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것, 있으면 좋은 것.
어떤 사람과 친분을 유지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일을 더 하기보다는
싫어하는 일을 안 하는 게 더 중요하다.
허즈버그의 2 요인이론(동기-위생이론)에서
만족감이 소실된 상태를 무만족
불만족이 소실된 상태를 무불만족이라고 정의하고
쾌가 불쾌를 완전히 소거할 수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쾌가 +10이고 불쾌가 -5라면 합산 +5인 게 아니라
(+10 , 0) + (0, -5) = (+10 , -5)가 되는 것처럼
2 요인으로 서로가 상쇄가 되지 않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것을 내가 생각해 낸 변기-프린터 비유로 찰떡같이 이해했는데, 아직까지 기억이 선명한 것을 보니 효과는 확실하다.
동기요인은 '있으면 좋은 것'
위생요인은 '없으면 안 좋은 것'이다.
없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좋은 것은 뭐가 있는가?
사무실에서는 프린터(물론 큰일 나는 곳도 있겠지만)
시계, 팔찌, 향수, 술 등등이 있겠다. 필수재가 아닌 것들.
없으면 굉장히 불만스러운 것은 뭐가 있는가.
사무실에서는 변기(화장실을 말한다.)
신발, 밥, 샴푸 등등이 있겠다. 필수재인 것들.
사무실에 프린터는 없어도 되지만,
변기가 없으면 안 된다.
사랑 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좋아하는 일을 더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싫어하는 일을 안 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 라는 말이 있다.
밥 안 먹여주면 못살잖아, 그러니 영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거지.
물론 눈먼 불나방들은 위생요인이 박살 난 상대를 감싸며
본인을 불사르지만, 나중 가서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후회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 달라서
폭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더라도 자신에게만 안 그러면 된다는 기준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래서 자신을 펼쳐놓고 봤을 때
1. 있으면 좋은 것
2. 견딜 수 없는 것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게 정리가 안 되어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냐.
사실 누구랑 만나던 초반에는 상대에게 잘 보이려 단점은 숨기고 장점은 드러낸다. 심지어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있는 체하며 공갈을 하기도 한다.
말이라는 것은 100% 믿을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여성이 섞여있는 사적인 모임에 가는 것을 못 견디어하는 여성과
진짜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인데 뭐가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남성이 만나면 비극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서
"나 다음 주에 중학교 동창들이랑 1박 2일로 여행 가기로 했어." 이런 말을 꺼낼일도 잘 없거니와 꺼냈다고 한들
남자끼리 가는지 여자도 있는지를 물어보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만나기 전에는 최대한 말을 많이 해봐야 한다.
생각에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정확히 나뉘어있지 않기에
말을 하다 보면 결국 나랑 가끔 봐야 좋을 사이인지, 매일 봐도 좋을 사이인지 가늠이 가게 되어 있다.
어릴 적에는 에너지가 넘쳐서, 불만족스러운 점을 다른 만족스러운 점으로 덮을 체력이 있다.
아니, 인내심이 있다고 해야 할까? 무모함이 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믿음이 있다고 해야 할까. 내가 노력한다면 상대를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을 고쳐 쓰려는 시도를 많이들 해본다.
미안하지만, 정말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우리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고, 주어진 각종 재화도 한정적이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사람을 고쳐 쓰려는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내 눈에는 마음에 안 들지만,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인데 한 사람의 고유한 성질과 특색을 자기 입맛대로 꺾어놓으려 하는가? 고장 난 것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고치는'것인데, 네 눈에 거슬린다고 입맛대로 바꿔버리는 것은 고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망가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나와 결이 맞지 않은 사람은 나랑은 다른 길을 걸어갈 사람이다. 그냥 운명이 아니겠거니 하고 보내주는 것이 맞다. 너와 나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그래서 결국 불나방 같은 사랑을 했던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나중에 가서는 '견딜 수 없는 요소'가 없는 사람을 찾는다.
어디선가 주워 들었던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다.'라는 말을
자기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다.
이분법적으로 말은 했지만,
'견딜 수 없는 것'과 '있으면 좋은 것' 이외에도
'그래야만 하는 것'과 '견딜 수 있지만 없으면 좋은 것'도 있다.
여기에서 '그래야만 하는 것'은
뒤집어말하면 '견딜 수 없는 것'의 역이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것>
예의 바르지 못하고,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
<그래야만 하는 것>
예의 바르고, 욕설을 하지 않는 사람.
'그래야만 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것'에 포함시켜도 된다.
이제, '견딜 수 있지만, 없으면 좋은 것'에 대해 말해보자.
'견딜 수 있지만, 없으면 좋은 것'
인간관계에서의 모든 불화의 씨앗이자
재앙의 시작, 착각으로 인한 뼈저린 후회의 원천이다.
무슨 소리냐면
사람도 자신이 어떤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지를 잘 모르다가,
지속적 반복적으로 겪어보다 보니,
'아 나 이런 것을 너무 싫어하는구나.'
깨닫는 순간이 온다.
정리하자면, 인간관계에서의 재앙의 시작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지만, 없으면 좋은 것'으로 착각하는 데에서 온다.
그렇잖아요. 처음에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데, 좋은 마음으로 알아가는 단계에서 싸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것을 제외한 다른 것들이 좋으니까 눈 감고 넘어가는 그거요.
본인이 알고 있던 거라, 완전히 남 탓을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내 운명이려니 받아들이고 넘어가기에는 화딱지 나는 그거요.
있으면 좋은 것과, 견딜 수 없는 것 정도는 자기들이 다 알아요. 지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과
절대 못 견디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 있겠어요?
그런데
내가 견딜 수 있다고 착각을 해버린 요소가
알고 보니 아니었을 때, 파국으로 간다는 거죠.
상대를 어떻게 던 바꿔보려고 하고,
참다가 말을 한 것이니 상대는 갑자기 왜 이러냐 당황하고
참다 참다 말했는데 상대 반응이 떨떠름하니 짜증 나고
만난 지 좀 시간이 흘렀으니 정도 좀 들었겠다.
인연을 끊어내지는 못하고, 이대로 꼬여버리는 거죠.
'아~ 이것만 아니면 참 좋은데.'
이렇게 넘어간 것이 돌부리가 아니라
바닥이 안 보이는 절벽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어디까지 괜찮은지 스스로의 선을 정하고
사람들과 지내면서
언제 불쾌감이 올라오는지
어떤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는지를 살펴봤습니다.
간단하더라고요,
정리해 놓고 스스로를 알고 생각해 보니
어려울 게 없어요.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맘에 드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면
두려울 것이 없어요.
나 또한 그런 사람일 테니.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내가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사람만이 남게 되죠 자연스럽게.
그런데, 즐거움보다는 편안함이 우선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역시 사람은 누가 고치려고 하면
있는 힘껏 버티지만,
자기가 생각해서 느낀 점을 개선하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바뀌나 봐요.
누구에게 강요해 봐야 본인 입만 아프다는 점.
바보들(고집불통, 메타인지 하, 바뀌려는 의지 X인 인간)과는 대화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씁쓸하지만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초중고등학생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