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가장 거리가 멀기에, 오히려 가까이하는
예술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내 머릿속을 끄집어내어 정리를 해본다면,
예술과는 아주 동떨어진 구조들이 보일 테다.
그렇기에 나는 예술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한다.
뾰족함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모든 면에 있어서 다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천상 이과라서, 이공계열 관련 말고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어. 그래서 일부러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나랑 관련 없던 것들을 일부러라도 더 채우려고 노력했지. 내가 봤을 때는 너도 그럴 필요가 있어 보여. 이유는 나중에 네가 이 말이 기억날 때쯤 알게 될 거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말을 약 10년이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대학시절에는 저 말을 잊고 신분만 성인인 채 고등학교 시절 모습 그대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천상 문과인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서 나도 모르는 채 물들어버려,
나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하게 해 준 마중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결론은 그렇습니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관심이 크게 있는 것도 아닌데요.
그냥 생각 없이 보다 보니 더 보이고,
다니다 보니 일상이 되고,
그러다 보니 습관이 되고,
이제는 즐긴다고 봐도 될 정도인 것 같아요.
특히 짧은 식견으로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맞으면 '오 나 좀 예술적 감각이 있는지도?'
틀리면 '허 현대미술은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이라고 중얼거리며
의미의 정오에 무관하게 아무런 페널티가 없으니까요.
이제 내가 실제로 봤던 것들을 짚어보려 합니다.
[키스]
[구스타프 클림트, 캔버스에 유채]
이 그림은 아주 유명한 그림입니다.
남녀가 절벽에서 키스를 하고 있죠.
여성은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있습니다.
남성은 고개를 꺾고 있네요.
솔직히 뭐, 미술이라고는 공통교육과정에서 찰흙 조물딱거리기와 친구 얼굴 그리기가 전부인 '물리학'전공인 제가 의미에 대해 가늠이나 하겠습니까?
다만, 저 그림을 실제로 봤을 때 그 웅장함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2017년, 겨울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에서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180cmX180cm의 반짝반짝 빛나는 그림은 그 아무리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이라고 할지라고 경탄이 나올 법 합니다.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
누가 봐도 화려하게 꾸며진 정원으로 둘러쳐진, 예스러운 궁전 안에 삼엄한 경비 속의 성인 남성 키만 한 그림.
비전공자는 유화를 손댈 일이 없죠.
유화는 그 그림의 질감이 입체적입니다.
화가의 붓 터치가 살아있죠.
그렇잖아요, 종이에 볼펜으로 쓴 글을 좋아하는 제가 캔버스에 유화를 싫어할 리 가요.
처음으로 미술 작품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꼈던 순간이라서 소중한 기억입니다.
그냥 멍 하게 홀린 듯이 보다가 나왔습니다. 거대한 크기, 빛나는 그림, 물감의 질감.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장한 느낌을 주는 두 남녀의 구도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뮤지엄 산]
[뮤지엄 산, 안도 타다오]
괴생명체 같이 붉그스름한 저 조형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턱이 없죠.
다만, 공간 전체가 노출콘크리트로 꾸며져 있는 공간에서 요즘 유행하는 러프한 분위기의 카페들의 원형을 발견한 것 같아 기뻤습니다.
"아 사람들이 이걸 보고 영감을 얻었겠구나"
[돌로 만든 정원, 뮤지엄 산]
돌로 만든 정원이라뇨.
처음에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 까지는
"정원에 조경석이 좀 많겠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아버님이 취미로 공부하시던 조경기능사 책에서 조경에서 돌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는 말을 봤던 기억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직접 가보니
'돌'
'돌'
온 사방이 다 돌이었습니다.
메인이 식물이 아니고 돌이었어요.
그럼 저것을 석정원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어떻게 불리는지는 차차하고,
전혀 삭막하게 느껴지지 않음이 신기했습니다.
식물이 주가 아니라서 계절의 영향보다는 조망하는 그 당시의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방문했던 날은 화창했지만,
흐린 날 방문했다면 어떠했을까요?
보통 정원을 간다고 하면 푸르게 펼쳐진 맑은 하늘에 구름이 조금 깔려있는 정도가 이상적이겠지만,
돌로 만든 정원은
흐린 날의 음산함이 오히려 잘 어울릴 것도 같더군요.
원주에 방문할 일이 꽤 있는 나는
흐린 날 한번 더 방문할 예정입니다.
[석정원 내부의 명상 공간, 뮤지엄 산]
석정원 내부에는 '명상'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명상이라는 말은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실제로 시간을 내서 명상을 해본 적이 있나요?
나는 단언컨대, 명상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마음의 화를 다스리려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가만히 앉아서 화를 다스린다는 점에서는 명상과 조금 닮아있긴 하군요.
여하튼, 저곳에서 명상을 지도해 주시는 분의 설명을 들으면서 명상을 하고 왔습니다.
느낀 점을 짧게 요약하자면
'이완'입니다.
근력운동도 마찬가지죠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근육이 찢어지고, 회복되는 과정에서 영양과 휴식이 충분하다면 근육은 과회복되어 성장합니다.
현대인은 '이완'이 필요합니다.
수축만을 부추기는 각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편안하게 이완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국립 현대미술관 청주]
[기억 안 남]
앞 구르기 하면서 봐도 현대미술이죠?
꼽등이들이 싸우고 있는 것일까요?
저걸 보고 의미를 추론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범인입니다.
현대미술 중에서도
세태에 대한 비판이나
무엇인가를 꼬집는 류의 녀석들은 대략적으로나마 그 의미가 가늠이 되지만,
저런 녀석들은 도통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작게 축소된 모형이 있다면 책상에 하나 올려두고는 싶네요.
알은체를 하고 싶어도,
말을 꾸며내지 못할 정도로 난해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론 뮤익]
현대미술인데, 조금 더 친근합니다.
멀리서 다가가면서 볼 때는 연인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 히 보니 표정이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무어라 말하기에 오묘했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볼까요?
가까이서 보니 표정이 연인의 그것과는 풍기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림은 평면에 물감으로 질감을 표현하는 것이나 원근으로 심도를 조절하는 것에 한정된다면, 조소는 실제로 입체적이기 때문에 조망하는 각도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이 독특합니다.
일밙적으로 연인의 손목을 저렇게 잡을 리는 없죠.
둘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확실시되는 순간입니다.
저 작품이 가지고 있는 깊은 의미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정도 감상은 남길 수 있네요.
이건 누가 봐도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고단함을 표현하고 있군요.
표정, 양손에 짐이 가득 들어찬 장바구니
어머니만을 바라보고 있는 아기의 시선.
부담감이 가득합니다.
[리움, 마우리치오 카텔란]
마우리치오 카텔란,
바나나를 덕트테이프로 고정시킨 것으로 유명하신 분이죠.
위에서 소개했던 [론 뮤익]과 비슷하게 워낙 전시 자체가 인스타그래머블해서 사람이 미어터졌습니다.
결국 티켓팅에 실패하고, 다른 전시를 보러 리움에 들렀다가 비둘기 사진 하나 남기고 왔네요.
전시에 입장을 해야 이것저것 볼거리가 있을 줄 알았지만, 예술계의 악동답게 메인 홀에만 들어가도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작품부터 구석에 누워있는 노숙자에
인포 위에 쭉 나열되어 있는 비둘기들...
꽤 작위적이고 상징적인 작품들이 있다고 사진으로 봐왔던 터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우리나라는 예술을 즐기기에 참 좋은 나라입니다.
해외의 같은 전시에 비하면 티켓 값이 반이 안 되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배금주의하면 딱 떠오르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닐까요.
물질의 소유가 곧 가치로 귀결되는 논리가 판치는 우리나라에서는 전시회 티켓이 가장 쌉니다. 즐기는 사람은 소수인데, 가격이 싸다뇨?
시장경제를 무시하는 가격이 통용되는 이유는 역시 누군가의 개입이, 세금이 투입되어서겠죠.
덕분에 서민인 저는, 값싸게 나의 허름한 아비투스를 치장할 기회를 얻었지만 바람직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소프트파워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지금, 물질과는 조금 먼 것들에 더 관심을 가지는 주류 문화의 흐름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생각하기에 예술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의식적으로 가까이하려고 합니다. 인생에 있어 뾰족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모든 면에 있어서 뾰족해서는 개성이 아니라 괴팍이 되니까요.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도, 익숙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