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는 시간 정하기

보람찬 백수생활

by 보람찬 백수

백수생활은 매일이 혼자 사는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는 순간 같다.

느지막이 눈을 뜬다. 잠자던 주위를 뒤적뒤적 채 뜨지도 못하는 눈으로 스마트폰을 찾는다. 지난밤 기삿거리 등을 포함해 확인을 기다리는 알림과 문자들이 수신되어 있을 것이다. 빨리 핸드폰에서 정리하고 싶다. 간밤에 핸드폰에서 일어났던 일과 아침에 필요한 정보들을 확인하며 뒤척인다. 침대에서 느릿느릿 일어나 물을 마시고 적막함을 깨기 위해 음악이든 TV이든 틀어놓고 잠을 깨는 시간을 갖는다. 그 후 식사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만들어 먹을 시간도 배달을 기다릴 시간도 있으므로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먹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식사를 한다. 다음으로 씻는 건 선택이다. 어차피 집에 있을 거니까 늦게 움직일 예정이다. 그다음부터가 고비이다.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는 방법으로 항상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 그 나름으로 재미가 있다. 집에서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것들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이야기할 일이 있을 때 말해주면 아이들이 매우 좋아한다.

그날은 주말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주말에 뭐 했어?” 하며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데 대답을 하는 아이들 틈에서 1학년인 한 아이가 오히려 나에게 “선생님은 주말에 뭐 했어요?” 하고 질문을 했다. ‘이렇게 질문도 할 줄 아네.’ 기특하게 생각하며 ‘나는 이번 주말에 뭘 했지?’ 잠깐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주말에 뭐 하나 나 혼자 산다처럼 보여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했다.

예상하지 못한 말에 깜짝 놀라면서 머릿속에 두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일단 ‘어린아이가 저렇게 생각하고 말할 줄도 아는구나.’ 하는 생각과 나갈 일이 없는 주말에 씻지도 않고 방구석을 굴러다니는 내 모습이 필름처럼 돌아갔다. 아이가 알게 된다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을 주말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혼자 실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감추고 주말에는 이런저런 일을 하고 보낸다며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궁금해할 줄 알았다면 생각 같아선 주말에 집에 초대해 맛있는 것도 해주고 놀다가 가게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그 아이의 질문에 뜨끔할 정도로 주말을 게으르게 보내는 일이 많았다. 주말을 기다리는 이유가 주중에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리고 새로운 한 주간을 보낼 에너지를 얻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에도 평일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지내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백수가 되고 나니 매일이 주말이 될 수 있었고 절대적으로 해야 할 것이 정해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빨리 갈피를 잡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밤늦게 그것도 새벽녘이 되어야 잠드는 저녁형 인간이다. 예를 들어 자정 12시에 자서 오전 7시에 일어나는 건 너무 피곤하다. 잠을 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새벽 3시에 자서 10시에 일어나면 조금 덜 피곤하고 새벽 6시에 자서 오후 1시에 일어나면 매우 개운하게 느껴진다. 같은 7시간을 자더라도 수면의 질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분명 오전 7시에 일어나는 것이 건강에도 좋을 텐데 나의 생체 리듬은 무엇을 따르는지 모르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으로 살면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 및 아침 시간을 활용하여 자기 계발을 하고자 하는 책들도 많이 출간되고 있다. 나도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보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런 책을 알게 되는 대로 읽어 본다. 그렇게 해보리라 다짐하지만 그 책에 나온 기상 시간보다 늦게 자는 나로서는 지킬 수가 없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하고자 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저녁형 인간인 나에게는 단지 책 속의 이론일 뿐이었다. 실천이 좀처럼 되지 않았다.


일을 쉬면서 지내던 중 가지고 있는 자격증의 갱신이 필요해서 수업을 들을 일이 있었다. 온라인 수업으로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루어지는 수업이었다. 온라인 수업이 처음이라 생소했다. 그러나 온라인 강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된 소감에 앞서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에 걱정이 앞섰다. 강의실에 가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오가는 시간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일을 하지 않게 된 이후 오전 9시에 일어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전 9시에 수업을 시작 하니 그전에 일어나서 준비를 마쳐야 한다. 정말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어야 했다. 첫날 단 2, 3시간을 자고 일어나 수업에 임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수업사이의 5분 휴식시간에 그렇게 단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5분간 알람을 맞춰놓고 쪽잠을 잤고 그렇게라도 자두지 않으면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1시간 주어지는 점심시간에도 얼른 식사를 하고 잠을 자 두어야 오후 수업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한편 피곤한 상황에서도 이것을 계기로 수면 패턴을 바꿔보려고 계획하였다. 날이 갈수록 수업을 듣는 것은 덜 힘들게 되었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긴 했지만 강의를 관리해 주신 담당자분의 말씀대로 익숙해질 만하니 5일이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수면 패턴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졌던 것이 무색하게 수업이 끝난 후 나는 평소의 나로 돌아왔다. 늦게 자는 수면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유일한 기회였는데 아쉬웠지만 잠이 덜 깬 몸을 종일 이끌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무리하게 기상시간에 부담을 가지기보다 그 대신 깨어있는 시간을 길게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학원을 다니게 된다든지 하는 고정 스케줄이 생긴다면 그에 맞게 조금씩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을 조절하기로 하였다.


언제까지 혼자 사는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순간일 수는 없다. 그동안 일한 나를 위해 백수가 된 후 길면 일주일 정도만 하고 싶은 대로 지내보면 괜찮을 것 같다. 그 후 규칙적인 생활은 당연히 필수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 제일 먼저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정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하루의 일정을 정하는 일은 결심하기까지도 실행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는 시간은 다른 스케줄에 상관없이 내가 조금 더 편한 시간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정할 수 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자는 시간은 여러 이유로 정해진 시간보다 늦어질 수 있지만 일어나는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알람소리 없이 눈이 떠질 때 일어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다. 그러나 백수로 며칠만 지내더라도 이런 것은 소박한 소원에도 끼지 못할 만큼 당연한 일상이 된다. 그래서 백수가 된 지금은 일할 때보다는 아주 조금이라도 짧게 자려고 노력한고 있다. 늘 알람을 맞춰 두고 자고 그것을 끄면서 일어난다. 시간에 쫓겨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잠이 더 깰 때까지 침대에 조금이라도 누워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것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와의 약속이 내 시간을 가치 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시작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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