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느려도 정직한, 그런 고민들

by 이수연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눈과 코 주변이 붉어진다 싶더니 오른쪽 콧방울에 살짝 코피가 맺혔다.

- 그냥 가. 엄마 가!

화를 내는 아이의 앞으로 입김이 보인다. 봄인데 이렇게 쌀쌀한 아침이라니.

왜 그럴까? 너와 나는.

분명히 이렇게 까지 화가 날 일이 아니었는데.

내가 아침시간을 서두르다 이렇게 됐지. 시간이 없으면 항상 마음의 여유가 더 없어지니까. 분명히 엄마가 잘못한 게 맞다.

이미 누운 지 시간이 좀 지났지만, 아이 하나가 배가 아프다고 하길래 따뜻한 물주머니를 수건으로 둘둘 말아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어두운 방. 둘 다 자고 있으려나?

-배 아파.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더듬더듬 배를 찾는다. 물주머니 뚜껑이 단단히 잘 닫혀 있는지 확인하고 배에 천천히 올려준다. 작은 손이 물주머니를 껴안는다. 손을 팔을 배를 가늠해 본다. 이쯤에 얼굴이 있겠구나. 아프다는 아이의 뺨에 조용히 뽀뽀를 한다.

그때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새로 생긴다. 옆에서 자고 있던 다른 아이가 소리를 듣고 깼나 보다.

-엄마?

목소리가 나는 쪽을 더듬더듬 손을 뻗어 찾는다. 이쯤 일까? 맞다.

-너도 잘 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방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잘 찾아내고 정확한 위치에 뽀뽀를 한다. 서로에게 잘 자라는 말을 나지막이 전하면서.

아침에 깨서도 좋았잖아.

내가 만들어준 아침도 잘 먹고, 긴 티를 입은 게 여자 아이 같다고 싫다며 바지 안에 예쁘게 넣어달라고 왔었잖아. 내가 팔도 두어 번 접어주고 바지에 넣어 입는 것도 알려주었잖아.


우리는 늘 한마디 말에서 어긋난다.

그전까지 아무리 좋았어도 늘 한마디 말에서 갑자기 너와 나는 화를 낸다

네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사실 대단한 것도 없는데.

그저 다정하게 대해 달라는 것뿐인데.

왜 네가 원하는 대로 되어주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어떤 부분은 나이를 먹어도 계속 미숙하기만 한 걸까?

-코피 닦아 줄게. 일로 와

-학교에 가서 보건실 가면 돼. 됐어!

아이는 결국 태권도 가방을 뺐어서 씩씩 거리며 뛰어간다.

엉망진창인 아침이다.


내가 마음을 쓰며 애를 쓴다고 해결되는 문제들이 나의 고민이면 좋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괴로워하고 애를 태운다고 그 마음 씀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공정하겠는가.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엄마를 잘 부르지 않던 아이. 눈을 잘 맞추지 않던 아이. 그 아이가 이제는 내가 말하는 말투가 싫다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화를 내며 내 앞에서 휙 돌아선다. 아마 우리 사이에는 네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벌어진 마음의 미세한 틈을 넓혀간 역사가 있을 것이다. 애착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따금씩 조그만 입술이 이런 말도 한다.

-나 곧 독립할 거야! 엄마를 떠날 거야!

슬픔이나 당혹스러움 보다 마음 한쪽에 저런 말을 하는 아이의 용감한 마음이 반갑다니. 저렇게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당당함이 기쁘다니.

나는 이상한 엄마인가?


-네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아.

-왜 그러는데?

-엄마 속상하라고 그러는 거 아닌 거 알아.

-그럼 내가 왜 그러는데?

-엄마는 알아. 네가 엄마 많이 사랑하는 거.

더 사랑해 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 다 알아.


아이가 훌쩍훌쩍 운다.

그래서 조금 행복하다고 하면 나 정말 이상한 엄마가 맞나?

미안해. 엄마가 조금 더 섬세하고 부드러웠으면 좋았을 텐데.

나의 고민 같은 것은 사실 시작부터 다 부질없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내 고민의 쓸모없음을, 그 한계를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고민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이고 그 불안함은 숨겨지지 않고 표정으로 행동으로 다 드러나 버린다.

아이의 참관 수업 내내 아이는 집중을 하지 못한다.

결국 칠판에 나가서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일이 급한 나는 먼저 자리를 일어났다.

얘들 아빠가 남아서 아이의 거의 다 맞추지 못한 시험지를 사진을 찍어 보낸다.

틀렸다는 작대기 표시가 가득한 시험지를 보인다.

-느려도 정직하네.

다 맞아서 동그라미가 가득한 시험지보다 자기가 틀렸으니 틀렸다고 채점한 아이의 서툰 글씨들이 보였다. 웃음이 나온다. 계속 이런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정직하게. 나부터 그렇게 살아야겠지, 그래야 너에게 덜 부끄럽겠지.

짧게 답 메시지를 보낸다.

- 더 좋다.


#고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전철에서 크게 소리 내어 외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