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냥 부탁이었습니다. 오래 알던 사람, 평소엔 말없이 챙겨주던 사람, 그런 사람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냅니다. “혹시… 그거 좀 알아봐줄 수 있어?”
딱 그 정도 톤이었을 겁니다. 강요도 아니고, 돈을 바란 것도 아니고, 단지 좀 도와달라는 말. 그런데 그 한 마디에 왜 이렇게까지 일이 커졌을까요?
믿고 있던 관계 안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그냥 넘깁니다. 부탁을 들어준 것뿐인데, 이게 사건이 된다고? 감이 잘 오지 않죠. 그런데 경찰은, 검찰은, 그렇게 안 봅니다.
검색창에 '지인 마약 구매'를 치는 순간부터 이미 그 낌새를 느끼셨을 겁니다. 그냥 도와줬을 뿐인데 왜 불안한가. 혹시 내가 끼인 걸까. 이게 진짜 처벌까지 갈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기 시작하면, 그땐 이미 늦었을 수도 있는 겁니다.
구매자가 아닌데 왜 공범이 되는가
여기서 제가 꼭 짚고 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단순한 전달이나 중간다리 역할만 했다고 해도, 그걸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기소되는 경우가 많고요. 왜냐고요? 법은 ‘역할’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실제로 마약을 보지도 않았다”, “나는 단지 전달만 했을 뿐이다” — 이 말들은 현실 속 수사 절차에선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마약류 유통은 구조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누가 직접 받았는지, 누가 돈을 냈는지보다 더 중요한 건 누가 연결고리를 만들어줬느냐입니다.
이게 법적인 ‘기여도’의 문제로 번집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구매자와 공급자 사이에 개입했을 경우 그 자체로 공동정범이나 방조범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단지 부탁을 받았을 뿐’이라는 말은 그저 당연하게 예측된 진술로 받아들여지고요.
실제로 제가 맡았던 사건 중, 지인의 부탁으로 택배 수령만 도와준 의뢰인이 있었습니다. 본인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고, 택배 안의 내용물은 개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그 행위를 ‘전달 과정의 일부’로 판단했습니다. 주소 제공, 택배 수령, 심지어 연락만 주고받은 행위도 유통구조 안에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시 의문이 생깁니다. '연락만 해도 처벌이 된다고요?' 네, 그게 문제입니다. 마약 거래는 실물보다 정황과 흐름을 더 봅니다. 전달이 있었는가, 의도가 있었는가, 구조가 형성되었는가.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인정되면, 개입자 전부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됩니다.
즉, 실질적으로 돈을 받지 않았더라도, 구조 속에서 **'거래 성립의 필수 고리'**로 보이면 처벌이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럼 여기서 드릴 수 있는 주장은 하나입니다.
“나는 단순히 도와준 것뿐이었다”는 말은, 수사기관이 가장 먼저 의심하는 말입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오히려 방어 구조를 더 명확히 갖추셔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선처의 조건이 아닙니다. 진실을 ‘어떻게 구조화해서 입증하느냐’가 처벌 여부를 가릅니다.
그리고 그건 혼자선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법은 관계를 보지 않고 구조만 보기 때문입니다.
조사의 시작, 말 한 마디가 전체를 뒤흔듭니다
“그냥 다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정말 많은 분들이 이 질문을 하십니다. 오히려 솔직히 말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그런데 그게 실제 수사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접근입니다. 왜 그럴까요?
법률은 정확하지 않은 진술을 ‘허위’로 의심합니다. 말의 앞뒤가 안 맞거나, 감정에 휘둘려 일관되지 않게 말하면, 오히려 불리한 정황으로 기록됩니다.
게다가 수사기관은 그 진술을 처음부터 녹음하고 정리합니다. 말의 순서, 표현, 어휘 하나하나까지 증거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진실이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굉장히 순진한 태도입니다.
제가 사건 초기에 개입했던 의뢰인 중 한 분은, 첫 조사 때 “지인이 주소만 잠깐 써달라고 해서 적어준 것뿐”이라며 있는 그대로 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배송 경로에 협력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고, 그때 정확하게 개입을 막지 않았다면 기소까지 갔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운이 좋았던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혼자 판단하는 순간부터 불리해집니다.
진술은 반드시 사건 전체 흐름 속에서, 수사기관이 어떤 방향으로 보고 있는지를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단순한 착오로 남길 수 있는 말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의도적 은폐로 읽힙니다.
그 경계는 생각보다 얇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머릿속이 아마 이럴 겁니다.
‘그냥 도와줬다’는 말을 믿어줄까?
‘이 정도면 수사 안 받지 않을까?’
‘지인이 곤란하다는데, 그걸 거절한 게 아니라고 왜 처벌받아야 하지?’
그 질문들,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관계보다 흐름을 봅니다. 의도보다 행위를 봅니다.
그 기준 안에서 내 역할이 어떻게 보여질지를 먼저 파악하지 못하면, 이미 끝난 다음에야 문제를 실감하게 됩니다.
조용할수록 빠르게 움직이십시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시다는 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계시기 때문일 겁니다. 겉으론 조용해 보여도, 이미 어디선가는 수사가 움직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지인은 연락이 끊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 채 기다리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럴 때일수록 먼저 움직이셔야 합니다. 단순히 의심받는 단계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상황에서 ‘모르겠다’는 말은 방어가 아니라 침묵일 뿐이고, 침묵은 책임의 크기를 줄여주지 않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마약 사건은 관계가 아니라 구조로 판단됩니다. 내가 지인에게 어떤 마음으로 도와줬든, 법은 그 ‘도움’의 구조적 의미를 먼저 본다는 사실을요.
지금이 그 구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점입니다. 혼자 고민하고 계시다면, 지금이 움직이셔야 할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