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속 새로움
여행을 떠나는 이는 무엇을 바라며 채비를 하는가.
여행자의 가방을 들여다보면, 그 심정을 추측이나 할 수 있을까. 나는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여행지에는 분명히 일상과는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인기 있는 여행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여행처럼 살아가지는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초는 낭만이 있는 도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많은 이들이 속초로 와서 평소와는 다른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일상을 환기하고 돌아간다.
나도 속초에서 그런 것들을 바라며 몇 시간의 이동거리를 감수하고 와서 다양한 것들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속초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은 지루함만이 느껴질 뿐이다. 일상으로부터의 탈피가 여행이라는 정의에 따르면 더 이상 나에게는 속초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거창한 것을 원했다. 분명하게 다른 것. 확실하게 새로운 것. 그런 것들을 바라면서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가방 안에 쑤셔 넣으면서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해왔다.
여행의 목적이 내 안에서 바뀌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애초에 삶이 곧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굳이 멀리 떠날 이유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하철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곳을 여행이라고 말하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은 것 같아 남들처럼 멀리 가는 것이 정답인 양 행동했다.
낯선 곳에 갔으니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며 경험하지 못한 음식, 문화, 장소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렇게 캐릭터 카드를 모으듯이 내 지도에 방문한 모든 곳들을 모으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문득 아래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움만을 찾아다니며 끝나지 않는 숙제를 하려고 구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기 시작하면서 여행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집어던지고, '경험'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화창한 날뛰는 것을 선호하지만, 비 오는 날에 뛰어보았다.
매일 뛰던 경로는 잠시 넣어두고, 낯선 길을 찾아서 뛰어다니다 길을 잃기도 했다.
고집하던 삼겹살을 넣어두고, 목살을 전문으로 하는 고깃집을 찾아갔다.
평소보다 이르게 출발하여, 빠른 길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길로 출근을 해봤다.
쉬는 날 집에서 무조건 나가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휴대폰을 저 멀리 던져놓고 하루 종일 늘어져있기도 해 봤다.
새로운 것을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이 생각하는 '새로움'이라는 정의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매일 뛰는 사람은 뛴다는 행위 자체는 새롭지 않겠지만, 평소랑 다른 길로 뛰어보는 것에서는 새롭다.
매일 하던 일에서 조금의 변주를 주어도 재미가 있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사람은, 환경적인 조건에 의해서 새로운 자극을 느끼지 못하면 금세 풀이 죽고 말 테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지금이야 엉덩이가 가벼워, 떠나고 싶은 곳은 얼마든지 갈 수 있으며, 살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옮겨서 살면 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먹으면 되고, 취미라고 불리는 것들도 얼마든지 도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리 얼마 지나지 않아 엉덩이가 무거워질 예정이다. 내 한 몸만 책임지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배우자와 자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지금처럼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설익은 청년의 어리광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요즘은 여전히 새로움은 추구하지만, 일상 속에서의 작은 변주를 주는 방식으로 선회하는 중이다.
"세상이 그렇게 넓다는데 내가 한번 가보죠."
평생 혼자 살 것이 아니라면, 배우자의 희생이 담보되어야 가능한 인생의 방식이다.
"너와 내가 만드는 이곳이 내 세상이야."
사람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시시각각 변하고 그건 나도 그렇고 나중에 내 배우자가 될 사람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자녀의 변화는 그 정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하루가 바쁘게 변화할 것인데, 멀리 가서 세상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현실에 안주하고, 매일매일 똑같은 삶을 살아가겠다는 포기의 말이 아니다. 매일매일 똑같은 삶을 살아가더라도 그 안에서 작은 새로움을 찾고 자녀가 성장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전 세계를 떠나 다니는 전업 여행자의 마음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20대 초반에는 결혼을 꼭 해야 하나
20대 중반에는 결혼은 해도 자녀는 모르겠다
지금의 20대 후반이 되고 나니, 결혼도 꼭 하고 싶고 사랑하는 배우자와 우리를 닮은 자녀를 키워내고 싶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영원히 철없는 아들이고 싶었는데,
밖에 나가면 어른스러워 보이려 갖은 애를 쓰는 나를 보면서 철없는 아들은 이제 졸업할 시기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