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답 없음

교사 입장에서는 무서운 말이죠. 근데 그거 아닙니다.

by 박승연

어릴 적에는 늘 정답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정답이 존재하는 일이 흔치 않음을 압니다.


그래서 답이 정해지지 않아, 내가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들에

매력을 느낍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이 나쁘지 않습니다.


원래 통제 불가능, 예측 불가능한 것에 매력을 느끼니까요.

세상일에 다 정답이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요?




예전에는 그렇게도 아득바득 정답은 존재할 것이라 중얼거리며

정답을 몰라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우겨댔습니다.


객관식 5지선다형 교육의 희생양이라고 하기에는

5지선다를 잘 풀지를 못해서 탓하기가 좀 그렇네요.


지금은 일부러 정답 없음을 찾아다닙니다.



[반미 샌드위치]


반미 샌드위치를 처음 먹어봤습니다.

빵의 식감이나 맛이 바게트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풍미가 짙고, 부드러워서 궁금해졌습니다.


역시나 찾아보니 바게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새롭게 재해석하여 새로운 장르가 되었더군요.


바게트는 정답이고, 반미는 오답일까요?

역시 정답은 없습니다. 취향만이 존재하겠죠.


저는 둘 다 좋습니다.



[전시회]


정답 없음의 대표 주자는 역시 예술이죠.

카메라가 사물이나 인물을 정교하게 담아냄에 있어

인간 화가를 뛰어넘는 순간


그림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고,

지금은 대상을 정교하게 그려내는 것은 그리 매력적인

예술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뭐, 극사실화라는 장르도 있죠.


결국 다 정답은 없어요. 취미만이 있을 뿐


회랑 구석에 사탕을 쌓아두고

손님들이 사탕을 하나씩 집어먹는 행위예술부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있지만

대놓고 파이프를 그려놓은 그림도,


바나나를 벽에 덕트테이프로 고정시켜 놓은 것도

다 예술로 인정을 받는 것을 보면


내가 밥 먹고 뛰다가 옆구리 통증을 느끼지만,

10km를 뛰어야겠다고 한 다짐 때문에

옆구리를 붙잡고 뛰어다니는 것도 행위예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식]


음식에 대한 취향만큼이나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있을까요?

그런데, 소신 발언을 하자면

정답이 없다고 했지, 오답이 없다고는 안 했습니다.


회식 메뉴를 정할 때


"아 저 해산물을 못 먹어요."


이 말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출현하면

회식 장소가 삼겹살, 족발, 곱창으로 고정되는 상황이

심히 안타깝습니다.


해산물러버인 저는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그래도 어쩌겠나요. 아쉽지만 모두가 갈 수 있는 곳을 가야죠.


내심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떨까 고소한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아, 제가 페스코베지테리언이라 육류를 못 먹습니다."

[페스코베지테리언 : 채식주의의 한 종류, 어류나 수산물을 허용하는 채식주의의 한 분류다.]



[시험 답안 '정답 없음']


아 끔찍합니다.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정답 없음'의 악몽은 때는 바야흐로 2017년 대수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물리교육과를 가겠다는 신념으로


과학탐구 선택 : 물리 1, 물리 2
[똥고집 피크 10대 후반 박승연 作]


저런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성적은 뭐.. 나름대로 적당히 나왔다고 생각했건만,


"뭐요? 물리 2 9번 문항에 오류가 있어서 '정답 없음'처리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정답으로 인정된다고요?"


열이 잔뜩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습니다.

만약 정답 없음 처리가 등급을 내렸다면 진학했던 대학은 바뀌었을 것이고,


꽤나 마음에 드는 지금의 내 모습은 없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교사가 된 나는 또 한 번 '정답 없음'을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는 피해자가 아니고, 내가 정답 없음을 만들었습니다.

시험에 응시한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나름 복합적인 개념을 물어보겠답시고,

화학문항에 아주 공을 들였건만


공을 들인 녀석에서 사고가 터질 줄은 몰랐죠.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