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보다 더 중요한
인생에서 취향을 찾는 것만큼 중요한 콘텐츠가 있을까요? 취향은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라 눈여겨볼만합니다. 취향은 숫자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일만합니다.
누다 더 낫고 못났고를 따지지 않기에 찾는 과정이 더 의미 있습니다.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모든 것을 계량화하여 숫자로 나타내지 못하여 안달을 내기에 취향은 그 속에서 더 빛납니다.
나도 가끔 놀라곤 합니다. 큰맘 먹고 산 27만 원의 최신의 러닝화보다, 군대에서 보급해 준 투박한 러닝화를 신고 달리는 것이 더 취향에 맞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이처럼 취향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취향을 찾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비용을 투입하는 과정이 즐겁다고 하더라도, 비용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건만, 의외의 장소에서 더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는 일도 종종 있기에 낯섦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시도해 보는 태도는 취향을 단단하게 다지는 데 도움이 되는 훌륭한 친구입니다.
취향을 다루는 데에는 타인과의 소통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요철이 분명한 타인과 대화하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초대받는 동시에, 그 세계의 전문가가 손을 잡고 길을 안내해 주는 호사를 누리는 일과 마찬가지니까요.
나를 초대해 준 당신에게 받은 감동에 대한 대가로 내 손을 뻗습니다. 상대는 나에게 내밀었던 손과 같은 손으로 내 손을 맞잡습니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는 한 치의 지루함도 느낄 수 없이 흠뻑 빠져들어 정신을 차려보면 시곗바늘이 한달음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시간 들여 기꺼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타인이 그리도 예뻐 보일 수 없습니다. 관심사의 공유인지, 관심이 없는 것에도 귀 기울여주는 태도인지 분간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세간의 말은 잊어버린 채 가벼운 지갑은 뒤춤에 욱여넣고 입을 쉴 새 없이 놀립니다.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가 지나고 보니 즐거운 기억으로 미화되었지만, 불필요한 힘듦이 없지는 않았기에 상대를 편히 포장된 길로 이끌고 싶은 내 욕심입니다.
10억 아파트가 15억이 되었니, 주식이 요즘 오르는 추세라 미장보다는 국장에 관심을 가져야 하니와 같은 대화도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대화이지만 순수한 기쁨은 역시 숫자놀음과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누가 더 낫고, 못났고를 따지지 않으니 취향에 대한 한판 승부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해 질 녘의 노을 진 하늘 중에서 누가 더 나은지를 가리는 것은 의미도 없거니와 결과 또한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 순간이 아름다운지 그 하늘을 보았을 때 있었던 일에 대한 회상이 연상되는 과정이 의미 있습니다.
나는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지만, 내 취향이 아닌 것도 꾸준히 시도해 봅니다. 이렇게 하여 손해 보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내가 경험한 새로운 세상이 나와 잘 맞다면 새로운 취향을 개발한 일이라 내 인생의 해상도가 더 높아지어 인생이 선명해집니다. 나와 잘 맞지 않다면 내 분명한 취향을 공고히 하는 일이라 내 인생의 선명도가 높아지어 취향은 단단해집니다.
취향이 단단해지고 넓어지니 허비하는 시간이라 치부되는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취향을 찾는 일은, 이리저리 고개를 세차게 둘러보며 한 순간도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굴어도 온통 즐길 것들이 지천에 깔려있는 테마파크 같습니다.
이처럼 취향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성향은 뭐랄까요. 어떤 음식에 붙어도 기가 막히게 적당히 맛을 돋워주는 미원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심심한 맛의 평양냉면을 찾아다니지만, 가끔은 아무 고깃집에서 목이 컥 막히는 냉면도 주문하곤 합니다.
감칠맛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숙성회를 좋아하지만 사정없이 비벼낸 막장에 푹 찍어 마늘 하나, 청양 하나 쥐어낸 초장 범벅의 활어회가 당기는 날도 있습니다.
땀을 흘리는 후덥지근한 날씨를 싫어하지만, 물을 안 먹어도 될 정도로 푹푹 찌는 날에 땀을 사정없이 흘리며 강렬한 햇빛 아래에 나를 던져두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관심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지만 가끔은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게 경험하려 하는 내 삶에 대한 태도가 마음에 듭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범람하는 강 위의 위태로운 외딴섬 같은 내 자아 위에 뿌리내리고, 줄기를 세우는 작은 식물처럼 굴 수 있게끔 도와주는 녀석들이 내 취향입니다.
강이 나를 휩쓸고 지나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내밀고 원래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작은 녀석들이 올라오곤 하니까요.
색은 다양하지만, 그 색이 한데 어우러져 검정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그 각각의 고유한 특색을 각자가 머금고 자신의 존재감을 있는 대로 뽐냅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사람과도 말을 시작하면 결국엔 흥미로운 구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인생의 궤적과 겹치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니까요.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일은 양손에 쥘 수 없는 것을 쥐고 떼를 쓰는 어린 아이나 해봄직한 행동이지만, 모두와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나마 욕심부려 볼만한 범주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