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바라보는 자리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시간

by 루인

연구실에서 식물을 본다는 건, 생각보다 조용한 일이다. 현미경 아래에서 펼쳐진 구조는 늘 같은 자리에 있고, 그 앞에 앉는 사람만이 조금씩 변한다.

식물은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오늘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이번 계절에 이해하지 못해도, 그 사실로 상처받는 일은 없다. 식물에게는 늘 다음 시간이 있다.

표본 봉투를 열 때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식물은 채집된 이후로 누군가의 책상 위에서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몇 번이나 다시 꺼내졌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들어갔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식물은 변하지 않았을 텐데, 사람 쪽에서는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연구를 시작할 때는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모르는 것은 언젠가 알게 되고, 분류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자리를 찾을 거라 믿었다. 그 확신은 지금은 없다. 하지만 한 걸음씩 쌓아온 것들이 언젠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닿을 거라는 믿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식물의 시간은 늘 사람보다 앞서 있다. 발아는 조건이 맞을 때만 일어나고, 개화는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그 속도를 조절할 수 없는 쪽은 언제나 사람이다.

가끔은 그 사실이 위로가 된다. 지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 일이 실패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아직 이름이 붙지 않았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식물을 오래 보다 보면 완성보다 미완에 더 익숙해진다. 결론이 아닌 상태로 남아 있는 것들, 판단이 유보된 채 보관함에 들어간 표본들, 그리고 다시 꺼내질 가능성만 남은 기록들.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법을 식물에게서 배운다.

연구자는 결국 식물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식물의 속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현미경을 덮는다. 하지만 그 일이 어제보다 나쁜 선택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식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시간은 아직 남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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