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딧물로부터 시작된 우연

모자이크 바이러스와 식물의 기묘한 무늬

by 루인

오늘 기르던 식물을 확인해 보니 깍지벌레와 진딧물이 생겨 잎이 말라가고 있었다.

바로 벌레를 잡았지만, 잎은 이미 시들어 있었다.


하필 벌레가 생긴 식물이 무늬잎이라, 평소보다 더 연약했던 것이 이유였던 것 같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병약함을 은근히 연결 짓곤 한다.


식물에서도 비슷하다. 때로는 건강한 식물보다 병에 걸린 식물이 더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식물의 잎을 보면, 가끔 누군가 일부러 무늬를 그려놓은 듯 밝고 어두운 부분이 모자이크처럼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얼핏 보면 아름다운 변이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모자이크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침입자가 있다.

바이러스가 식물 세포에 파고들어 엽록소 생성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잎이 패치워크 같은 얼룩덜룩한 무늬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을 사람들은 '모자이크'라고 불렀고, 식물은 이 바이러스가 만든 무늬를 지닌 채 살아간다.

이러한 현상은 식물 병리학에서는 병징으로 분류되지만,

인간의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소비되곤 한다.


흥미롭게도, 이 바이러스가 만든 무늬가 우연히 심미적 가치와 연결되며

희귀한 ‘무늬 식물’로 재평가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설계한 것도, 인간이 의도한 것도 아닌 그 불규칙한 패턴이

어느 순간에는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은 언제나 기묘하다.


셈퍼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

그런 의미에서 라벨에 적힌 ‘바이러스 프리(virus-free)’라는 문구는,

농가와 연구자들에게는 분명한 장점이지만,

어떤 수집가들에게는 매력이 사라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실험실에서 내가 처음으로 모자이크 병징을 가진 식물을 접했던 날도 떠오른다.

선배가 “이건 병이라서 버려야 해”라고 말하는데, 정작 내 눈에는 잎맥을 따라 번진 희고 연한 초록빛의 얼룩이 묘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그때는 그 무늬의 근원이 바이러스라는 사실조차 몰랐기에, 그저 자연이 만들어낸 하나의 변주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모르는 게 때로는 약이라는 말처럼, 바이러스는 식물의 대사를 교란하며 잎의 색소 분포를 비틀어놓고,

그 결과 우연한 미학적 효과가 나타난다.


즉, 아름다움을 만든 것은 자연이 아니라 병이고,

그 병은 결국 식물을 약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모자이크를 봐도 아름답다는 생각 이전에 병이라는 생각만 들뿐,

처음 자연의 변주곡을 봤을 때의 감동은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는 여전하다. 인간은 병으로 인해 생긴 무늬에 매료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희귀성을 이유로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마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튤립이 오히려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던 것처럼.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셈퍼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이다.

모자이크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붉은색과 흰색이 섬세하게 그려진 그 꽃은

당시 가장 비싼 튤립으로 기록될 만큼 신비로운 무늬를 지녔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병이 만든 우연의 산물이었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곁눈을 통해 개체를 증식하는 튤립에서, 바이러스에 걸린 튤립의 구근은

건강한 튤립보다 곁눈이 훨씬 적게 생성되었고, 그마저도 약해 개체수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웠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 비극적인 아름다움이 결국 스스로의 멸종을 불러왔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그 무늬가 병의 결과라는 것을 몰랐기에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농가도, 수집가도, 병든 구근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번식도 어렵고, 감염 위험도 높으며,

무엇보다도 '병'이라는 인식이 결정적이었다.

그 결과 셈퍼 아우구스투스는 서서히 시장에서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그림과 기록 속에만 존재한다.


식물이 고통받는 과정에서 태어난 무늬가 인간 사회에서는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씁쓸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해충 피해로 시들어버린 내 무늬식물의 잎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식물이 병들어 변화한 모습 속에서 인간은 어떤 의미를 읽어내고,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의미를 어디까지 확장해도 되는가.

우연과 욕망, 병과 아름다움이 뒤엉킨 지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어쩌면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인간 자체를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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