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지대가 없었던 식물

완두콩과 유전법칙

by 루인

누구나 과학 시간에 멘델의 유전법칙과 완두콩(Pisum sativum)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완두콩의 꽃 색, 씨앗의 모양, 그리고 그 비율들. 이 조합은 너무 익숙해서, 더 묻지 않게 된다.


하지만 멘델이 왜 하필 완두콩을 골랐는지,

그리고 그 식물이 어째서 유전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데 유난히 적절했는지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전은 본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유전자와 염색체, 염기서열을 ‘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그 결과일 뿐이다.

유전 그 자체가 형태로 곧바로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완두콩, Otto Wilhelm Thomé, Flora von Deutschland, Österreich und der Schweiz, 1885

대부분의 식물에서 형태는 쉽게 흔들린다.

키는 자라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잎의 크기와 모양도 빛과 수분, 토양 조건에 따라 변한다.

색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종 안에서도 식물은 놀랄 만큼 다양한 얼굴을 만들어낸다.


분류학은 오랫동안 눈에 보이는 것들로 세계를 나눠왔다.

분자도, 염기서열도 없던 시절에 식물은 오직 형태로만 구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형태가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하는 형질은 종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분류학자들은 보이는 것들 중에서도 다시 한번 골라야 했다.

잘 흔들리는 형질은 밀어내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형질만을 남겼다.

형태를 본다는 것은 겉모습을 그대로 믿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보지 않을지를 선택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런 선택의 축적 위에서 식물의 이름과 경계가 만들어졌다. 형태는 완전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래 살아남은 언어였다.


분류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형태를 쉽게 믿지 않는 법부터 배웠다.

같은 종 안에서도 식물은 얼마든지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차이는 종종 환경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현호색을 처음 자세히 관찰했을 때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같은 종으로 분류되는 개체들이었지만, 어떤 것은 잎이 가늘고 길어 마치 댓잎처럼 보였고,

어떤 것은 넓게 퍼진 잎을 가지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는 서로 다른 식물처럼 느껴질 만큼 차이가 컸다.


그때 나는 형태가 언제나 유전을 곧바로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분류학에서 형태를 다룬다는 일이 얼마나 많은 판단과 보류 위에 서 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완두콩은 꽤 낯선 식물이다. 완두콩의 형질은 중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꽃은 보라색이거나 흰색이었고, 씨앗은 둥글거나 주름졌다. 그 사이의 회색지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 불연속성은 중요했다. 형태가 명확히 갈라지는 순간,

유전은 추정의 대상이 아니라 구분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설명하기 전에 이미 나뉘어 있었고, 계산하기 전에 눈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완두콩은 유전의 원리를 말하지 않았지만, 유전이 보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완두콩이 특별했던 이유는 유전법칙을 밝혀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형태라는 오래된 언어가 잠시나마 유전과 정확히 겹쳐졌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식물에서 형태는 흔들린다.

그래서 분류학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형태는 늘 불완전한 기준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형태를 본다. 보고, 비교하고,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두콩은 형태가 언제나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다.

다만, 형태가 때로는 충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가능성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완두콩 이후의 대부분의 식물들은 다시 형태와 유전 사이에서 어긋났고, 형태는 다시 한번 조심스러운 언어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분류학은 형태를 버리지 않았다.

버릴 수 없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가장 먼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훨씬 더 많은 것을 측정할 수 있고, 유전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식물을 처음 마주할 때, 우리는 여전히 잎의 모양과 꽃의 색을 먼저 본다.

형태는 설명 이전에 도달하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 드문 순간이 있었기에, 보이지 않던 유전은 처음으로 사람의 언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형태는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문턱을 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이전 19화같은 겨울, 다른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