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학습될 뿐이다.
아침부터 창문이 호들갑을 떨어댑니다. 단단히 채비를 하고 문을 나서니 바람에 한기가 없습니다. 요 며칠 사이 추위에 떨었던 시간이 쌓여 익숙해져서일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하늘 색이 하늘색이 아닙니다.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바다 위로 보이는 색이 좋게 말하면 회색 섞인 파스텔톤이고, 좀 못되게 말하면 차가 밟고 지나가 반쯤 녹아내린 눈처럼 거무죽죽합니다. 역시나, 휴대폰을 열어서 확인해 보니 저 멀리서 반갑지 않은 손님이 왔습니다. 대륙의 먼지를 들고 찾아온 서풍이요.
창문이 떨어대는 호들갑에 못 이겨 평소만큼의 외투를 입고 나왔는데, 괜히 가지고 나왔다며 툴툴거리며 가방 속에 쑤셔 넣고 제 갈길을 갑니다. 각종 필요한 물건들을 잔뜩 집어넣을 수 있는 바퀴 달린 원룸이 있을 때는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없어요.
생각해 보면 차 안에 정말 별의별 물건들을 다 가지고 다녔어요. 가지고 다녔다기보다는, 넣어놓고 꺼내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텝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조난을 당해도 일주일은 버텼을걸요? 참치캔 한 박스와 무알콜맥주 한 박스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습니다.
일과 휴식 중에서 어디에 관심을 더 기울이나요? 휴식 없는 일은 병원 신세를 지기 마련이고, 돈 많은 백수의 삶도 결국 인생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물론 그래본 적은 없는데, 꼭 해봐야 아는 것들만 있지는 않으니까요. 어두움이 있어야 밝음도 있는 법이니 탱자탱자 노는 것도 일을 하고 와야 더 즐겁게 느껴질 겁니다.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음을 고려하여 여러 안을 세워놓고 틀어짐이 없게끔 신중을 기울이는 게 보통이죠. 그런데, 노는 데에 그 정도의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나요? 있더라고요. 저는 어디 제출하는 공문서인 줄 알았습니다.
결재란이 어디 있나 찾아보게 되는 그런 여행 계획표는요. 제 성미에는 맞지 않아요. 여행은 교통편 빼고는 다 틀어져도 됩니다. 숙소도 가급적 틀어지면 안 되는 중요한 녀석이지만, 틀어져도 죽으란 법은 없더라고요. 체력만 있으면 그 또한 재미난 콘텐츠가 됩니다.
오늘 끼니의 피날레를 무엇으로 장식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무서운 맛이냐, 내가 모르는 재밌는 맛이냐. 혼자 있을 때 주로 도전을 하는 편인데요, 내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은 도전을 하기 싫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나 오늘은 좀 피곤해서 아는 맛을 보기로 했습니다. 입맛을 돋우는 새콤한 양념에, 씹는 맛이 일품인 물회를 먹으러요.
이건 좀 딴 소리인데, 나는 이런 류의 대충 지은 이름이 대충 그린 이모티콘처럼 귀엽게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나곤 합니다. 원래 귀여운 것들은 치밀하지 못해서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물회
매운탕
국밥
잠깐 정차한 사이에 동명항이 보여 창문을 내렸습니다. 그새 들어온 바람이 고소한 냄새를 코에 쑤셔 넣고 도망갔는데요. 네비는 직진을 하라고 안내했지만, 초록불이 들어오는 순간 나는 우회전을 해버리고 맙니다. 양미리와 도루묵을 연탄불에 굽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지나가나요?
맛이야 붕어빵이 더 있을 수도 있지만, 겨울날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것은 델리만쥬잖아요.
사실, 저는 저 녀석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영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생선구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잘 없을뿐더러, 제가 그 맛이 어떤지를 모르는 데 타인에게 함께 가자고 하기에는 좀 부담이 되어 미루다 보니 이제야 만나게 되었어요.
연탄불에 오늘 바다와 헤어진 이 녀석들을 쭈욱 줄을 세웠습니다. 투박한 그릴에 왕소금이 드문 드문 뿌려진 생선들을 일렬로 쭉 줄을 세워놓으니 고소한 향이 확 피어납니다. 갑자기 나를 여기로 불러 세운 그 향이요. 차를 가져온 사실을 잊어버리고 싶을 만큼.
생선구이라고 해봐야 손질이 다 된 녀석들을 누가 봐도 적당히 익었다 싶을 만큼 구워내는 것이 보통인데, 얘들은 도통 가늠이 안 되는 겁니다. 양미리는 굵기가 엄지손가락이 될까 말 까라서 젓가락으로 뒤집을 때마다 옆구리가 터져버리니 좀 곤란했습니다.
"아이고, 총각 내버려두어 처음 먹어봐? 가만히 둬 봐 이모가 구워줄게."
사장님의 반가운 핀잔이 나와 양미리를 둘 다 구했습니다. 초짜티를 못 벗어난 생선 다루는 솜씨를 보고, 이모님이 여간 답답하셨는지 개입을 하셨습니다.
저는 해산물과 관련해서 병원 신세를 자주 져야 하는 고약한 습성이 있습니다.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지만, 관찰을 통해 습득한
'생선 가시를 업신여기는 습성'이 있습니다.
얇은 척추뼈는 오히려 반가워하며 뼈째회로 즐깁니다.
새우는 뿔 빼고 꼬리까지 제 상대가 안됩니다.
지느러미는 잘 구워내면 별미입니다.
비늘도 잘 씹으면 고소합니다.
생선 가시는 위 녀석들이랑은 다르게, 경시해서는 안 되는데요. 어쩌다 보니 이런 습성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제 사람에게는 최대한의 다정을 발휘해서 생선가시를 필렛처럼 제거해버리고 말지만, 그 다정이 나를 향하지는 않아서요.
양미리는 초면이니까, 경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총각, 다 먹어도 돼. 머리부터 꼬리까지."
뭐야, 나랑 천생연분이네?
열빙어 다음으로 처음 만나는 인연에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전문가의 말을 믿고 한 마리의 굶주린 시베리아 불곰처럼 생선을 통째로 입에 넣었습니다.
표현력이 모자라서 그냥 한 문장으로 할게요.
대리운전기사님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법적 책임이 제조사에게 있는, 완전 자율주행 개발 기원 1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