갔다. 강물은 맑았지만 걸어가면서 흙을 헤집으며 탁해져서 시야가 흐려졌다. 그래도 아빠는 멈추지 않고 계속 성큼 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돌은 아빠를 물 위로 뜨지 못하게 할만큼 충분히 믿음직스럽게 무거웠다. 아빠는 그 돌을 꼭 껴안고 아무도 없는 그 강밑 바닥을 뚜벅뚜벅 걸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믿기가 힘들었다. 아빠는 그때 겨우 아홉 살 어린 꼬마였는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결국 아빠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강을 ‘건너가’ 버렸다. 그 뒤로 덩치가 작다고 무시하던 또래 친구들이 아무도 아빠를 무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빠는 늘 그렇게 씩씩하고 담대한 면이 있으셨다. 암을 판정 받았을 때도, 그리고 장의 대부분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나서도 문병을 간 나와 밥을 먹으면서도 농담을 하고 껄껄 웃으셨다. 그러다가 돌아가시기 일 년 전에 내 앞에서 한번 크게 우셨다. 그래서 나는 그때 아빠를 껴안고 한참을 함께 울었다. 더 자주 그래 드릴걸. 그 뒤로는 그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우리가 손을 움직여서 노동을 할 때 무언가를 파악하고 알아가게 되는 과정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일에 ‘숙련’되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오늘은 도화지를 꺼내고 흰 물감과 노랑 물감을 적절히 섞어본다. 예전에는 수시로 멈추기도 했었을 것이다. 물의 농도와 흰색의 농도, 그리고 노랑 물감의 농도를 조심스럽게 조금씩 섞어보며 붓으로 찍어내어 보았을 때,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을 때, 나는 그 수많은 경험을 내 왼쪽 중지와 검지 엄지에 새겨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게 정확히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더이상 흰 물감과 노랑 물감을 섞는 것과 그 위로 물과 붓을 섞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덜 망설인다. 어떤 날은 흰 물감 위를 나무뿌리처럼 예측하지 못하는 모양으로 번져가는 물감의 길들을 그저 바라본다. 예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이 이상한 흔적들을 어떻게 지우나, 다시 그려야 하나 그런 생각도 했었다. 요즘의 나는 그 흔적들이 재밌다고 생각하면 덧칠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측량되거나 지적인 활동이 요구되는 과정이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쌓인, 지난 경험들이 내 몸에 어떤 감각으로 익혀져 있고 괜찮다고 즉흥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반복해서 훈련된 것들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게 아니라, 때로는 시간의 마법을 부린다. 예전에는 몇 일이 걸리던 고민의 시간을 압축해서 순식간에 일을 저지르고 마무리 시켜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교도 안되게 단호하고 짧은 판단이 거듭되다 보면 예상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짧은 기간에 한 권의 그림책의 삽화가 완성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한권 한권이 쌓여 가면서 아마도 그 습관적인 동작과 수많은 경험의 시간들은 점점 더 짧아질 것이다. 이성적으로 그 적당함을 가늠하기 전에, 순식간에 내 손과 눈이 기억하고 되새기며, 뇌 대신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점점 더 그림을 그리는 노동이 그저 고통스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오겠지. 예전보다 훨씬 적은 에너지로 무언가를 그려내기 시작하면서,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큼, 더 즐겁게 그리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들 것이다. 마치 아빠가 마법처럼 십 여분 만에 죽어있던 땅에 떨어진 겨울 나뭇가지들을, 너무 쉽게 훌륭한 윷으로 슥슥 깎아 버리신 것처럼.
윷을 가끔씩 꺼내 본다. 가지고 놀지는 않는다.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이렇게 예쁘게 밤톨같이 다듬어준 것을, 그냥 쓰기에는, 그리고 쓰다가 혹시 하나라도 잃어버리게 된다면 나는 펑펑 울 것이다. 그래서 푸른색과 붉은 깨끼로 만들어진 고운 보자기에 단단히 동여매서 가장 귀한 것을 보관하는 서랍에 도로 넣어둔다. 어떤 손길들은 귀하게 오래 간직되어야만 한다. 수많은 훈련의 시간 들이 그 안에 담겨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