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남을 다치게 하는 일이 싫었어요.
언제부터 그랬는지 똑똑히 기억납니다.
지금이야 아니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남자아이들끼리의 주먹다짐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서로의 서열정리건,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건 무력을 행사하는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싸움의 승패와 무관하게 어른에게 알리지 않고 아이들 선에서 끝내는 문화가 있었기에, 더욱 성행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얼굴에 생채기가 좀 나더라도, 모른 척해주는 어른들도 있었고요. 그 모른 척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어려운 배려의 종류였습니다.
아이들의 갈등을 지켜보고,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야 문제가 없을는지, 어디까지 아이들의 손에 맡겨두어도 되는지 가늠하는 일은 너무 어려운 배려의 종류입니다.
남을 다치게 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만, 저는 특히 그러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유별났던 것 같아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싸움을 피하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종종 찾아왔었는데, 그 상황에서 도망을 가거나 항복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던 피해를 줄이고 서로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제압하되, 감정이 상하지 않게끔
적정 선에서 마무리하고 싶어
상대를 다치지 않게끔 무력을 사용했습니다.
생채기가 남으면, 그 생채기가 번지는 것도 그리고 생채기가 원래의 피부로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이 더 필요하니까요.
그 시절보다 성숙해진 지금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투는 일은 꼭 있습니다.
나만 편하자고 갈등을 미루고 모른 채 하는 일은 이기적인 일이지요.
회피적인 성향을 상대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속이 얼마나 답답할까요.
그래서 나는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싸움과 다툼 끝에는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게끔
좋은 다툼이 되도록 유도합니다.
서로에게 응어리진 감정을 모두 쏟아내고
서운함과 억울함을 달래고
다음에 혹여나 있을지 모르는 새로운 갈등을 방지하는 차원의 백신이 되고자 합니다.
백신도 그렇잖아요. 결과적으로는
나의 미래의 아픔을 방지하기 위함이지만,
맞은 직후에는 열과 무기력함이 찾아오듯이
철저히 계획되고 설계된 다툼은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입니다.
과거에 써놓고 마음에 들지 않아 쌓아 두었던 글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도 결국 내가 쓴 것이니까요.
미성숙함만이 가지고 있는 가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