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

혀에 가시가 돋고, 몸이 베베 꼬이는

by 박승연


빈말을 원체 못 하는 성격이라, 어릴 적엔 손해 보는 일도 많았다. 에둘러 좋게 좋게 이야기해도 되는데 굳이 적을 만드는 일도 있었으니, 입으로 부스럼을 만들고 다녔다.


하지만, 사회성이라는 게 어떻게 날 때부터 있겠나,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고 누군가로부터 배워 가면서 생기는 거지. 다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조금 더 힘겨웠음을 양심적으로 고백한다.


지금은 좀 꺾이기도 했고, 쓸데없이 일을 키우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성향을 주섬주섬 기워내어 두르고 있기에 상황에 맞게 활용할 줄은 안다. 물론, 누군가 버튼을 눌러버린다면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맞설 줄은 알지만 대개의 경우 선명한 악의가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잘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빈말이란 무엇인가?


맘에도 없는 말을 꾸며내거나

과대포장해서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하는 말이다.


우리와 같은 고맥락언어 화자들은, 빈말에 굉장히 익숙하다. 체면상, 으레 하는 말이라는 것들을 생각을 하면서 주고받으면 사실상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 빈말이 얼마나 비어있냐에 따라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비어 있는 정도'의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주는 사람은 뻥튀기로 주는데,

받는 사람은 강냉이로 받으니 문제가 안 생길 리가 있나.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나 보다. 대화를 하면서 내 반응을 계속해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게 느껴졌다.


이럴 경우 알면서도 해주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는데 그렇다고 공감해 주는 유과 같은 공감이 당최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공감은커녕 반박하는 일도 많았다.


"너 지금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건 알겠는데, 미안하지만 나한테는 그런 거 바라지 마."


지금생각해 보면, 자기 딴에는 친밀감이 있으니 저런 대화를 시도한 것이고, 반박까지 들어올 것이라 생각을 못 했으리라 예상되는데 적잖이 당황했겠다 싶다. 저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내 곁에는 항상 내가 어떤지 아는 사람들만 두기 때문에, 굳이 저런 연기톤의 반응을 해줄 생각도 없고 상대도 그것을 바라지 않으니 편안한 대화가 오고 간다. 그러다가도 의견을 종용하는 투의 말이 오고 가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싱긋 웃고 만다.


그러면 상대도 왜 그러는지 알아서 그냥 넘긴다.

편안한 관계다.




모두와 이런 편안한 관계일 수는 없다.

거리가 가까운 사람만 대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거리를 둘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너무 가깝게 지낼 필요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앞서 말했던 기워낸 누더기를 내 머리 위에 씌워놓고 말을 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내가 공감을 되게 잘하는지 안다.

[내 지인들은 보면서 웃겠지, 당신들에게는 안 해줘.]

사실은 프로그래밍된 건데, 이해가 안 가면 공감이 안 된다.

예전에 비해 빈말을 너무 잘하는 내가 가증스럽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고집을 꺾어가는 모습에서

나이 듦이 느껴지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진다던데,

나는 어제 반대로 가는 것 같다?


나는 비판에 대한 수용이 빠른 편이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정하고 바로 시정을 한다.


아닌걸 아니라고 말하는 상대에게

내가 맞다고 우겨대며 고집을 부리는 것은

소신이 아니라 고집이다.


왜 나는 나이가 들 수록 유들유들해지는 것 같지.

고집이 세지는 것보단 낫다.


사람은 개방적이어야 성장할 수 있다.




빈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주변인들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중에 시간 나면 밥이나 한번 먹자."


저런 류의 말을 허투루 넘기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되겠다 싶으면 저 말이 나오는 즉시 날을 잡으려고 하는 편이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바로 낚아채는 경우와 아닌 경우를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한 달 뒤쯤에는 연락해서 시간을 맞춰 보는 편이다.

나랑 안 놀고 싶으면 있던 시간도 없는 거고,

반대의 경우 있던 시간도 생기는 거지.


내가 상대의 상황을 알 수도 없는데,

시간 내어 약속을 잡는다는 것은


그가 한 말이 빈말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는 증거다.


빈말은 싫다.


남이 어찌하던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빈말을 들으면 속상하긴 하다.

내가 빈말을 안 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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