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없는 감옥
둘 만의 독립된 공간이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을 준다면,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비극과도 같은 창살 없는 감옥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왜 서로가 감옥을 자처하는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한 채 소리 없이 목을 옥죈다. 그 감옥은 밝고 화창한 경관을 제공해 준다. 언제나 망설임 없이 떠날 수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떠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조차 제기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가시적인 유형의 물리력만이 폭력이 아니다. 이 경우는 무형의 폭력이자 서로를 잠식시키는 화창한 비극이다.
한 연인이 있다. 20대의 불같은 사랑에 취할 때에는 몸이 타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내달리던 각자의 연애를 했을 테다. 불길이 꺼지고 나서야 인간에 대한 피로와 불신에 몸서리치다 본능을 거스르고 스스로와 타협한 새로운 기준으로 서로가 손을 잡았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말은 서로 한 적이 없겠지만, 본능을 거스른 선택이기에 자신의 선택이 틀릴 리가 없다는 자기 확신과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한데 어우러져 보기 싫은 장면이 있을 때 끼고 있던 두꺼운 안경을 벗어버리는 근시를 가진 사람처럼 행동을 한다.
지극히 인식론적인 관점이다. 존재는 '인식'을 통해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는 구절을 어디에선가 떠올리며 말이다.
지난날 나를 힘들게 했던 연인의 여러 단점들이 보이지 않는 새 연인은 잔잔한 즐거움을 주는 듯하다. 이 즐거움이 언제까지일 모르는 두려움은 덮어둔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