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도 되는 거였어?(20251009목)
부산은 대표적인 관광지. 많은 사람들은 부산역에서 내려 각자가 원하는 바닷가로 이동한다. 다대포, 광안리, 해운대. 그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애초에 부산에 바다 보러 온 거지."
맞는 말이다. 이번 부산 방문이 있기 전 까지는 부산에 방문하는 주된 목적에는 항상 바다가 있었다. 뻥 뚫려 있는 수평선 사이로 드문드문 배가 떠 있는 모습이나 저 멀리 흐릿한 섬이 보인다거나. 밝은 달이 데칼코마니처럼 바다에 비추어지는 모습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엇인가 있다.
먹고 살만해지니까 조망권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이제 사람들은 오션뷰와 한강뷰 등 '뷰'에 대한 프리미엄에 대한 값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같은 가격이라면 옆동 벽 뷰와 한강뷰 중에서 무엇을 고를지는 물 보듯 뻔한 일이다.
나는 이번에 부산에 방문해서 바다에 가지 않았다. 더 구체적으로는 밀면 그릇 이상의 물이 고여 있는 것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보지 못했다. 산 사이로 빼곡히 들어서 있는 아파트 단지를 봐서 부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몰랐을 테다.
하지만 불야성을 이루는 바닷가 근처만이 부산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다.
외국인들이 서울에 와서 주로 방문하는 곳들을 보고 서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매한가지인 것처럼 말이다. 나도 이전까지의 관성에 이끌려 바다 근처로 가지 않는 선택지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친구가 이렇게 한 마디 던지더라.
"진짜 부산은 바닷가에 없어."
진짜 부산이 무얼 말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부산 시민들이 살아가는 공간과 바다 근처의 부산과는 괴리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바닷가와는 아주 거리가 먼 곳에 자리를 깔았다.
그래도 역시 부산은 부산이더라. 길거리에 보이는 이곳이 부산임을 짐작케 하는 모든 글씨를 지워버린다고 해도 여기는 한국인 누가 봐도 부산이었다. 어지러운 연산교차로, 인터넷 밈에서 보던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드는 SM3, 평범해 보이는 상권에 한 블록 건너 한 곳씩 횟집이 가득한 풍경, 가팔라 보이는 언덕을 사뿐하게 지나다니는 시내버스, 다른 지역이었으면 건물을 지을 시도 조차 하지 않았을 부지에 빼곡하게 지어져 있는 고층 건물까지 말이다.
300만이 넘는 부산 시민 중에서 매일매일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채 30퍼센트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바다 근처에 가지 않고, 평소라면 절대 가지 않을 지역에 가서 도시의 새로운 이면을 보았다.
여기에서의 경험은 비단 부산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시감이 든다. 서울에 관광을 목적으로 왔을 때는 사람이 북적북적한 서울을 대표하는 상권만을 돌아다니기 바빴는데, 막상 서울에 살게 되니 그런 곳만을 가지 않게 되더라. 내가 이미 경험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새로운 기회를 통해서 한번 더 깨달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오랜만에 먹는 밀면에서는 정체 모를 양념치킨 맛이 났고, 냉면과는 다르게 면 사리가 엄청나서 다 먹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국내 최대 규모의 온천이 있다 해서 방문했다. 목욕탕의 내부는 화려하고 웅장했다. 10년 전쯤 에인가 봤던 웹툰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고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났다. 너무 면적이 넓고 탕의 종류도 많아서 목욕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일부러라도 찾아서 올 만한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내가 묵었던 위치는 부산대 상권에서 한두 정거장 남짓 떨어진 곳이다. 부산대에 합격을 했지만, 학과 선택에서 갈려서 다른 학교를 갔다. 10년 전쯤에 부산대 합격 소식을 듣고,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지도를 통해서 확인해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에도 부산 지하철 1호선이 주황색임을 알고 있었지.
10년 전에 부산으로 왔다면 지금의 내가 청주가 제2의 고향인 것처럼 부산이 제2의 고향이 되었겠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면서, 부산대에 진학하여 이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을 평행세계의 나를 상상해 본다. 그리 좋아하는 회를 실컷 먹을 수 있었겠지. 회를 못 먹는 사람을 위해서 고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회를 먹는 사람들이 회를 못 먹는 사람들을 갈궈서 회를 먹으러 갈 수도 있겠지.
이거 다 우연히 들른 횟집에서 먹었던 돌돔이 맛있어서,
우연히 들른 목욕탕이 나중에 재방문의사가 충분할 정도로 좋아서,
바다가 보이지 않으니 더 세심하게 살펴보는 주변의 풍경이 낯설면서도 좋아서,
성공적이라고 느꼈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