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쉬지 마.
눈이 한쪽으로 날카롭게 뾰족해진 바다의 간단한 한 문장에 긴장이 된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었나. 바다의 수학단원 평가지를 붙잡고 문제를 함께 풀이하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나 보다. 그래, 이런 거 티 내면 안 되지. 그건 말보다 더 나빠.
아이들이 이백일쯤이었나. 새벽 한 시가 넘어갈 시간, 이유 없이 열이 오르던 하늘이의 숨이 거칠어졌다. 나는 누워있다 평소와 다른 소리에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온도계로 열을 잰다. 39도라니. 왜 열이 나는 거지? 이렇게 식식 숨 쉬는 거는 처음인데.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더 참지 못하고 119에 전화를 한다. 새벽에 찾아온 구급대원은 물수건으로 열을 식혀주라고, 특별한 증상은 보이지 않으니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소아과를 가라고 하고 돌아갔다. 아기 숨소리 하나에 구급차를 부르다니. 조그마한 바운서 위에 하늘이를 다시 눕힌다. 두 손을 포개고 작은 아기가 두 눈을 꼭 감고 작고 차분한 한숨을 내쉰다. 열이 저렇게 나면 어른도 힘든데, 많이 힘들 텐데. 아기의 순한 잠투정이 더 안쓰럽다. 다시 불을 끄고 눕는다. 어둠 속에서 고롱고롱 숨소리가 들린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내가 누군가의 숨소리를 이렇게 귀 기울여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낯설다. 모두가 자는 고요한 까만 새벽에 누군가의 숨소리에 나의 모든 감각이 집중되어 있다. 갓 태어난 생명을 돌본 다는 것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치열하고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아이들이 아플 때면, 도대체 왜 아픈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도 예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도 새벽에 구급차를 몇 번을 불렀었던가.
아이들이 세 살 때였나. 아이들이 이제 한 두 단어를 겨우 말로 옮기는 게 가능한 때였다. 나는 ‘노로 바이러스’라는 게 그런 것 인지 처음 알았다.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서로에게 병을 옮겼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토해댔다. 가을이었는지 봄이었는지 계절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불을 덮지 않고 자기에는 쌀쌀한 밤들이었다. 덮고 자던 이불도 깔고 자던 이불도 베개도 다 토사물에 젖어서 하나씩 하나씩 초벌 빨래를 하고 빨래통에 던져 버렸다. 무언가를 덮어주자마자 바로 토하는 아이의 얼굴은 졸음과 함께 눈물과 콧물 범벅이다. 결국 맨바닥에 아이를 두 팔로 안고 눕는다. 내가 안아주면 그래도 덜 추울 테니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잘 자다가 아이가 갑자기 깨서 거친 숨을 식식 거린다. 그리고 몇 초 안지나 비몽사몽 한 내 품에서 또 토한다. 그래도 이번에는 이불은 아니잖아. 다행이다. 그 날밤 아이는 여섯 번인가 일곱 번을 내 품 안에서 토했다. 우리는 둘 다 잔 것 같지도 않은 밤을 지나서, 아침 일찍 소아과에 가서 주사를 맞는다. 주사가 조금 아플 거라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고 놀라울 정도로 익숙한 몸짓으로 버둥대는 아이의 두 다리를 자신의 다리로 끼워 야무지게 눌러 다잡고 엉덩이 주사를 탁! 놓으신다. 아이는 깜짝 놀라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나는 바로 울기 시작하는 아이를 들어서 품으로 꼭 안는다. 방금 전까지 비명을 지른 아이가 맞는 건지, 일초도 안 돼서 바로 울음을 멈춘다. 놀랍도록 빠르게 차분하게 가라앉은 아이의 숨소리가 품 안에서 식식 거린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밤새 바이러스와 싸운 아이는 미뤄둔 잠을 잤다. 아픈 아이를 끌어안고 소파에 등을 기댄다. 일주일을 시달린 내 몸은 온몸이 다 얻어맞은 것 같다. 너무 피곤하다. 아이의 고른 숨이 내 뺨 옆에서 살랑살랑 스친다.
너무 말이 많다.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대화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여섯 살 때였나. 이제 제법 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하기 시작한다. 내가 큰소리로 잔소리를 하고 아이 둘을 혼내고 뒤돌아 서는데, 하늘이의 나지막하고 분한 목소리가 쉭쉭하는 숨소리와 섞여서 들린다.
진심으로 분한 숨이다.
-이제 나도 바다 네가 왜 엄마가 밉다고 하는지 알겠어.
나는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 본다.
질문을 참기가 힘들다.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최고의 공격인 거야?
아니, 지금 네가 지금 여섯 살인데.
-하늘아. 그럼 너는 지금까지 엄마가 진짜로 미운 적이 없었어?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앉아서 쉭쉭 거리는 하늘이에게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다. 앉아서 하늘이를 껴안고 깔깔 웃었던 것 같다. 영문을 모르는 하늘이는 갑자기 웃는 나를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다정한 걸까? 나는 항상 그렇게 좋은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 어떨 때는 최악이었던 것 같은데. 미친 엄마 선발대회 나가면 내가 일등 할 겄같은데. 이런 미숙하고 서투른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다정한 마음을 줄 수 있는 거야?
다시 노로 바이러스 주사를 맞고 돌아온 그날 아침으로 돌아가 본다. 소파에 기대서 나는 잠시 기절 잠을 잤던 것 같다. 눈을 뜨니 주사를 맞고 지쳐서 내내 잠이 들어있던 하늘이가 내 품 안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안겨있다.
-하늘이 괜찮니?
아직 말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작은 하늘이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언가를 준비하 듯이, 크게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그리고는 눈이 안 보이게 환하게 웃으며 힘껏 외친다.
-엄마! 까꿍!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