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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뭐 하고 놀아? 1

내가 하는 것들

by 박승연

관심 없는 사람의 취향 이야기는

옆부서 부장님 꿈 이야기만큼 재미가 없다만,

나는 이 공간의 주인이므로


개의치않고 취향을 늘어놓으렵니다.

혹시 아나요? 나랑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랑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기회가 될지도.




1. 대파 피자

[용산에서 먹었던 대파 피자]


음식에 대한 편견이 없다.

남들이 먹고 즐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씹어서 삼킬 수만 있으면 다 음식이고,

음식이라면 뭐든 다 한번은 도전해본다.

물론 한번 먹고 연이 끊어진 음식도 있다.

(소 생간 등..)


대파 피자는 그 부류 중에서도 마일드하다.

누가 먹자고 했으면 당연히 알겠다고 할 법한 녀석.

대파가 토핑으로 들어간 피자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갈곳, 가본곳]에서 말한 것 처럼 나는 흥미로운

장소는 다 별표를 해놓고, 우연히 그곳을 지나기만을 기다린다.


아니, 기다리는게 아니러 저장해놓고 깜빡한다.


그리고 우연히 그곳을 지날 일이 있으면 방문을 한다. 가서 맛있었으면 내 세상이 넓어지는거고

맛 없었으면 내 세상이 단단해지는 것이니 손해보는 일이 없다.


결과는 완전 만족. 커다란 대파의 줄기에서 나오는 은은한 단맛은, 피자 도우의 밀가루와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살짝 아쉬우려는 찰나에 라임의 상큼함이 목젖을 탁 치고 간다.


"야, 즐거웠지? 멀리안나간다?."


경상도식 이별 인사를 내게 해준다.

재방문 의사가 가득하다.


사진 찍는 재주는 없어 실물을 제대로 못 담았지만,

실제로 가보면 인테리어도 훌륭하고, 분위기도 꽤나 난다. 좋은 곳이다.



2. 고수 족발 덮밥

[더현대 서울 안에 있는 푸드코트의 족발덮밥]


코리안 크립토나이트라고 불리는 고수는

'크립토나이트'라는 별명이 붙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첫 숟갈에서 알려준다.


나는 고수가 입맛에 안 맞는 사람이지만,

얼굴을 찡그리면서 계속 찾게 된댜.

입맛에 안 맞는데, 도대체 왜 이걸 계속 먹는가?


나도 고수를 먹고 맛있다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서 그렇다!! 나도 즐기고 싶다고!


시원한 맛이 살짝 나는 듯 하다가. 어느새인가 이게 맞나?라는 의문이 드는 '퐁퐁'맛이 난다.


퐁퐁 맛을 어떻게 아냐고?

텀블러 설거지를 하루에 세 번씩 하는 운동러들은 다 안다.


미처 제대로 헹구지 못한 텀블러 뚜껑 안에 발려있던 퐁퐁이 입에 들어가는 사고는 한번은 꼭 있기 마련이니까.


여튼 나는 이 퐁퐁맛이 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고수를 찾는다. 마라탕에도 넣어보고, 고수무침도 먹어보고, 고수를 뺄 수 있는 옵션? 그런건 무시한다. 시도하다 보면 언젠간 입맛에 드는 날이 있겠지.


저걸 먹고 바로 양치를 했었는데,

저녁 먹고 양치를 하다가 칫솔을 입에 넣은 순간 놀라서 칫솔을 던졌다.


칫솔에서 선명한 퐁퐁맛이 난다.

젠장, 끈질긴 것으로는 마늘 보다 더하군.


하지만, 얼굴을 찡그리는 경험도

나도 모르게 찾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은가.

또 고수를 넣고 있는 내 미래의 모습이 보인다.



3. 알콜

3-1) 아드벡 우가달

[아드벡 우가달]


나는 술을 꽤 좋아하는데,

취하는 느낌이 좋다기 보다는 맛과 향으로 마신다.

커피도 좋아하고, 만년필 잉크도 좋아하고

향수도 좋아하는 것을 보아하니.


유리병에 들어있는 값나가는 액체는 다 좋아하는 것 같기도?


술은 마시더라도 취할 때 까지 마시지는 않는다.

어릴때야 부어라 마셔라 죽을 때 까지 마셔댔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음주의 기준은


위스키 두 잔

소주 한 병(한라산이면 좋다.)

사케 한 병(사실 이것도 과음이다.)

샴페인 반 병(혼자 먹기엔 탄산이 세다)


이정도이다.


여튼 나에게 딱 한잔의 술만 먹을 수 있다면

나는 고민 없이 피트를 고른다.


피트는... 그 알 수 없는 특유의 꼬린내가 나를 미치게 한다.(잘 숙성된 고다에서 나는 꼬린내와 뉘앙스는 다르지만, 강도는 비슷하다.)


물론 피트라고 다 비슷하진 않지만

저숙성 피트에서 오는 짜릿함도

바다맛 짭짤함도

고숙성 피트에서 오는 꼬릿함도 모두 좋다.


아드벡 5년도 나는 좋다고 잘 마셔서

다행스럽게도 엥겔지수의 폭발적 상승은 막아냈다.


아드벡 우가달은... 아드벡 텐에 푹 빠져서 한병을 사다놓고 마시고 있던 와중에


욕심내어 한발짝 더 나아간건데,

하... 이래서 인생은 업그레이드는 있지만 다운드레이드는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피트가 입맛에 맞다면

라프로익10(병원맛)

아드벡10(설명 못 함, 어휘력이 부족해)

라가불린16(모닥불 맛, 이해 안 가죠?)

탈리스커10(바다에서 건져올린 석탄맛)


이 네 녀석에서 멈추길 바란다.


지갑을 소중히 여겨라.



3-2) 아벨라워 아부나흐


나는 CS를 좋아한다.

CS는 쉽게 말해서 물타지 않은

위스키 원액 그대로를 담아낸 것을 말한다.

뭐, 물론


마스터 디스틸러(위스키 증류소의 '맛'파트 대장)

가 캐스크(위스키를 숙성시키는 오크 통)별 편차를 맞추기 위해서 캐스크 원액을 블랜딩 하긴 하지만


우리가 먹는 40도짜리 보통 녀석들과는 다르게

물을 안 탄다.


그래서 보통 50도가 넘는다.

고도주의 그 목젖 스파이크는


한 잔이면 한 시간동안 즐기기에 충분하다.

소주 한잔을 따라내어 안주 하나에 술 한잔

꿀떡꿀떡 넘기는 그 한국식 음주도


경우에 따라서는 나쁘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앞구르기 하고 점프 스쿼트를 반복하면서 생각해도

위스키 한두잔을 마시는게 건강 측면에서는 더 낫다.


사실 그래서라기보다는 맛있어서 먹는거지만.


CS는 강하다.

그래서 CS는 먼저 먹지 않는다.

다른걸 몇잔 마시다가 피니쉬로 한잔 딱 먹고 나온다.


아벨라워 아부나흐?

달달한데 강력하다.


바틀에 있는 라벨을 보면

올로로쏘 셰리 어쩌구 하는게 적혀있는데

그냥 '셰리'라고 하면 달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와인이 포도맛이 아니듯이, 셰리와인을 숙성시켰던 캐스크에 숙성시킨 위스키라고 해서 우리가 아는 그 '단' 맛이 나지는 않는다.)


좋다.. 피니쉬로 매우 추천.



3-3) 핫카이산 준마이다이긴조 유키무로 8년

어우 사케는 이름이 아주 길다.

근데 보다 보면 크게 어려울건 없는게

이름이 곧 어떤 술인지를 말해준다.


핫카이산 -> 브랜드

준마이다이긴조 -> 술 등급

8년 -> 8년 숙성함


사케는 고도주가 아니라서 숙성을 잘 안하는데

저 녀석은 술을 빚어낸 다음에 눈 속에서

8년을 숙성했다고 한다.


눈 속에서 8년 숙성?

마케팅적 요소가 다분하다고 생각하지만

한잔 마셔보면 생각이 좀 바뀐다.


정말 그 눈 속에서 갓 퍼낸 술 마냥

부드럽고 청량함, 그리고 은은한 단맛이 입 안에 퍼진다.


물론 준마이다이긴조라 그런 걸수도 있다.

다만, 핫카이산 준마이다이긴조를 마셔봐서 맛을 굳이 비교해보자면


뭐라도 후처리를 조금 더 한 저녀석이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근데 사케는 비싸다.

위스키랑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비쌈..

대충 보관해도 되는 위스키랑 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한국에 들어올 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게 기본인데다가


수요 자체도 많지 않아

일본 현지에서 5만원이면 사는 술이

한국 소매가로는 30~40에 팔린다.


근데 저건 일본에서 8만원이네?

나같은 서민은 한국에서 못 사먹는 술이다.

일년에 한번 정도 일본에 다녀오는 지인이 있다면 부탁해서 한병씩 맛본다.


내가 분명히 싼거 사오라고 했는데,

(그냥 준마이다이긴조)


면세점에는 그런거 없다고

유키무로 8년을 사왔다.


아 덕분에 입은 호강했지.

저거 맛보고 그 뒤로 사케를 잘 안먹는다.


이미 입맛이 준마이다이긴조에 길들여졌는데

혼죠조 같은걸 먹으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위스키보다 사케가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비용이 훨씬 비싸다.


일년에 한 병이면 족하다.



4. 옥상

[대구 광역시 어딘가의 3층빌라 옥상]


나는 옥상을 매우매우매우 좋아한다.

멋들여지게 꾸며놓아


'루프탑'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공간도 좋지만

사정없이 쳐놓은 방수페인트에

골격만 남아있는 투박한 차양대가 있는 옥상도 좋다.


어릴 적 많은 시간을 보냈던 저 공간이 너무 소중해서, 아파트에 살지 못해서 겪었던 불편함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나야 결국에 아파트에 살게 되겠지만,

우리 아들 딸은 꼭 옥상 맛을 보여줄테다(미혼입니디.)


옥상은 나에게

눈사람을 만드는 공원이자

물놀이를 하는 워터파크

상추와 토마토를 키우는 텃밭

어릴 적 몰래 담배를 숨어피우던 뒷골목(ㅋㅋ)

하늘을 보며 별을 세던 천문대

부채질 하며 수박을 먹던 원두막

친구와 통화를 하는 비상계단

고기를 구워먹는 바베큐장이었다.


지금도 본가에 들리면 내 추억이 서려있는

옥상에 올라가 평상에 누워있곤 한다.


전원생활을 꿈꾸던 아버지는

나에게 옥상을 알려주었고


옥상에서 꿈을 꾸었던 나는

내 자녀에게 뭘 물려줄 수 있을까.


아파트 발코니 정도의 꿈을 꾸지만

베란다에서의 텃밭에 그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도 있다.


나는 내 자식놈들이

흙을 만지다가 입에 넣어도 보고

지렁이를 발견해서 울어도 보고

불개미에 물려서 가려워도 보고

덜익은 토마토를 따먹고 배를 앓아도 보고

덜 익은 앵두와 잘 익은 앵두를 구별도 해봤으면 좋겠는데,


터무니 없는 꿈일까?

몰라, 방학이면 손을 잡고 산이고 들이고 돌아다닐테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 중에 가장 감사한 것들이 이런거니까. 좋은 아버지가 되고싶다.



5. 공간

[뮤지엄 산]


사람이 그리 붐비지 않은 고즈넉한 공간이 좋다.

매일매일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기에


멍때리며 혼자 걸어다녀도

물리적 거리가 유지되는 곳이 좋다.


굳이 시간내어 찾아가지 않으면 갈 일이 전혀 없는 그런 공간이 좋다.


줄서서 먹는 맛집과

사람이 붐비는 핫플이 싫은게 아니라

이런 곳은 누구와 함께냐가 너무 중요한 반면


한산한 분위기의 공간은

혼자던, 누군가와 함께던 다 좋다.


조건을 따지지 않고 좋으니

더 좋다고 봐도 되겠다.


[북한산의 어느 봉우리]


북한산을 오른 것은 러닝을 취미로 두기 전의 일이다.


친구를 따라 무작정 준비도 없이 떠났던 산행은 생각보다 꽤 즐거웠는데,


내가 자극 추구 인간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나는 이런 자극 또한 추구한다는 것을 배웠다.

지루함 속의 은은한 즐거움?


물론 올라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고

내려가는 길에 친구가 너무 험한 길을 안내해서

우정에 금이 가긴 했지만


통닭을 사줘서 금이 말짱히 지워졌다.


산은 또 오르고 싶다.

너무 가파르지 않고,

너무 완만하지 않으며

눈이 즐거운 그런 산이었으면.



[신사 맥파이앤 타이거]


까치와 호랑이라는 정겨운 이름을 가진 찻집이다.

차를 좋아하는건 아닌데, 나는 이 공간이 좋다.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예약이 그리 빡세지 않고


가격도 합리적이며


차는 물론이거니와 함께 나오는 다과의 맛도 훌륭하다.


옆에 앉은 한 사람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


원체 차분하지 않은 인간이라, 저런 공간이 주는 분위기로 나를 눌러야 한다.


가보면 한 타임에 받는 사람의 수가 4팀가량이라 아주 프라이빗하고, 팀간 거리가 확실히 구별되어있어 사적인 담소를 나누기에도 좋다.


분기에 한 번은 방문하는 듯 하다.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은 사람은 붐비지만, 거대 자본의 힘으로 쾌적한 공간을 구비해놓아서


사람의 북적거림이 나를 혼란케 하지는 않는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아들딸들의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아버지 어머니들이 보인다.


존경스럽다. 나는 내 한몸 이끌고 살아가는 것도 벅차다고 느끼는 순간이 종종 있는데


어떤 마음가짐이 저렇게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주말에는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텐데.

(물론 나는 성향상 아무리 피곤해도 밖에 나가야하기에, 내 아들 딸들은 주말마다 이곳 저곳 끌려다닐 예정이다. 강해져라. 미래의 와이프는 피곤하다면 두고가고, 같이 가고싶다 그러면 데려가고.)


여튼 그래서 저런 공간은 기운이 좋다.

동탄 스타벅스에 가면 애기 우는소리가 빼액빼액 하고 울린다.


내가 동탄을 살아있는 도시같다고 여기며 내심 흡족하게 바라보는 이유와도 같다.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이 살아있는 곳이다.(중딩들은 다 컸으니까 그만 소리 질러라 선생님 목 나간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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