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줄여주는 모든 것에는 중독성이 있다
인간은 고통을 피한다.
고통은 해로운 것인가? 늘 그렇지는 않다.
지성을 가진 생명체는 자유의지로 고통을 선택하기도 한다. 인간의 지성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 너머의 미래까지도 염두에 둘 수 있기에 당장의 고통을 감수할 수도 있다.
음식이 먹고 싶지만, 건강을 위해 참는 것.
놀고 싶지만, 장래를 위해 자기 계발을 하는 것.
쉬고 싶지만,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
"나는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즐거움 때문에 운동을 하는데?"
축하한다. 좋은 취미가 있는 것은 축복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면 된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렇지는 않다.
도파민은 '동기'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신경전달물질은 뇌에서 신체로 보내는 '명령'이다.
명령이 전달되지 않으면 신체는 반응하지 않는다.
도파민은 특정 행위를 하게끔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도파민을 생성해 낼 수 없게끔 조작된 쥐는 눈앞에 음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먹지 못해서 굶어 죽는다. 하지만, 입 안에 넣어주면 씹어서 음식을 삼킨다고 한다.
행위의 결과보다는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간에서는 동기부여가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떠들어대지만, 외적 보상으로 점철된 삶에서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동기로 움직여 본 적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어떤 이해관계도 신경 쓰지 않고, 세상 모든 것들이 신비로운 어린아이야 말로 가장 '동기'가 충만한 시기이다.
그 충만한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MBTI는 흥미로운 대화 주제이다. 오독될 염려가 분명하고, 정밀한 검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맹신하여 생기는 각종 문제점들, (1) 확증편향, (2) 인과관계 혼동 등의 논리적 오류까지 유발한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잘만 이용하면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대단히 넓힐 수 있다. 정말 어려운 기술인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의 초보적인 단계를 가장 쉽게 빠르고 도달시키는 사회적 도구로 봐도 된다.
(1) 확증편향 :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를 바탕으로 그것에 일치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인지적 오류. 방어기제 중 '합리화'에 해당될 수 있음.
(예) 나스닥이 고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스닥인버스를 들어간 철수는 나날이 갱신하는 지수를 애써 무시하면서 나스닥이 떨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취사선택하여 찾아본다.
(2) 인과관계 혼동 :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서 생각하는 오류.
외향적인 성향이므로 E로 분류되는 것이지, E이기 때문에 외향적인 것이 아님.
좀 뜬금없는 소리를 해보자.
다른 건 다 빼놓고
E랑 I 중에서 누가 더 행복한가? 물론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올라오는 것은 당연하다. 행복의 정의가 무엇이냐 사람마다 다를 텐데 일반화할 수 있냐. 먼저 해결해야 하는 질문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외향적이고,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복해. 그렇다면 반대로 내향적인 사람은 강제로 외향적이 야한 상황에서 불행하겠지."
외향이라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하여 밖을 향하는 것이고, 물질적인 소비나 행동이 반드시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인간의 삶에서 물질적인 것은 분리할 수 없으므로 동일한 가처분소득이 있을 때 더 행복한 사람은 내향인이 아닐까?
무엇이 옳다 그르다. 따지는 게 아니라
한 달에 300만 원의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세상에서, 원하지 않는다면 일을 안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세상에서 과연 E와 I 중 누가 더 행복할 것이냐는 질문이다.
마음에 안 들지만, 내향적인 사람이 더 행복할 것 같다.
이걸 인정하고 나니 다른 질문들이 떠오른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던, 청소년기에는 어떤 꿈을 꾸던 그 크기에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 시작은 큰 동그라미로 시작한다.
선택의 연속이다.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선택을 반복하면서 좁아진다.
중학교를 선택
고등학교를 선택
전공을 선택
취업을 선택
배우자를 선택
중간에 전공을 바꾸거나, 직장을 옮기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 횟수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선택의 여지는 줄어든다.
결혼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초혼은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재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상은 인지의 범주에서 아주 멀어진다.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선택권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린 시절에는 느낌대로 행동해서 생기는 손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꾸지람이나 용돈 몇 천 원을 잃는 정도가 있겠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한 선택은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홧김에 한 주먹질에 직장을 잃고 전과가 생겨 인생을 송두리째 말아먹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가진 게 많을수록 '느낌'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무엇인가를 손에 쥐려면 기존에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현실성을 갖추도록 종용한다. 그래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속삭이면서.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이득 추구' 보다 '손실 회피'가 더 강하다.
1억 원을 얻은 기쁨과 1억 원을 잃은 기쁨 중에서 손실을 보았을 때의 고통이 전자의 쾌락보다 더 크다.
아닌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거나 교도소에 들어가 있다.
어떤 분포에서든 3lσl 밖에 있는 '예외'들은 고려하면 골치 아파지기 시작한다.
결국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인데,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개인사업을 해서 어마어마한 부를 가져, 마음만 먹으면 물질적인 것은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사람과
지루하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다니며 가끔 특별한 날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가지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
선택을 하라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취. 일궈진 부, 명예 등을 보고 전자를 선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운과 실력 그리고, 노력이 모두 받쳐줘야 가능한 것인데 저것들이 모두 거저 주어진 다도 하더라도 운영이나 할 수 있을까?
분모와 분자가 같은 비율로 커지면 그 둘을 나눈 값은 일정하다. 분자가 급격히 증가한다고 해도 분모도 급격히 증가한다. 거대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기질이 타고났거나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그 정도의 압박감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된 것이다.
헬스장에 처음 간 사람이
벤치프레스 50kg를 한 번 들어 올리는 것과
5년 동안 꾸준히 한 사람이
100kg을 한 번 들어 올리는 것과
둘 중에 무엇이 더 대단한가?
결과적으로는 100kg가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그 각각의 배경을 살펴본다면 전자의 경우가 더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다. 만약 이 의견에 동의를 한다면 지루하지만 정년이 보장된 직업을 다니는 삶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모든 사람은 성장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 성장이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더욱.
그러면 그냥 있는 그대로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평생 이렇게 살라는 것이냐?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는 수많은 선택이 주어진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물질에는 그 양이 정해져 있고, 그 물질을 얻기 위해서 화폐를 사용한다. 돈을 사용한다.
나에게 주어진 돈을 어떻게 사용하면 가장
즐겁고, 행복하고
머릿속에서 도파민이 쭉쭉 나오게 될까에 대한 고민이다.
능력을 개발시켜 많은 돈을 벌면 되지 않나?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결국에는 분배를 해야 한다.
돈이 무한정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Show me the money'
인 상태에서 상대와 하는 게임이 재미있는가?
공대생이 1+1, 1+5 따위의 단순 계산을 하는 게 재미있는가?
무한정한 재화는 남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 줄지언정, 본인에게는 그다지 가치가 없다.
돈은 모든 물질의 교환수단이므로, 모든 물질이 가치가 없어진다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일반인의 상식 범주에서
무한에 가까운 돈을 가진 사람들은 돈이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이념, 가치, 꿈 등이 목표가 되어 그를 움직이는 동기가 된다.
돈을 좇으면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자원의 효과적 분배.
내 결론이다.
ε = 산출량/투입량은 모든 분야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위를 효율이라고 부르자.
효율은 1, 2, 3... N가지 분야에 있어서 각각 그 수치가 다르며, 사람 마다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
예쁜 옷을 소비하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반대일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은 없고, 사람마다의 차이만 있다.
필수재의 경우 그다지 관심이 없는 분야라고 해도, 최소의 투입은 해야 한다. 의복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는 TPO를 지켜서 입어야 한다. 먼저 필수재에 최소수치의 재화를 투입을 한다.
이것이 당신이 숨만 쉬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화이다.
정해진 것은 없다. 누군가는 50만 원, 누군가는 100만 원일 수도 있다.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면 된다.
미래를 위한 준비로 저축을 해야 한다. 저축이건 투자건 그 방법에 대해서는 정할 필요가 없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리스크를 감당해 볼 테면 나중에 큰 수익을 얻을 수도 쪽박을 찰 수도 있다.
필수재가 밥이라면, 그 나머지는 간식이다. 어떻게 사람이 밥만 먹고 살아갈 수 있나. 가끔 빵도 먹고, 커피도 먹고 골프도 치고 하면서 살아가야지.
각종 다양한 것들에 대한 소비를 해보면서
내가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그러면서도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 드는 것을 찾는다. 나는 이것을 취미라고 부른다. 개인에게 큰 즐거움을 주지만,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드는 행위는 취미라고 부르기 어렵다. 월급쟁이 직장인이 개인요트를 가지고 싶다고 욕심을 부리면 (1) 금자 씨에게 혼쭐이 난다. 소비를 조금씩 늘여도 보고 줄여도 보고, 손으로 더듬어 가면서 가장 적절한 정도를 찾는다. 취미를 사치재로 분류하는 것에는 좀 불편한 감이 있으나. 정말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사치재로 분류를 하는 듯하다.
(1) 금자 씨 :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친절한 금자 씨'의 주인공이다.
결론은 인생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소득 = 필수재 + 저축 + 사치재
위 항등식을 세밀하게 튜닝해 나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고정지출을 최대한 동여매고, 사치재를 전혀 소비하지 않는 구두쇠 짠돌이의 삶도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저축 없이 돈을 펑펑 써대는 사람도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비율을 찾아서,
특별한 날에는 스테이크 썰었다가,
돈이 좀 쪼들려서 평소에는 닭가슴살 씹었다가.
일 년 내내 집안에서만 놀다가.
연말에 시원하게 10일 동안 해외여행을 떠나는
삶에 냉탕과 온탕이 있는.
기복이 있으나 충분히 조절 가능한.
어떨 땐 눈앞의 고통을 선택하기도 하고,
가끔은 힘들어질 것을 알면서 배짱도 부려보는,
우리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일 수 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고
내 안에 있는 행복을 꺼내는 과정이 쉽지 않을 뿐이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이제야 와닿는 것은 내가 나이를 조금 더 먹은 탓일까?
'고통을 줄여주는 모든 것에는 중독성이 있다.'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가자면,
중독성이라는 것은 '내성'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고,
어떤 행위를 10번 할 때의 쾌락이 1번 할 때의 쾌락보다 10배가 아니라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만족도가 선형적으로 증가할 때,
비용은 지수적으로 증가하며
비용이 선형적으로 증가할 때,
만족도는 로그적으로 증가한다.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위의 말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건 뭔지 아는가?
내가 혼자 생각해 봤던 것들 어떤 분야에서는 기초 중에 기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제학에서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심리학에서는 '범위빈도이론'
의학에서는 '내성'
수학자들이 난제랍시고 머리를 싸매고 있던 어떤 문제가 있었는데, 지나가던 물리학자들이
"어? 이거 ~~ 아냐?"하고 던지고 간 한 마디에 단박에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 않았는가.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2026. 2. 2.(월) 14:19, 5 생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