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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문득. 그래 주었으면

by 이수연

-이것도 틀렸잖아. 이거 바로 옆에 썼는데 또 틀리면 어쩌냐. 잘 봐봐. 바람에 몸을 ‘싣’고! ‘씻’ 고가 아니라!

-아니. 틀릴 수도 있지!

바로 옆에 썼는데 또 틀렸잖아! 이건 실수가 아니야. 집중을 전혀 안 하고 있는 거라고.

답답하다. 똑바로 좀 앉지. 왜 연필은 또 저렇게 이상하게 쥐는 거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씰룩 씰룩 거리는 아이의 뒷모습, 얼굴이 울긋불긋 하다. 우리는 속으로 화가 나기 시작한 지 한참 지났다.

-다 끝났어! 봐봐!

아이의 공책에 ‘엄마, 진짜 실어!’가 쓰여있다.

이게 아니지. 봐. 진짜 실. ‘ㄹ’하고 ‘ㅎ’하고 함께 써야지! 이거 봐봐.

엄마, 진짜 ‘싫’어! 이렇게 써야지!

고쳐주다가 아이의 눈을 본다. 불만 가득이다.

그 얼굴을 보다가 이렇게 표현한 불만에도, 맞춤법을 교정하고 있는 이 상황이 우스워서.

화난 얼굴을 보고 빵 터지고 만다.

너는 내가 왜 웃는지 알까?

네가 ‘싫다’고 해도 엄마는 웃음이 나와. 짜증 나고 화나도 어김없이 매일 저녁을 먹고 자리에 앉아 받아쓰기를 해주는 네가 착하고 기특해서. ‘엄마 진짜 싫다’고 쓸 수 있는 네가 장해서. 문득, 그래서 갑자기 웃음이 나와. 내가 깔깔 대고 웃는 걸 보고 당황했지? 엄마는 네가 당황해서 또 웃었어.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뒤에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주변에 소음이 너무 많았다. 정신없는 단어들, 웃음소리. 그 사이에서 그저 이름만을 나누기에도 다소 정신이 없다. 나는 작은 손그림을 그렸고, 이름을 듣고, 적었고 그리고 눈을 들어맞는지 한번 더 확인을 했다.

그때 눈을 처음으로 보았다.

조용한 눈.

다시 고개를 내려 짧은 메시지를 적고 사인을 마친다. 다시 눈을 들어서 보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이 생긴다.

잔잔하다. 여전히 두 눈은 조용한데,

그런데.

감정이 가득하다.

어떤 감정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진지한 눈.

내가 좋아하는 눈이다.

이런 순간은 절대로 놓치거나 잊어버리지 않는다.

아주 가끔만 만날 수 있는 눈이다.

나에게는 이런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무척 짧고 눈치채기도 전에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이전과 지금의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이런 순간을 가볍게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문득, 나는 저 눈빛과 표정을 잊지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럴까?

사인에 메시지를 적어 달라고 하신다. 딸에게 주고 싶다고.

문득, 열 살의 하얗게 타오르는 여름으로 돌아간다.

우리 집은 고모네 집에 전세로 오랫동안 살았다. 그런 걸 얹혀 산다고도 하던데. 맞벌이인 부모님 대신 집에 있는 유일한 어른이었던 고모는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하셨다. 고모가 키우는 모든 화분은 지나치게 잘 컸다. 덩굴은 이 충의 난간을 넘어 바이다 끈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 연둣빛 넝쿨 장막을 만들었다. 나중에 알았다. 고모가 여름마다 사골을 삶는 날이면, 식혀서 화분에도 그 국물을 나눠 준다는 것을.

특히 치자 화분을 잊을 수가 없다. 치자는 하얀 장미 같은 도톰한 두께의 꽃이 핀다. 그 향기가 얼마나 달콤한지. 그렇게 단 향기가 꽃에서 날 수 있다는 것을 그 여름에 처음 알았다. 이 층에 올라가기만 해도 그 향기가 온 집에 퍼져 나갔다. 하루는 그 화분 앞에 고모와 함께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치자 꽃잎만큼 그 잎들도 두께가 도톰했고 단단하고 선명하게 그 무늬가 쪼개져 있었다. 그러다 어떤 풀잎은 유난히 여리고 작다는 것을. 그리고 아주 예쁜 연둣빛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렇게 반짝반짝 거리며 빛이 나다니.

-고모, 얘만 왜 이렇게 반짝반짝거려요?

-아직 어리기 때문이야. 작고 여리고 반짝거리지. 수연이 네가 지금 그런 것처럼.

고모가 나를 그렇게 쓰다듬었던 적이 있었던가. 손길이 내 머리카락을 만졌다.

-봐, 너는 이렇게 반짝반짝 거리잖아.

그런 거구나. 아이라는 것은 여리고 반짝거리고 연둣빛이고 그런 거구나.

열 살에 나는 내가 그런 치자꽃 풀잎 같은 거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여리고 반짝거리는 푸른 풀잎, 곧 숲이 될 거예요’

사인본에 짧은 한 줄을 적을 때마다 그 열 살의 타는 듯한 여름날, 치자꽃 화분 앞으로, 그 향기가 함께 문득 찾아온다.


아. 그리고 ‘풀’.

‘풀’이라는 단어를 썼던 사람이 하나 더 있었지.

우리 아이들이 갓 태어났을 때, 아빠가 한동안 아이들을 보러 와주셨다. 아빠 엄마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옆집 아기가 이쁘다고 돈은 아이 간식비만 받고 그냥 키워줬던 사람들이니까. 아기를 유난히 좋아하셨고, 아기를 깔깔 웃기는 사람들이었다.

아빠가 면수건에 돌돌 말려진 아이들을 보며, 땀에 붙은 아이들의 머리를 쓸으면서, 중얼거리셨다.

-아기는 ‘풀’이야. 눕히는 대로 눕고, 풀처럼 여리고 약한 거야.

아빠는 바운서에 아기 맨다리가 닿는 걸 보시더니, 이내 못 참으시고 연한 가제 수건을 찾아와서 다리 피부와 플라스틱 바운서 사이에 끼워두신다. 아기의 얼굴이 한결 편해 보인다.

‘풀’이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문득 아빠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풀’과 ‘여리고 반짝이는’이라는 단어를 책 앞에 쓸 때마다 그 순간들이 문득 떠오른다.

아마도 그렇겠지. 우리 아이들도 이런 순간, 문득 어떤 단어를 기억하게 되겠지.

도대체 왜 웃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조금 울상이 되더니 이내 따라서 피식 웃는다. 나중에 네가 나이가 들어서 너도 ‘진짜 싫어’라는 말을 쓸 때마다, 이 순간을 기억해 주었으면. 내가 너를 어떻게 바라봐 주었는지 기억했으면. 그랬으면. 문득. 문득. 그래 주었으면.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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