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고 안락한 것보다 더 갈구하는 어떤 것

by 이수연

현관문과 이어진 부엌에는 오래된 연탄가스로 불을 때는 보일러가 있었다. 그 보일러가 연결된 바닥은 방으로 이어지는 문 앞에 세숫대야 만한 바닥이 십 센티 정도 높게 올라와 있었고, 그 밑으로 온돌 배관이 흘렀다. 그 자리는 겨울에는 최고로 따뜻한 온돌 자리였고 여름에는 가장 시원한 바닥이었다. 그 자리가 ‘철수’의 자리였다. 삽사리와 마르티즈의 잡종이었던 중형견, 누런색과 흰털이 섞여 있는 앞머리가 수북하게 항상 눈을 덮고 있었던 내가 가장 사랑했던 개. 철수. 철수는 내가 가장 오래 키웠던 개였고,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올 만큼 내 마음에 깊게 남은 친구였다. 내가 열 살 되던 해, 태어난 지 삼 개월 된 강아지였던 철수는 앞문이 열리는 작은 네모난 새장에 담겨 새벽에 우리 집으로 왔다. 철수라는 이름은 그전 주인이 붙여준 이름이었고 이미 강아지는 익숙해진 이름이었기에 우리도 그대로 불렀다. 얼마나 작았는지 새장의 문은 겨우 십오 센티 남짓한 정사각형 크기였는데 그 좁은 문으로 들락날락했었다. 그 새장은 머지않아 작아졌고 그 작은 따뜻하고 서늘한 바닥이 철수가 자리가 되었던 것이다. 한동안 나는 학교가 끝날 시간이면 늘 초조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철수가 집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내내 생각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숨이 차도록 뛰고 또 뛰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북실북실한 앞머리 사이로 철수의 눈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침마다 내가 목줄을 채워 철수와 동네를 뛸 때면 앞머리가 바람을 타고 뒤로 넘어가 까만 두 눈을 볼 수 있었다. 까맣고 동그란 영리하게 반짝이던 수많은 표정을 담고 있던 두 눈. 골목 끝은 우리 집에서 오십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아빠의 파란 트럭이 그 골목으로 꺾여 들어오면 철수는 자리에 누워 자다가도 누구보다도 빨리 집밖으로 달려 나갔다. 다른 차들이 들어오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아빠의 낡은 트럭이 내는 거친 엔진 소리를 기억하고 구분하는 철수가 나는 너무 신기했다. 골목길에 주차를 하고 아빠가 높은 트럭의 차문을 열면 철수는 정신을 놓은 개처럼 엄청난 높이로 점프를 하며 누구보다도 아빠를 반겼다. 개의 청력과 후각은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많은 것을 느끼는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기억해 보면 아빠와 엄마는 그 시기에 가장 힘드셨던 것 같다. 아직 어렸던 나는 어른들의 사정을 다 알 수 없었다. 아빠는 새로 도전했던 일들이 잘 풀리지 않으셨고 자주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런 날이면 철수는 아빠가 멀리서 걸어오는 발소리를 듣고 구분한 것인지, 술 냄새를 맡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럴 때면 더 이상 항상 앉던 안방 앞의 그 지정된 자리에 여유롭게 누워있지 않았다. 일층과 이층 사이, 사람이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 장독대 틈 사이로 망설이지 않고 뛰어내렸다. 아빠가 자기를 불 수 없도록. 밤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거기서 숨죽이고 밤을 보냈다. 술에 취한 아빠에게 들키면 발에 차이거나 이유 없이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철수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철수를 묶어 두지 않았다. 자유로운 개였다. 아침에 나랑 같이 학교를 가는 길 나가서 저녁에 돌아왔고,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를 지나가다가 낯선 동네에서 철수를 만나기도 했다. 동네에서 철수는 유명한 개였다. 다른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고 다니는 개, 사람 따라 신호등을 건너는 개, 동네 친구의 이름과 같아서 이름마저도 미운털이 박힌 개. 우리 집에서는 밥도 잘 챙겨주지 않아서 철수는 동네 정육점 아저씨도 아는 늘 굶주린 개였고,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주인이 있는 개로 보이지 않을 만큼 내내 지저분했다. 가는 갈색털이 회색이 되도록 한 뭉텅이로 엉겨서 빗질을 해도 풀어지지 않았다. 옆집에 사는 고모는 늘 혼내셨다. 너네는 개를 예뻐할 줄만 알지 밥도 안 챙겨 준다고.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시절, 하루 종일 어른이 없는 집에서 어린 나조차도 끼니를 자주 거르던 시기였다. 철수가 저녁에 돌아와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두워지면 매일 늑대처럼 하울링을 했다. 그러면 동네 개들이 따라서 아우 아우 이어지는 하울링을 했다. 나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개들이 어떤 감정을 인간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소리로 나누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철수의 모든 행동과 소리들이 어린 나에게는 항상 신비로움이었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성가시고 시끄러운 소리였겠지만. 오 학년이 되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서 밤이 늦어도 철수가 돌아오지 않았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온 엄마 아빠에게 물어보자 철수를 키우는 게 힘들다고, 개를 엄청 좋아하는 새로운 주인에게 보냈다고 하셨다. 나와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고. 이렇게 갑자기 보내버리다니. 나는 며칠을 울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우리 집에서 밥도 잘 못 먹고 매일 천덕꾸러기인 철수가 그 집에서 사랑받는 개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제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와도 더 이상 해를 받으며 낮잠을 자고 있던 누렁 삽사리가 없었다.

그날은 햇빛이 따가울 정도로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기억 속의 그날의 길은 온통 하얀색으로 빛이 튀기는 날이었다. 이층 난간에서 멍하니 길을 바라보았다. 저기 낯선 하얀 털뭉치가 오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골목길에서 꺾여 급하게 달려온다. 철수는 늘 누런색에 목욕을 자주 시키지 않아서 털이 엉망으로 뭉쳐서 누런 털인지 갈색 털인지 회색 털인지, 가느다란 털이 뭉쳐서 잘 구분도 되지 않았다. 저렇게 눈부신 하얀색의 예쁜 개가 있다니. 예쁨을 많이 받는 강아지가 분명했다. 앞머리를 가지런히 빗질해서 하나로 모아 묶어 둔 아주 예쁘고 사랑스러운 개였는데 언뜻 보니 이마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느 집에서 키우는 개가 저렇게 다쳐서 돌아다닐까. 그 예쁘지만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는 낯선 개가 이층에 있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든다. 자세히 보니 그 낯선 개는 목줄을 매달고 있었다. 위험하게 가죽으로 만들어진 개 목줄이 이미터도 넘게 길게 질질 몸 뒤로 끌리고 있었다. 하얀 개는 나를 보고 익숙한 움직임으로 철문을 열고 이층 돌계단으로 뛰어 올라왔다. 그때서야 알았다. 그 하얗게 눈부신 개가 철수라는 것을. 이마에 핏자국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가까이서 보니 어이없게도 빨간 리본이었다. 나중에 들어서 알았다. 새로 간 집 아이가 매일매일 육포를 간식으로 주고 털이 찰랑찰랑 빛이 나도록 매일 빗질을 해주었다고 했다. 예쁜 두 눈을 가린다고 매일 앞머리를 넘겨서 예쁘게 리본도 매달아 주었다. 웃음이 나왔다. 철수가 이렇게 예쁜 하얀 털의 개였구나. 이런 리본이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도대체 철수는 집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은 가야 도착한다는 그 먼 집에서 어떻게 우리 집을 다시 찾아온 걸까? 그것보다 철수야, 너는 왜 다시 돌아온 거야? 그 집에 있었다면 너는 훨씬 더 편안하게 사랑 많이 받는 개였을 텐데. 내 품으로 달려든 철수의 목에 매달린 목줄은 끝이 너덜너덜했다. 철수가 이빨로 끊어 내버리고 도망쳐 온 것이다. 철수는 그 뒤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예전처럼 털이 너덜너덜 해지고 다시 누렇고 회색이 도는 지저분한 개로 돌아와 버렸다. 우리는 여전히 밥을 챙겨주지 않았고, 철수는 아침이 되면 나와 함께 거리고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왔다. 그리고 늘 그랬듯 저녁마다 동네 시끄럽게 ‘아우’하고 하울링을 했다. 생각해 보면 철수에게는 육포나 깨끗한 방석보다 마음껏 나가서 뛰어 놀을 수 있는 게 더 중요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철수에게는 손바닥 만한, 그 비좁은 뜨시기도 하고 서늘하기도 한 시멘트로 만들어진 투박한 그 아랫목 자리가, 편안하고 자기답게 살 수 있었던 가장 편안한 자리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그것은 아직은 어렸던 내가,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완벽하게 모두 이해할 수는 없는, 철수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꼭 돌아와야 했던 자신의 자리였던 것이다. 편안하고 안락한 것보다 더 중요하게 갈구하는 어떤 것이 동물에게도, 그리고 역시 동물인 사람에게도 있다는 것을 열두 살의 나는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됐다. 철수는 나에게 그런 것을 알려 준 개였다. 아직도 가끔 그날의 철수를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본다. 회색 시멘트가 하얗게 빛을 받아 하얗게 타버리는 것 같았던 그 여름날, 골목 끝에서 나를 보고 열렬히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하얀 털뭉치의 눈부신 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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