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던 밤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무턱대고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전화를 끊지 않고 버텼다.
내내 내 이름만 계속 반복했다. 다른 말은 없었다. 확실히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다.
이십 대가 되자 어른이 되었다는 권리를 누리려는 듯 친구들과 장난같이 술을 마시고 밤을 새기도 했었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붕붕 뜨고, 긴장이 풀리니까. 그게 좋아서 인지, 다들 술을 자주 마셨었다. 하지만 그런 술에 의지 해야만 꺼내놓을 수 있는 이런 감정 같은 것 끔찍하다. 자기 편하자고 뱉어놓은 죄책감 같은 거, 당하는 입장을 상상은 해봤을까? 끔찍한 십 분이었다. 십 분을 겨우 겨우 견디다가 전화를 조용히 끊어버렸다. 전화는 다시는 걸려 오지 않았다. 나는 그 뒤로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 내 삶 속에서 그 사람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것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경멸의 표현이었다.
[2022년 '내 어깨 위 두 친구'중에서.
내가 쓰고 그리는 모든 것들은 메타포토 상상도 아무것
도 아닌것 같다. 겪지 않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감정을 쓰고 그릴 힘까지는 없다.]
스물여덟 살이었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여름날이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내 앞으로 그 사람이 다가왔다. 결혼식 내내 식장 안에 있었나? 왜 이제야 봤을까?
-너무 웃는다. 신부가 너무 웃으면 사람들이 흉봐.
비아냥대는 그 사람 앞에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등신같이 환하게 웃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내 앞에서 주절 거리는지 알 것도 같아서 기대를 깨부수고 싶었다. 그래서 더 환하게 웃었다. 그 사람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다행이다. 내 진짜 감정을 숨길 수 있게 되어서.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정말 웃고 싶어서 웃었던 것뿐이었다.
기뻤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게 되어서.
그러면 다른 마음은 어떨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같은 것. 그 감정을 굳이 감출 필요가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생각보다 더 쉽지 않다. 허망한 소리 하자면,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이 삶에서 얼마나 갈까? 인간이 인간에게 그렇게 까지 신실할까? 보통 길어야 몇 년 일 텐데. 때로는 그것이 기적 같다.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좋다면, 안쓰러워서 안아주고 싶고 도닥이고 싶다면 그렇게 하며 살아야지. 그러니까 그런 마음이 들 때는 망설이거나 숨기지 말고 소중하고 충실하게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그런 마음은 다시 오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나는 나의 젊고 싱그러운 시절을 이미 사람을 지독하게 싫어하고 그것을 숨기고 참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시간이 얼마나 더 허락될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하고 포근하고 진실한 것으로 그렇게 내 마음을 채워지면 그것을 바깥으로 꺼내고 실컷 감탄하며 살아야지. 바닷가에 집을 짓고 글 쓰며 살고 싶다는 말을 몇 년 전에 들었다면, 나는 이렇게 까지 받아들이지 못했을 텐데. 짧은 대화였는데 계속 생각이 난다. 꿈에 까지 찾아오고 자꾸 그려지면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맞다. 용기도 내고, 잃는 것이 있다면 얻어지는 것이 삶이라는 것. 그걸 믿으며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조금씩 충실하게 이루어 가면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