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만이 경험일까?

보람찬 백수생활

by 보람찬 백수

“시간이 너무 없어.”, “여행은 뭐 공짜로 하니?”


여행을 못 가는 핑계로 가장 많이 하는 말인 것 같다. 나는 내가 저 두 가지의 가장 큰 이유로 여행을 못 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상을 떠나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을 바라며 살았던 것 같다.

20대 초반에는 앞서 말했듯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또래의 친구들도 그렇게 많이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나서 자주 나누는 대화 내용 중의 일부가 ‘여행을 자주 못 가고 사는 것 같다’는 것, ‘여행을 가자는 것’ 등 대부분 여행에 관한 것이었다.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도 자주 했던 것 같다. 부산, 제주도는 기본이고 바다가 있는 곳은 거의 다 여행지의 대상이 되었다. 해외로 가는 건 각자 스케줄이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곳의 랜드마크가 되는 곳 앞에서 만나기로 하기로 한 적도 있다. 여행 경비가 없어서 못 가는 핑계를 만들지 않도록 하루에 얼마씩 모아서 정해진 금액이 되면 가기로 하는 등의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여행 계획을 세운대로 여행을 다 다녔으면 아마 여행 관련 책도 만들 만큼 많은 여행을 다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행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20대 때는 여행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니면 낯선 장소에서의 헤맴이 무서웠던 거 같다. 내가 20대 때에는 주로 블로그를 참고해서 여행 계획을 세웠다. 계획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도록 ‘경로 벗어나지 않기’로만 가득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보고 즐기기보다 계획을 지키기 위한 여행이랄까 그래서 끝나고 나면 숨이 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격이 급한 탓도 있고 융통성이 없었던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여행지에서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틈도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여행의 증거는 돌아와서 정리하는 작은 책자와 티켓 그리고 돈을 썼던 영수증 등이 대신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서 마트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사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것 그 자체로도 재미를 주는 곳이다. 그래서 여행지에 가도 큰 대형마트에 으레 가보곤 했었다. 그것은 여행 초보의 착각, 실수였던 것 같다. 대형마트의 분위기는 거의 비슷하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충분히 갈 수 있다. 여행을 가면 그곳의 재래시장을 가봐야 한다는 현지분의 말씀을 듣고 여행지의 특색을 아는 방법에 대해 깨달았다. 여행을 다니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 반, 배우게 되는 것 반이 생기는 것 같다. 굳이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런 것들이 채워지니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앞에 말한 20대 시절처럼 여행을 하지 않는다. 가게 되면 오히려 계획 없는 여행을 하는 편이다. 나에겐 이것이 진짜 여행을 한다는 느낌을 준다.


예전의 나와 같은 사람을 포함해 대다수의 사람들을 반복되는 일상 속의 돌파구로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지금 여행에 대한 생각에 결론을 내리면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꿈꾸지만 가지 못하기에 가고 싶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20대를 벗어나 30대가 된 후 백수로 지내는 시간에 해외까지는 아니더라도 원하면 여행을 할 만큼의 형편이 되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여행을 몇 번 다녀 본 결과 나는 여행을 내가 생각한 만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집에 있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집순이 기질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여행에 대한 큰 기대감 때문인 것도 같다. 여행을 다녀오면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건 없다. 막상 다녀오면 잠을 잘 못 자서 피곤해져 있고 짐을 풀면 정리해야 할 것과 빨래만 산더미이다. 여행을 좋아하기에는 나는 너무 현실주의에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진 건 다른 사람이 숨 가쁘게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들은 탓이기도 하다. ‘그 여행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게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내가 20대 때 그랬듯 짧은 기간에 떠나서 빈틈없는 계획으로 여행을 다녀온 경우의 이야기였다. 여행을 의무로 다녀와서 추억을 만든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꽤 고생을 한 것으로 보여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생각보다 자주 들었다. 물론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여행에서 얻은 것이 분명히 있겠지만 여행이 주는 여유로움의 느낌은 빠진 것 같아서 부럽지는 않았다. 어떤 자기 계발이나 생활의 일탈과 경험을 여행으로만 해결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TV에서 본 강연 프로그램에서 한 강연자분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좋은 옷을 사면 한 달간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지만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면 평생 이야기할 거리가 생긴다.” 똑같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 정말 공감했었다. 여행이 개인에게 주는 경험과 감동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도 물론 여행을 가서 보았던 아직도 눈에 선한 경치와 그곳에서의 경험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평생의 추억거리를 가진 것이 확실하다.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많이 보았다. 그런 것으로 인해 생각지 않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되기도 했다. 여행은 즐거움도 주지만 많은 생각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행만이 본인의 스토리를 갖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친구와 혹은 가족과 쇼핑만 가더라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여행을 다녀왔다.’, ‘옷을 샀다.’하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 스토리를 주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하면 자신이 있는 곳에서 주변을 돌아보더라도 스토리와 경험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도 늘 떠날 형편에 있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정신승리라고 해서 부족함이 있거나 모자라지 않다. 카페인이 빠진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도 커피를 마신 것과 다름이 없다. 대체할 수 있는 본인만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 평범한 생활을 환기시키고 싶으면 ‘여행을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 배울 때가 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이긴 하지만 충분히 대안이 된다.


현재를 백수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매일 떠날 수도 없고 떠나지도 않는다. 시간이 있어도 여행을 하지 못하는 신세한탄을 하기보다 내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에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 항상 집에 가던 길을 조금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 좋아하지 않아서 접하지 않았던 장르의 책이나 영화를 볼 수도 있다. 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를 가진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여행을 한 것과 다름없는 경험의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꼭 시야와 견문을 넓히는 방법이 여행만은 아니다. 여행이 아니어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어제보다 오늘을 오늘 보다 내일을 새로운 날로 만들려고 스스로 노력하면 그 또한 좋은 경험이 되기 부족하지 않다.

백수라는 기간도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시간에 많은 색다른 날들을 위해 노력한다면 여행이 주는 경험보다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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