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세상을 가진 사람은 나를 그곳으로 이끈다
[이 글의 모티프가 된 사람은 내 블로그를 볼 일이 없으므로 마음 편하게 쓴다. 나쁜 말은 없으니 불편할 일은 더 없다.]
타인과 살을 부대끼며 식구처럼 사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도 반복하다 보면, 처음처럼 어렵지는 않다.
모든 일이 시간을 들인다고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타인과 살을 부대끼며 식구처럼 사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반복이 되면서 일상으로 자리 잡았고, 함께한 사람이 내 이해의 범주 안에 있었기에
발생한 사소한 문제들은 시간을 들여 모두 해결하였다.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의 세계가 분명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그 세계로 초대하는 일도 초대받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의 관심 분야가 대화 주제가 되면 자연스레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상대방이 그 분야를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경청의 자세를 갖추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해리 포터]에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머글'이라는 표현으로 부른다. 순수혈통이면서 동시에 마법사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일부에게는 멸칭이지만, 보편적으로는 구별하는 용어일 뿐,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떤 취향에 깊이 빠진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머글'로 보이기 마련이고,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머글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타인을 '머글'로 보기 때문에 나에게는 머글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지칭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이 되겠다.
이번에는 내가 머글이었다.
청자의 입장이었다.
그의 음악취향은 깊었고,
나의 음악취향은 지극히 대중적이면서 얕았다.
깊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님은 우리는 안다.
무엇인가에 깊이 빠진다는 것은 유무형의 대가를 치르면서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음악취향이 없고,
그저 귀가 심심하기에 틀어놓는 백색소음의 역할
운전을 할 때 졸리지 않기 위한 노이즈의 역할.
또는 노래방에서 음악 선곡에 그리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게 하기 위한 역할.
가끔 심장에서 저릿한 느낌이 들게 하는 음악이 있으면, 검색해서 좋아요를 눌러놓을 뿐, 그 이상의 감상은 없다.
음악에 있어서 나는 머글이다.
그는 달랐다. 그의 음악 취향은 깊고,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내가 처음 들어보는 요소로 음악을 평가했으며 즐긴다.
사실, 나는 머글이기 때문에 수치적으로 얼마나 그의 음악 취향이 국소적, 비-보편적인지 알 방법이 없기에 그 정도에 대한 가늠을 위한 정량적 수치로 이해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나와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시절이 길었기에 말을 그리 길고 구체적으로 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이런 게 가족 같은 느낌일까? 나는 이 사람을 마음속 공간에서 거의 가족에 준하는 위치에 놓는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서 (필요하다면, 다만 이 사람은 감정에 대한 케어가 필요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감정적 공감과 지지 그리고, 문제의 해결을 위한 도움 제공을 할 의향이 있으니 말이다.
음악을 듣는 어플에서 최근 기간 동안 이 아티스트의 음악이 총 몇 회가 플레이되었는지의 숫자로 대중성을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량적 수치를 이용한 비교를 위해서는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내가 아는 아티스트 중 가장 유명하고 대중성 있는 가수, 그리고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밴드의 숫자를 확인했다.
500만과 50만이었다. 숫자의 크기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대중성을 숫자로 환산한 것일 뿐, 상대적 비교만 가능하다면 문제가 없다.
마치 뉴턴역학을 해석하는 기법 중 하나인 lagrangian 방법에서 potentail 에너지의 기준점을 어디로 잡던 상관이 없는 것처럼 그렇다.
그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플레이 횟수는
5만, 5천, 128이었다.
음악을 틀어보니 가사가 없었다.
정식으로 발매된 앨범이 아닌, 음악들을 모아놓는 플랫폼에서도 듣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음악 취향이 '머글'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고는 있었지만, 숫자로 확인하니 생경했다.
"우리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나는 이걸 왜 이제야 알았지?
"나는 내 취향을 남에게 드러내는 편이 아니라서, 남들이 이해를 하기에도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너처럼 취향에 대해 열려있는 사람이 잘 없어, 그냥 잘 들어주는 것을 넘어서서 계속해서 궁금증이 생기고 추가적인 질문을 하며 자신이 이해한 게 맞는지에 대해 확인을 하잖아. 네가 모르는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이 상황 자체를 즐기잖아. 보통은 잘 그러지 않아."
"그렇구나, 사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이라 이해하기에는 어려웠지만, 모르는 걸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일 아니겠어? 여기서 내 음악 취향이 깊어질 일은 없겠지만,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되어서 즐거워."
단단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손을 내밀어 자신의 세계로 이끈다.
그 세계는 단단해서 무너지지 않고,
바닥이 꺼질 일도 없다.
손을 잡을 용기와,
보이지 않는 길을
손을 건네준 사람에게 의지할 믿음만 있으면 된다.
20대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종종 경험하는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다.
취향이 비단 취미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 태도에 대한 것도 '취향'이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억지로 정의한 의미를 텍스트로 남기지 않은 이유는,
그것을 설명하기에는 내 어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의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멋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알고 지낸 시간도 중요하지 않고,
함께한 시간의 총 량 자체도 중요하지 않다.
그리 오래 대화를 해보지 않아도 안다.
누군가가 나에게 멋있어 보이려
자신을 꾸며낸다고 할지언정, 결국엔 다 들통날 수밖에 없으므로 상대의 말을 그대로 믿어도 좋다.
그대로 믿기 때문에 멋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시간을 더 보내고 싶고, 시간이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즐겁다면, 사람의 관계에서.....
아 몰라.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은 축복이다.
끝.
2025. 12.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