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절의 작은 해프닝

실험실에서 몬스테라 알보를 꿈꾸다

by 루인

추운 겨울이 되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풍경이 다시 일상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3년 전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있었던 작은 해프닝 하나가 떠오르곤 한다.


강의실도 연구실도 텅 비어 있었고, 서로의 근황을 온라인으로만 확인하던 그 시절.

사람의 발소리보다 알림음이 더 익숙했던 그 특유의 공기 속에서 이 사건은 조용히 시작되었다.


몬스테라 알보, 'Albo Variegata'

한창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가 유행하면서 식물을 기르는 일도 함께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일부 식물들은 마치 네덜란드의 튤립 열풍처럼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흰색 무늬가 들어간 몬스테라 알보 하나가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 가까이 거래될 정도였다.


당시 우리 실험실에도 ‘혹시나… 정말 될까?’ 하는 작은 기대가 살짝 피어올랐다.

일반 몬스테라 화분은 기껏해야 천원에서 이천원 안팎이니, 여기에 방사선을 쐬어 돌연변이를 만든다면?

운이 좋으면 몬스테라 알보 같은 무늬 변이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여기서 잠깐, ‘방사선’이라는 단어에 놀랐을 독자를 위해 덧붙이자면, 이러한 방사선 유도 돌연변이 기술은 식물 육종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온 안전한 방법이며, 방사선은 처리 후 식물에 남지 않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결국 우리 실험실은 복권보다는 조금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복권과 다를 바 없이, 단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문제는 실험이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살아남은 30개의 몬스테라 화분은 온실 공간을 차지하며 푸른 잎을 활기차게 펼치고 있었고,

우리는 순식간에 이 모든 화분을 떠안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우리는 이 튼튼한 골칫덩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몇 개의 화분만 남기고 대부분을 폐기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설명해도, 방사선 처리 경험이 있는 이 튼튼한 친구들을 판매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다른 실험실에 몬스테라 화분 나눔합니다(방사선 처리 경험 있음)’이라고 적어 나누어 주었다.


며칠 동안 실험실 문 앞에는 몬스테라를 들고 떠나는 사람들의 작은 행렬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누어 주고도 몇 개는 남았고, 그중 하나는 아직도 우리 실험실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웃긴 실험으로 끝났지만, 사실 방사선 유도 돌연변이는 농업에서 꽤 흔한 품종 개발 방법이다.

우리가 먹는 빨간 속의 자몽, ‘루비 자몽’도 방사선에 의해 만들어진 변이 중 하나다.

이는 한때 ‘원자의 아이들(Atoms for Peace)’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었던 국제 농업 연구의 산물이기도 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방사선이 위험하다는 대중적 오해를 줄이고,

안전한 강도의 방사선을 이용해 새로운 농작물 품종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루비 자몽은 그러한 실험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오늘날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먹는 과일 속의 붉은색은 “결코 위험하지 않은 방사선 덕분에 탄생한 돌연변이”인 셈이다.


이처럼 방사선 유도 돌연변이는 위험한 기술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검증되어 온 식물 육종의 한 방식이다.

우리 실험실의 몬스테라 알보 도전은 웃음거리로 끝났지만,

돌연변이를 통한 품종 개발이라는 분야 자체는 지금도 농업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식물은 우리의 욕심만큼 빠르게 변하지 않지만,

그 느린 속도가 오히려 자연이 건네는 가장 큰 안심일지도 모른다.

빠르게 변하길 바랐던 건 우리였고, 식물은 늘 그렇듯 자신만의 속도로 자라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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