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in progress

by 이수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순간’이라니.

하얀 도화지, 검은색 막대기가 깜빡깜빡 거리는 텅 비어진 문서의 시작.

이번 주 주제를 전해 듣고 내가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젯밤까지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하는 것일까? 생각은 더 발전 되지를 못했다. 그리고 글을 쓰기로 한 오늘 아침, 어떤 꿈을 꿨는데 꿈의 영상이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꿈이 전해 준 내가 해석한 메시지만 한 줄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것은 망쳐도 좋고 잘해도 좋으니, 부디 망설이지 말고 부딪히라는 것이었다. 하얀 말끔한 도화지 위에 한 방울의 물이 똑 떨어졌다. 이건 내가 평소에 자주 하던 생각이라 특별할 것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하다가, 같이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엄청나게 자료를 모으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모르는 작가가, 안 읽은 책이 없다. 본 것이 오랫동안 아주 많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케치북에 자신의 그림을 한 장도 그려오지 않는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감탄하는 것까지는 참 좋은데. 문제는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그려내기에는 자신이 본 것보다 ‘더 멋진 무언가’를 그려야 한다는 망설임이 생겨버린 것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하얀 도화지는 다른 사람들이 평가할 수 없다.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무심코 지나가 버리는 짧은 순간들이 참 아쉽다. 부디 완전히 망하고, 조금 어색하고 부족해도 좋으니, 무언가가 흰 여백 위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말이라도 나누고 싶었는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끌어내어 다른 이의 눈앞에 보여 주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보여주고 평가받고 싶지 않아서. 안 보여 주기 위해, 그래서 안 그리는 걸까? 당신 지금 아주 큰 것을, 무언가를 분명히 놓치고 있는데.


인형을 좋아했다. 머리카락을 빗질할 수 있는,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론 인형을 좋아했다. 언젠가부터 장난감으로 인형을 사달라고 하면, 어른들은 나에게 엉뚱한 것을 안겨주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일곱 살 때부터 항상 마론 인형이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산타인형은 안에 사탕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사탕을 뒷 지퍼를 열어 배에서 빼내 버리자, 산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볼품없게 납작해졌다. 내가 원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가지고 싶은 것은 ‘인형’이라고 분명히 잘 대답했는데. 이런 바람 빠진 납작한 산타를 받게 되다니. 실망감을 감추려고 무표정하게 빨간 천의 산타를 쓰다듬어 본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정말 인형을 가지고 싶었다면,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저런 부직포로 만들어진 빨간 천으로 된 산타 같은 게 아니었다고, 금발에 반짝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고 하늘거리는 시폰 드레스를 입은 ‘마론인형’이었다고 똑바로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는 과거의 어리석은 나 자신을 탓하고 원망했다. 집에 돌아와서 문을 열고 집안을 본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거실에 상을 핀다. 인형과 비슷한 것은 집에 있었지만,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인형을 가지고 놀기에는 나는 이제 충분히 컸다고 어른들이 거듭 말했다. 그런데 그 ‘충분히’ 컸다는 것, 그건 누가 정하는 걸까? 나는 곧 초등학교를 졸업하지만, 인형이 가지고 놀고 싶은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인형을 좋아하면 정말 한심한 걸까? 작은 동그란 플라스틱 상위로 집에 있는 가장 두꺼운 도화지를 가지고 온다. 이것은 절대 내가 가지고 싶었던 반짝 거리는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인형이 될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도화지를 본다. 볼펜을 가지고 온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을 그려보기로 한다. 가질 수 없으니까, 가지고 싶으니까, 그래서 그리게 되는 것일까? 머리가 구불거리는 여자를 그린다. 그 옆에 그런 여자가 입고 싶을 법한 드레스를 그려본다. 드레스의 어깨, 양쪽 위로 끝이 동그란 막대기를 두 개 그린다. 아쉽지만 종이인형이라도. 아쉽지만 종이 드레스라도. 투명한 시폰 드레스를 입히고 싶었는데, 이 종이는 너무 두껍다. 이번에는 집에서 제일 얇은 종이를 찾아 꺼내온다. 하지만 그 종이는 전혀 시폰 같지가 않다.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 꽉 막힌 흰 종이가 하늘하늘 거릴 리가 없잖아. 차라리 기름종이라도 있었으면. 집에 기름종이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그런데 기름종이는 왜 이름이 기름종이일까? 흠. 혹시 종이에 기름을 부으면 되는 거 아닌가? 부엌으로 간다. 식용유를 꺼내온다. 흰 얇은 종이에 기름을 조금 부었다. 어? 진짜 투명해 지다니. 이게 되네? 종이는 기름이 묻은 부분만 반투명한 색으로 변했다. 그런데 너무 많이 기름을 부었나. 투명해지다 못해 축축한데. 어떻게 말리지? 군용 담요를 깔고 기름종이를 올리고 예열된 다리미질을 한다. 이내 뜨거워지더니 촉촉한 재질감이 뽀송해진다. 조금 마르는 듯도 싶다. 이때부터 나는 조금 신이 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정성을 최고로 들여서 종이 아가씨와 종이 드레스 위를 꼼꼼하게 색칠을 하고 기름종이를 잘라 붙인다. 가장자리를 차분하고 신중하게 따라가며 오린다. 특히 드레스 양쪽 어깨 위에 얹어져 있는 동그란 끝을 가진 막대기를 조심조심 자른다. 그게 없으면 아가씨에 어깨에 시폰 드레스를 걸 수 없으니까.

아가씨에게 왕관 같은 것도 좀 씌어 주고 싶은데, 너무 수수한데. 빨래 건조대에 엄마의 다소 요란스러운 팬티가 걸려 있다. 어? 팬티 앞쪽에 작은 리본이 붙어 있다. 조심조심 작은 리본을 가위로 떼어낸다. 실키한 재질의 작고 앙증맞은 그 리본은 아가씨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날 내가 몇 시간을 그 종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엄마가 기름때로 끈적이는 바닥과 앞부분이 찢어진 팬티를 보고 엄청나게 화냈던 것은 분명히 기억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나 자신의 유년시절이라고 해서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해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도화지 위에, 아가씨와 드레스를 그리고 색칠을 하고, 기름종이를 만들고 다림질을 했던 그 ‘과정’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재밌었기 때문이다. 유학 갔을 때 그림을 그리면서 SNS에 그림을 올리게 될 때, 어떤 설명을 붙일까 하다가 짧은 영어로 글을 쓰는 게 귀찮아서 항상 ‘Work in progress’라는 말을 아래에 한 줄 붙였다. 최종 완성된 그림이 아닌 그리다가 멈춘 중간 과정을 대충 사진을 찍어 올렸었다. 그때는 내가 글 쓰는 게 싫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몇 년이 지나고도 나는 여전히 과정을 사진 찍고 있었다. 완성되고 나면 덧대어져 사라져 버리는 그 중간 과정을 붙잡고 싶었던 것이다.

진짜 습작의 과정이 담긴 스케치북을 수업시간에 안 가져와도 좋다. 그래도 수업에는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 과정은, 그건 참 재밌고 내밀한 것인데. 두 번 다시 가질 수 없는 건데, 그리고 아무도 훔칠 수 없는 건데. 그날, 그 순간에만 경험할 수 있는 서투름과 신남의 흔적을 누군가가 절대로 대신해줄 수 없는 건데.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결과물이 망설여진다고 그 과정마저 시작도 안 한다면 그것 참 애석한 일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 꾼 꿈도 깨자마자 바로 잃어버렸다. 열심히 습작을 했던 그동안의 크고 작은 스케치북도 어딘가 낯선 엉뚱한 장소에 내버려두고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흰 여백을 채우던, 설렘은 잘 잊히는 게 아닌데. 나는 그 기억을 가지게 하고 싶었던 건데. 그러니까 내 말은 그만 겁내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순간, 그 흰 여백에 무언가를 얹어 보라는 거다. 그 종이는 어딘가로 사라진다고 해도, 그 그림이 어떻게 완성될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을 채우는 시간, 쪼그리고 앉아 기름 묻은 종이를 뜨거운 다리미로 다리는 소녀의 설렘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있으므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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