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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

무알콜 맥주

by 박승연

* 본 게시글은 하이트진로와 무관합니다.



강변을 거닐면,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귓가에 웅웅 거려요. 말하는 내용이 뭉그러져 들리니 귀에 거슬리지는 않아요.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한 희미한 자동차 경적 소리도 함께 어우러져 백색 소음을 이루기에 내가 무얼 듣고 있는지 헷갈리고요.


돗자리를 사놓고도, 공원에 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급히 편의점에 가서 싸구려 돗자리를 샀어요. 불필요한 소비를 했다는 나에 대한 미움도 그늘 아래 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홀연히 사라지고 없어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그만큼 공간도 충분히 넓어 간격을 유지해 주니 넓은 공간을 우리에게 선사해 준 이름 모를 공원 설계자에게 감사하고, 멋진 자연경관을 배경 삼아 터를 잡은 사람들이 부러워 배가 살짝 아프기도 해요.


볕이 따가운 날에는 그늘을 찾곤 하지만, 늘 그늘은 인기가 많아 자리가 없을 때면 한적한 양지바른 곳에 누워 얼굴에 읽으려고 벼르던 책을 올려놓고 누워요. 이 책은 자기가 이렇게 쓰일 줄이나 알았을까요?


머무는 시간이 결코 길지는 않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침 공기를 맞기 위해 움츠리고 있던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다 일어난 내가 창문을 열어서 하는 환기보다 훨씬 나아요.


의무감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보다는 내키는 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을 내내 품고 있지만, 또 그렇게 나를 내팽개치지는 못하는 내가 가끔씩은 대견해요. 시간 내어 북적이는 공원에 찾아갈 수 있게 하는 여유는 또 어디서 배워왔는지,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와 존경을 담고 살아가요.


이렇게 미적대다가 나른해질 때쯤 기지개를 켜고 돗자리를 접어야 해요. 환기라는 것은 하루 종일 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환기가 될 정도로만 하는 것이 좋으니까요.


내 상쾌해지는 기분과는 상반되게 돗자리의 바닥에는 각종 먼지와 풀잎으로 잔뜩 어지럽혀졌어요. 내 안에 묵은 것들을 돗자리가 가져간 것인가.. 이름 모를 홈쇼핑에서 봤던 독소를 빼준다던 발바닥 패치가 생각나서 남몰래 실실 웃었어요.


돗자리에 묻은 것들을 훌훌 털어내고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집에 돌아가면, 이렇게 해서 모인 돗자리가 한두 개가 아니에요. 나는 왜 매번 공원에 가고 싶을 때 돗자리를 챙기지 않는 건지...


그렇다고 차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싫으니 항상 곁에 두고 언제든 펼치고 싶은 멋진 돗자리를 알아볼까 고민하다가, "에이 무슨 돗자리를 또 사." 하고 방구석에다 돗자리를 쌓아놔요. 그 돗자리 더미들을 합치면 어디든 가서 뽐낼 수 있는 멋진 돗자리를 하나 장만하고도 남을 텐데 말이죠.


공원에서 하는 피크닉에 대한 낭만도 있어요. 혼자 하기에는 궁상스럽기도 하고, 나의 즉흥을 감내하기도 힘드니까요. 누군가가 제안한다면 즐거이 장을 보러 마트에 뛰어가지 않을까요?


바깥 날이 좋아서 자리 깔고 눕고 싶은 날씨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라 미리 계획이 불가능해요. 늘 어느 정도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 누가 그런 즉흥적인 제안을 해주지 않을까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젓고 인터넷 쇼핑몰을 닫아요.


멋진 자연을 배경 삼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대개 사회초년생이 자리 잡은 곳과는 거리가 있어 차량을 방문해서 이동해요.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켜면 뒷골이 땡길정도로 시원할 텐데... 아쉬워했던 나이지만, 이제는 멋진 친구가 있어서 아쉬움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취업을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했던 시절 깊은 인연을 맺은 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들은 대게 맛이 없거나 성분이 별로거나 꼭 한 가지씩의 하자가 있어 손이 잘 안 갔었는데, 이 녀석은 맛도 훌륭하고 성분도 좋은 데다가 가격까지 저렴해요.


이런 대단한 친구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내일 아침에 내 방문을 두들기니까요. 나는 항상 이 녀석을 차 트렁크에 넣어두고, 나의 즉흥을 부추기는 못된 친구로 삼았어요.


"얘, 날이 좋아. 얼른 볕이 드는 멋진 곳으로 떠나자."

"아... 바쁜데, 잠깐은 괜찮겠지?"

못 이기는 척, 등 떠밀려 가는 척, 하면서 손은 바쁘게 차키를 찾습니다.


날이 너무 춥거나, 너무 더워서 밖을 즐기기가 힘들면 굳이 나가려고 애쓰지는 않아요. 정확하게 말하면 '차' 밖을 나가려고 애쓰지는 않아요. 해가 지고 난 다음에는 차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거려 보이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놓고 트렁크에 있던 친구를 꺼내어 깨워내곤 해요.


터져 나오는 거품을 시트에 흘릴세라 얼굴을 가져다대 후루룩 하고는 경관을 구경해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빵빵하게 틀어놓으면 이게 피크닉이죠.


가끔은 분위기에 취하는 건지, 이 친구가 불량인 건지 취기가 오른 듯 얼굴이 화끈거리는 착각도 들곤 해요.


이걸 무슨 맛으로 먹냐는 친구의 핀잔에 아랑곳하지 않아요. 잔뜩 종과 횡을 맞춰 웅장하게 서 있는 친구들을 보면 흐뭇함이 올라와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듯한 착각을 주는 돗자리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어디로 향해야 할 것 마냥 엉덩이가 들썩거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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