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은 무료
뻗치는 머리칼을 원망하다가, 손바닥을 비벼낸 열로 살포시 눌러본다. 잠깐의 양보가 거울 속 모습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 언제까지고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닌 체와 알은체는 말 그대로 '체'일 뿐이다.
어색하게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보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왜인지 나를 보는 것 같아 슬그머니 뺀다. 찔리는 것이 없는 척, 아닌 체를 하면서.
잠시 떠나 있던 곳에 돌아와 반가움도 잠시, 나 없어도 잘 돌아가는 세상에 서운하다. 대체가능한 인력은 어쩔 수 없겠지만, 대신에 대체 불가능한 인격을 가져보려 한다. 떠난 곳에는 내가 모르는 것들이 있더라. 하지만 알은체는 못 한다. 원체 표정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드러나는 투명함은 이럴 때는 못내 아쉽다.
솔직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솔직함은 나를 위한 것인가 상대방을 위한 것인가. 내 마음이냐 상대의 마음이냐. 무엇이 편해지는 것인가. 입으로 하는 솔직함보다 표정으로 하는 투명함을 하련다. 선택한 적은 없지만, 애초에 선택권이 있지도 않았지만.
들키고 싶은 거짓말이 있다. 들킬까 봐 두려워 아직 거짓말은 못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난날의 나는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시간은 경화제인가 연화제인가. 내 입맛대로 취사선택을 하고 싶다. 아니 아무런 선택을 안 하더라도 알아서 잘 작용했으면 좋겠다. 기가 막힌 피드백 시스템을 갖춘 항온항습계를 달아내고 싶다.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몰입하는 순간의 시간은 순식간, 아니라면 천년만년이다.
즐거운 순간은 너무나 빠르다. 이 시간이 언제까지고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역설이다. 시간이 멈춘다는 말은 하나도 몰입하지 못하는 상황과 같다.
의미부여는 무한동력이다. 의지의 외주이다. 비용은 무료다.
인간은 아니, 지성을 가진 것들은 무의식이 의미를 연결한다. 의미를 찾거나 부여하는 순간 지루함은 사라지고 목적과 내가 온전하게 남는다. 방해되는 것들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한다. 빙판이 미끄럽다한들 아이젠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과 같다. 자가최면의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남에게 피해는 없다. 비용이 없는데 긍정적 산출이 나온다? 무한동력이다. 물리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그러면 사랑은 말이 되나. 무한동력은 있다. 의미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중에 으뜸은 사랑이다. 있는 힘껏 사랑하자. 이유를 찾지 말자.
많이 가진 사람이 행복한가?
행복은 정량화가 불가능하다.
화폐가 발생하기 전의 원시적인 시장경제와 같다. 어떤 사람은 보리보다 쌀이 좋고, 어떤 이는 그 반대이다. 10개의 재화가 있으면 10 combination 2 만큼의 비교가 생긴다.
행복은 그릇에 차오르는 수위라서,
사람마다의 주된 그릇과
그릇에 물을 채우는 종지의 크기
종지를 쥐는 방법, 종지의 종류, 물을 퍼올리는 횟수 등등
그리고, 그릇의 입구, 그릇의 구멍의 크기에 따라서 다르다.
그래서 정량화가 불가능하다.
나는 잘 때 가장 행복해.
현실에서의 도피일 수도 있지만, 말을 꼬아 듣지 말아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사람이 그렇다는데 왜 상대가 이러쿵저러쿵 입을 대는가? 기준이 다르다면 맞춰보면 된다.
기준이라는 것은 결국 비교를 위한 것인데
인치로 된 자와 센티로 된 자를 각각 들고서
단위는 읽지 않은 채 숫자로만 비교를 하면 제대로 된 비교가 될 리가 있나. 얄궂게도 저건 사람의 숫자만큼 있어서 일대일 비교가 아니라면 가늠조차 해볼 수 없다. 일대일 비교라면 가늠은 가능하다. 가늠하는 방법은 대화이다. 대화야말로 사람 간에 해볼 법한 일 중에 가장 재미있다.
물론 내 기준에 그렇다.
내 기준이니 내 말이 맞다. 당신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그래서 당신 기준에는 뭐가 가장 재미있는데? 알려주라. 나는 꼬아 듣지 않아서 있는 그대로 알아먹는다. 그래서 편하게 꺼내서 보여줘도 된다. 싫으면 안 그래도 된다. 자유다.
2026. 1. 25.(일) 11:00 성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