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먹물색
자려고 누었다가 일어나기를 여러 번 '에이씨' 혼잣말을 하며 다시 일어나 앉았다.
책을 볼까? 명상을 할까? 바느질을 할까? 게임을 할까? 영화를 볼까? 잠이 안 오면 뭐 졸릴 때까지 딴짓을 하면 되지 왜 자꾸 자려고 해? 내일 출근할 것도 아니고...
문제는 늦게 자는 것이 아니고 잠이 들기까지 온갖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난장판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자고 새벽녘에 어설픈 잠을 자고 나면 하루가 너무 힘들다.
몸이 피곤하면 정신이 맑지 않아서 무엇을 해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일이 뜻되로 되지 않아 짜증이 묻어난다.
괜스레 별것 아닌 일에도 버럭질을 하고, 평소 같으면 쉽게 넘어갈 일도 돌부리에 발끝이 차여 넘어지는 모양새의 하루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12시 넘으면 자는 것을 루틴으로 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갱년기의 증상 중 하나가 불면증이다. 가끔 수면제 비슷한 것을 먹고 자기는 하는데 그렇게 자는 잠은 편안하지가 않다. 그냥 늘어지는 느낌. 몽롱한 의식 같아서 싫다. 나는 사는 동안 편안한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약들을 망설임 없이 삼키는 편이다. 여행을 갈 때도 먼저 챙기는 것이 약봉투이다. 이런 나를 딸은 약쟁이라고 놀릴 때도 있다
오래 사는 것보다 삶의 질에 중심을 두고 살다 보니 당장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왜 자꾸 잠을 못 자는 것인지 아이러니했다.
가끔은 유튜브로 아주 지루한 내용의 책 읽어주는 것을 듣거나, 빗소리를 틀어놓고 잠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한번 시작된 불면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미세먼지처럼 뿌연 머릿속에 심심한 것을 못 참는 심술쟁이가 들어있나 보다 그러니 자기 심심하다고 나를 재우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잠시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서면 두려울 때가 있다. 똑같은 터널이어도 멀리나마 출구 보이면 괜찮은 데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은 가다가 지친다. 불면증에 대한 느낌이 이렇다. 빔 새도록 불면증과 씨름을 하고 동트는 것을 보며 어설픈 잠이 들 때 그때의 마음이 아주 긴 터널을 터벅터벅 걷다가 지쳐 쓰러진 느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