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20250922월)
애써 그럴싸해 보이는 플레이리스트를 고르고, 적절한 음량이 어떨까 볼륨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려 샤워기의 온수와 냉수 사이 어딘가 적절한 온도처럼 맞춰 놓으면 뭐 하나.
액셀을 밟아야만 하는 순간에 차는 버거운 듯 엔진 소리를 웅웅거리기 시작한다. 곧이어 들리는 풍절음은 음악소리를 잔뜩 헤집어놓는다.
이럴 때면 구형의 중고차에게 얄궂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다고 볼륨을 높이면 소리가 과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에 어쩐 일인지 변속 충격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가속을 보여주던 내 차는 강변북로에서 내리자마자 핸들이 묵직해졌다. 핸들이 잠긴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어보긴 했지만, 핸들이 잠기는 게 아니라 묵직해진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시동을 끈 상태에서 핸들을 돌리는 것처럼 버겁게 느껴지니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낑낑거리면 핸들을 돌려 겨우겨우 우회전을 했다. 엑셀에 발을 올리는 감각이 평소와 다르게 섬뜩하게 느껴진다. 전기장치 문제로 생각이 되어 잠시 시동을 껐다가 다시 켰지만
'틱티디딕틱 틱틱틱'
메가리 없는 소리를 내는 점화플러그는 시동을 걸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도통 시동이 걸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뒤 차의 경적소리와 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무색하게도 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면 순간적인 긴장감의 시간이 잠시 지나가고, 뇌는 무엇인가 다른 모드로 변하는 듯 한 느낌이 든다. 곧 마음은 편안해지고 이걸 어쩌면 좋나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한다.
이 모든 과정이 10초 이상 걸리지 않았다. 10초라는 시간을 산출할 수 있었던 까닭은 내 바로 뒤에 있는 차량들의 경적소리의 간격을 듣고 대략 추정한 것이다. 나는 차량 시동을 거는 것을 포기하고, 뒤 차량에게 차량이 고장 났으니 우회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문짝 하나의 값이 내 차량의 신차 출고값을 훨씬 상회할 것 같은 고급의 외제차량들이 나를 하나둘씩 지나가고 좁디좁은 왕복 4차로의 도로 중간을 막아선 하얀 아반떼가 그렇게 버겁고 커 보임이 신기했다.
어떻게 던 차를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옮겨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바퀴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공차중량이 2톤 남짓한 철 덩어리를 내가 손으로 밀어도 밀리긴 하니까. 하지만, 핸들이 앞을 향하고 있기에 차를 밀어도 도로의 가장자리로 밀어내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한 손으로는 핸들을 돌리고 한 손으로는 차량의 A필러에 손을 찔러 넣고 온 힘을 다해서 차를 밀었다.
제법 신선해진 날씨지만, 몸에 꼭 맞는 슈트를 입고 있는 탓인지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길바닥에서 낑낑거리고 있는 꽃집 사장님이 나를 발견하고 힘을 보태주어 몇 번의 시도 끝에 도로의 가장자리에 주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꽃집이 어디인지 기억 중이다. 나중에 꽃 사러 갈게요 사장님. 감사했었습니다.
쉬는 날이라 여는 카센터가 별로 없어서 한남동에서 효창공원까지 이동을 했다. 알고 보니 제너레이터 고장이라고 하더군. 휴... 중고차치고 말썽을 안 부려서 방심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주말에 약속을 잡으니 이렇게 말썽을 부린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이 차량이 출고된 다음에 한 번도 제너레이터를 갈지 않은 듯하다고 한다.
내가 입대하기 전에 차를 팔았는데, 우리 아방이는 새 제너레이터를 달고 덜덜거리는 엔진소리를 내면서 또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애지중지 관리하면서 소중하게 탔는데(2년 반에 8만 킬로를 타며)
새해 첫날 눈이 잔뜩 내려 미끄러운 길이었지만, 무슨 자신감인지 차를 끌고 나갔다. 사실 자신감이라기보다는, 그 긴긴 안덕벌의 언덕을 도보로 내려와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도무지 짜증이 나서 차를 가지고 나갔다.
눈이 두텁게 쌓인 것은 아니었고 큰 도로는 제법 제설이 잘 되어 있어 주행하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브레이크의 끝 쪽에서 내 발이 바닥에 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덜덜거림이 느껴지는 것 빼고는 말이다.
대학생의 경우 대개 빌라촌에 거주하므로, 언덕배기 옆의 주정차가 허용되는 이면도로에 차를 주차하고 볼일을 봤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웬걸. 차 앞바퀴가 맥아리 없이 푹 꺼져있는 게 아닌가.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하며 앞바퀴를 발로 꾹 눌러보니 힘 없이 쑥 들어간다. 분명히 주차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말이다. 눈 덮인 이면도로였기에 노면에 무엇인가 있었지만, 주차를 하는 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2023년 새해 첫날 모두가 쉬는 그날에 영업을 하는 타이어 가게는 잘 없었고, 몇 번의 통화 끝에 겨우 영업하는 가게를 찾아서 전화를 했다. 바람이 완전히 빠진 것은 아니었기에 짧은 거리는 운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해서 기어가듯이 차를 몰아 타이어 가게로 도착했다.
차를 리프트로 떠서 바퀴를 살펴보니 작은 목재 가구를 조립할 때 쓸만한 작은 나사못이 정확하게 박혀있더라. 누가 보면 일부러 박아놨나 의심을 할 정도로 나사못의 끝에서 연장하는 선분이 차량의 구동축을 정확하게 지나갔다.
어차피 터져버린 타이어지만, 나사못의 각도가 나를 놀리는 듯 한 감정이 들었다.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타이어 교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여쭤보았는데
'앗 타이어 신발보다 엄청 비싸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타이어 한 짝 가격이 이게 맞느냐고 다시 물어봤다. 상황을 알고 보니 타이어가 터진 상태로 주행을 하는 바람에 옆에 있는 타이어도 갈려서 터진 타이어만 교체한 다음에 주행을 하다가.
고속주행을 하는 상황에 횡방향으로 조금의 충격을 받더라도 타이어가 펑하고 터져버릴 수가 있단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살펴보니 미세한 주름이 가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한문철 TV에 나올 생각이 별로 없었기에 얼른 내 카드를 꺼내서 결재를 했다. 예상하지 못한 지출은 내 카드를 아프게 했다.
잘 모르는 가게에서 굳이 비싼 타이어를 하려다가 덤터기를 맞을 것 같아서 저렴한 것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받아 든 타이어의 이름은 '굿 타이어'
하... 해피 뉴 이어에 어울리는 '굿 타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