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계절
여름은 사랑을 말하기 좋은 계절이지 않나요?
가을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사랑은 아닌 듯 합니다.
겨울은 더욱 아니죠. 날씨가 추워서 몸을 오들오들 떠는건
사랑으로 겨울을 이겨내면 모를까 겨울이 사랑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봄은 어떤가요. 겨울을 이겨내고
새싹이 돋아나는 이미지라서 사랑과 연결시킬 수도 있겠죠.
그런데, 사랑은 익어야 사랑이잖아요.
연인이 사랑을 바로 시작하나요.
만남을 시작하자마자 사랑이라고 부르지는 않죠.
시간이 지나 감정이 익어야 사랑입니다.
그래서 여름이 사랑을 말하기 좋은 계절이라 생각합니다.
봄은 마치 연인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의 감정을 알아가면서 호감을 주고받는
사귀는 사이의 전 단계, '썸' 단계로 비유해야 맞을 듯 합니다.
여름이 사랑을 말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한 이유를 말해볼게요.
여름은 덥고 습합니다. 더위와 습도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짜증나게 만드는 요소이죠.
그와 동시에 날씨는 맑고 화창합니다.
맑고 화창하다가도 몇주 내내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시기가 있기도 합니다.
사랑도 그렇잖아요. 서로 좋으니까 붙어있는데,
둘은 너무 달라서 사랑했지만,
너무 달라서 다투고 싸우기도 하죠.
원래 사랑이라는건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달라야하고,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같아야 하니까요.
원래는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모습들이,
가까이에서 지켜보다보면 단점이라고 느껴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반려자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보라고 하잖아요.
그 긴 시간을 여름에 함께 보내보는 것이 어떨까요?
여름은 사랑을 닮아, 사랑을 말하기 좋은 계절이니까요.
화창한 날씨는 관계가 좋을 때의 감정
덥고 습한 기온은 마음의 온도가 뜨거우니 발생하는 갈등이죠.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실망도 하지 않으니
허용치의 폭도 더 넓으니까요.
억수같이 비가 퍼붓는 장마의 기간은 마치
사랑을 하다 보면 으레 만나게 되는 위기의 순간과 닮아있죠.
여름이 끝나기 전에 다시 화창한 날씨로 돌아오는 것 마냥
사랑은 그것 또한 기꺼이 이겨냅니다.
서로를 알고 지내지 못했던 두 사람은
왜 서로를 특별한 관계로 규정짓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누는 것일까요?
늘 궁금해하고 고민을 해보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 여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사랑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니까요.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게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사랑을 하는거니까요.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 되는 것도 아니라.
그저 목적 그 자체인 것입니다.
사랑을 왜 하는지에 대한 마땅한 설명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귀 기울여 듣지 않으렵니다.
모든 것을 숫자와 팩트로 설명하고자 하는 차디찬
현대사회에서도 측정 불가능한 무형의 가치 하나쯤은 남아 있는게 낭만 아닐까요.
그렇다면 사랑을 하게 되면 얻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볼까요?
누군가는 이런 부수적인 효과를 노리고 사랑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부작용을 노리고 약을 먹어서는 안되잖아요. 마찬가지로 부산물을 얻으려고 사랑을 하는건 이치에 맞지 않아요.
호감을 가진 두 남녀가 서로를 연인 관계라고 결정하고 나면,
암묵적인 약속을 한 것 마냥 서로에게 구속되는 점들이 많습니다.
계약서를 쓰거나, 구두로 약속을 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암묵적인 룰이죠.
예를들어
상대방의 안위를 마음껏 걱정할 수 있는 권리라던가,
서로에게 만남을 눈치보지 않고 요청할 수 있다던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기꺼이 알려줄 용의가 생긴다거나 말이죠.
그런데, 굳이 저런 것들은 사귀는 관계가 아니어도 가능은 합니다.
이성간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런데 저러한 행동들을 나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불특정 다수와 한다고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프죠
그래서 연인관계가 된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자유로운 관계가 된다고 할지라도
아주 작은 얽매임은 동반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귄다는 것은 썸과 결혼은 중간 단계이니,
언제라도 말도 없이 종료될 수 있는 썸과
법률적으로 묶여있어 쉽게 갈라설 수 없는 결혼의
중간 정도의 구속의 상태가 되는 것이죠.
이러한 '사귀는 단계'는 법적으로 구속받지는 않지만
지켜야 할 암묵적인 규칙을 어기게 된다면
상대방의 비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령, 헤어짐의 의사를 충분히 전하지 않고 사라져버리는 잠수이별이나,
연인이 있는 상태에서 타인과 연정을 맺고, 헤어진 직후에 다른 사람과
만나버리는 환승연애와 같은 행동들은
비난받습니다. 우리가 정한 연인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덕률에 위배되기 때문이죠.
주제를 벗어나 골치아픈 말들을 주저리 써놨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름은 사랑을 닮은 계절이란겁니다.
써놓고 마음에 들지 않아 서랍에 한참이나 묵혀놨던 이 글이 속상해할까 두려워.
못난 모습도 내 모습이려거니 감싸안아주는 심정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장마가 끝나고 구름이 걷혔습니다.
역시 억수같이 비가 퍼붓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화창한 날이 목 뒤를 따갑게 하는 것을 보면
"그 변덕스러움이 사랑을 닮았다."
이런 결론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