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입니다
증거 있어요?
교사를 하면서 자주 듣는 말 중에서, 승질머리 돋우는데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증거 있냐는 말에 화가 나는 것은 교사의 입장이고, 무엇인가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한 것 아닌가? 생활지도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근거를 객관적인 '증거'로 받아보기를 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의문에 대한 설명을 위해 필자는 컴퓨터를 켰다.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증거'없는 생활지도가 가능하며, 그리고 그러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설득의 글이다.
먼저, 교육기관과 사법기관의 차이에 대해 먼저 비교를 해봐야 한다. 능력이 제한되지 않은 자유인들과 그 자유인 상호 간의 물질/정신적인 교환으로 구성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익과 불이익에 대한 견해가 각기 다르기에 잦은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각자가 알아서 힘으로 해결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 해결했다지만, 사회의 규모가 너무 다원화되면서 앞서 제시한 방식으로는 해결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권리 행사의 일부를 큰 집단에게 외주를 맡겼다. 여기서 큰 집단이라 함은 '국가 혹은 정부'이고, 그 집단이 하는 권리 행사 중 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한 규칙이 바로 '법'이다. 모두가 이타적이며 상호 간의 의사소통에서 발생하는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유토피아에서는 법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기에 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최소 안의 도덕인 '법'이라는 체계는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법이라는 것이 듣기 좋게 말로만 청하는 '권유'느낌으로 존재한다고 해보자.
"A님 소유의 물건이 아니라면 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가져가시면 안 됩니다."
저런 형태의 말랑한 법을 사람들이 지켜준다면, 역설적으로 법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모두 콜버그 5단계가 아니므로 법은 말랑말랑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단한 형태의 우리 법조문을 보자.
제360조 (점유이탈물횡령)①유실물, 표류물 또는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
우리의 형법에는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한 자는 '나쁜 행동이에요.', '혼나야 마땅해요.' 정도가 아니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헌법상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인 자유권과 재산권을 '일부'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조문을 근거로 증거 없이 경찰이 사람들을 처벌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절도죄가 일어나는 빈도는 상당수 줄어들게 되겠지만,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기대효과보다 부정적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에 경찰 -> 검찰 -> 법원으로 연결되는 사법시스템 속에서 과연 입건된 자의 행동이 정말 절도죄에 해당하는지 위법성, 구성요건해당성, 책임성을 다 따져가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내려진 결론이 결코 피의자의 인생에 가볍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에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법시스템은 '증거'를 기반으로 피의자에게 부여될 수 있는 처벌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법치가 아니라 군주제나 다름없어지기 때문이다.
위에서 사법기관에서 '증거를' 기반으로 피의자를 처벌하는 과정과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다루었다. 그렇다면 교육기관에서는 왜 '증거'가 없이도 생활지도가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설명하겠다.
학교는 일종의 작은 사회라고 한다. 작은 사회라고 비유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규칙이 존재한다.
여러 사람의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각자의 역할이 부여된다.
정해진 시간 동안 머물러야 한다.
위에 제시한 내용 이외에도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학교를 작은 사회로 비유함에 있어 수긍이 안 가지는 않을 것이다. 위의 내용은 사회와 학교가 가지는 유사성에 대한 것이고, 어떤 비유를 할 때는 비유물과 비유 대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차이점은 아래와 같다.
사회의 구성원인 성인과 달리 학생은 제한능력자로 책임과 권리가 일부 제한된다.
규모가 작다.
차이점도 정리하자면 많겠지만, 골자는 학생은 아직 성장하고 있는 미성년자이면서 학교에서의 상호작용이 사회의 그것보다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학교에서 사회에서의 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학교에서는 학교의 실정에 맞는 규칙을 제정하고 이 규칙을 지키는 과정을 통해서 향후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법이라는 존재를 지킬 수 있는 준법정신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학교에서 규칙을 어겼을 때 '생활교육위원회(구 선도위원회)'를 개최하거나 '그린마일리지(상벌점제)'항목에 맞는 벌점을 누적시켜 벌점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였을 때, 생활교육위원회를 개최하여 수준에 맞는 처벌(징계)을 한다. 사법기관에서의 법적인 처벌은 교화의 목적이냐 응징의 목적이냐가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정답이랄 것이 없지만, 학교에서의 징계는 목적이 '교육'이다. 응징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상황에서도 그 권리 행사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해야만 한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을 배운다.
그런데, 미성숙한 학생이 교칙을 어겼다고 해서 학생의 인생에 비가역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처벌을 한다면 그 처벌이 과연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학생에게 내려지는 징계는 정말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학교 내에서 교내봉사를 하거나, 사회봉사나 외부 기관에서 특별교육을 받는 등. 귀찮고 번거로울지언정 학생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처벌은 내리지 않는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생활지도 및 징계는 결국 해당 행동의 수정을 통해서 학생을 교육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했지만, 예전에는 저런 번거로운 과정을 다 건너뛰고 사랑의 매라는 명목으로 체벌을 통한 교육이 이루어졌음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학생 인권이 대두되면서 더 이상 체벌을 통한 교육이 불가능하게 되자 학교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일어났다.
교칙을 어기는 학생을 체벌하는 것이 아니라, 선도위원회를 통한 징계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육기관의 사법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는 입장이라도 해도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납득이 어렵다. 뾰족한 수를 못 내놓고 방황하는 사이 시대가 조금의 불이익도 견디지 못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학교에 대한 불신이 문제인지, 자녀를 과보호하는 요즘 육아 트렌드가 문제인지, 점점 줄어드는 학령인구로 인하여 유치원에서 학부모에게 꼼짝을 못 하는 요즘의 현실이 문제인지.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하여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아래와 같다.
"우리 애가 담배를 피웠다고 징계를 하신다던데, 증거 있으세요? 아니 증거도 없이 학생한테 징계를 하니 많이 하는 것은 납득이 안되네요. 우리 애는 엄마인 제가 제일 잘 아는데, 부모가 무서워서 거짓말도 못 하는 아이예요."
"우리 OO 이는 지나다니는 폐지 줍는 할머님들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고, 힘드실까 봐 리어카를 밀어드리는 아이예요. 조부모님 생신 때 꼬박꼬박 전화드려서 재롱을 떠는 심성이 고운 아이인데,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욕설을 했다고요? 녹음한 증거라도 있으세요?"
"제가 불을 붙인 담배를 들고 있었지, 담배를 피우지는 않았어요. 옆에 흡연을 하던 친구가 잠깐 들어달라고 해서 들어준 건데, 이걸 흡연이라고 할 수는 없죠. 아니면 제가 담배를 피웠다는 증거라도 있으세요?"
교사가 바디캠을 달고 순찰을 다니지 않는 이상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학생을 어떻게 증거와 함께 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사진을 찍으려면 찍을 수는 있다. 그런데, 화장실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무슨 고초를 겪으려고 그런 무리한 생활지도를 시도하겠는가. 위와 같은 사례들은 한 치의 거짓말도 없이 모두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필자가 다 겪었던 일들이다.
결론은 이렇다. 학교는 사법기관이 아니고 교육기관이기에 '증거'없이도 생활지도가 가능해야 한다. 사법기관의 불이익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법 위반에는 비가역적인 불이익이 동반되므로 '증거'를 기반으로 한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교칙 위반으로 인한 교육기관의 징계와 생활지도는 학생에게 부여하는 불이익의 정도가 심하지 않고,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기에 부작용보다 긍정적인 면이 더 크므로 '증거' 없이도 생활지도 및 징계가 용인되는 것이 맞다.
교육기관에서 '증거'를 기반으로 생활지도를 요구하면 학교는 붕괴된다. 공교육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상되는 모습은 아래와 같다.
바디캠을 달고 수업하는 교사
분명히 한 행동을 발뺌하는 학생의 거짓말을 징계하기 위해 수 없이 많은 학생들의 증언을 교차점검하는 교사
증거수집을 위해 떨어진 담배꽁초와 학생 가방에 있는 담배를 비교하는 교사(어디선가 영장을 받아와야겠지)
교무실에 입장하기 전에 서면으로 동의절차를 거친 후 녹화를 하면서 진행되는 상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불필요한 소요가 너무나도 많은 '사법화'된 학교는 더 이상 학교로 기능하지 못한다. 사법시스템을 학교에 적용하기에는 문제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물론, 강제전학이나 퇴학의 경우에는 심각한 불이익이 맞으므로 어느 정도 사법적 절차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하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단순 생활지도 및 징계와 관련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필자의 바람과는 다르게, 학교에 점점 더 사법화된 시스템이 들어오고 있다. 교육지원청은 밀려오는 교육활동침해 신고와 학교폭력 신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정과 효율 그 중간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이 맞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학교라는 조직에서 공정 그 자체인 사법체계를 흉내 내는 것은 달리는 마차를 사람이 따라잡으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다.
학교의 생활지도 담당 선생님은 밀려드는 민원과 학교폭력 신고로 제대로 된 교육활동을 수행하고 있지 못한다. 결국 이런 현실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것은 규칙을 잘 지키며 사회의 건강한 개인으로 자라날 예정인 학생들이 건강한 상호작용의 부족, 수업 퀄리티의 하락등을 겪게 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하고 글을 마무리하겠다. 지금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교사들은 지난 시절의 학교의 불합리한 모습을 보고, 불만족을 충분히 느낀 상태에서 더 나은 학교를 만들고자 교직이라는 길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학생이 학교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도, 책임질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모른 체하는 것이 신상 보전에는 더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교사라는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겠는가.
학생의 바른 행동으로의 교정을 위해서 학부모에게 알리고 아이를 바른 길로 함께 변화시켜 나갈 수 있게끔 사실을 전달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이 '우리 아이에게 편견을 가진 것은 아니냐', '왜 우리 아이에게만 그렇게 뭐라고 하느냐', '증거 있느냐'와 같은 종류라면, 더 이상 정상적인 교육을 진행할 힘이 나지 않게 된다. 막말로 우리가 애를 학교에서 잡는다고 보상이 더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진심으로 학생이 바르게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봄으로써 느끼는 보람만이 오직 우리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이러한 진심을 이해해 준다면, 학교는 바뀔 수 있을까? 나는 수 없이 호소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시간이 언제까지 걸릴지는 모르지만 힘닿는 데 까지 노력해 볼 예정이다. 내 열정이 어떤 사고로 인해 꺾여버린다면, 내 안위를 지키기 위한 직장인이 되어버릴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