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뿌리혹벌레 이후의 포도
뿌리가 다른 나무는 농업에서 그다지 낯선 존재가 아니다.
대목이 바뀐 과일나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하다.
같은 품종의 가지를 올렸어도 어떤 뿌리를 빌렸는지에 따라 나무의 성질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게 열린 열매는 분명 같은 품종의 열매지만, 어딘가에서 미묘하게 다르다.
나무는 살아남았지만 그 생은 더 이상
처음의 조건과는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순수한 나무라는 개념은 아마도 식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완전히 다른 식물의 뿌리와 가지를 이어 붙였을 때,
그 나무를 이전과 같은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지,
아니면 전혀 다른 존재라고 말해야 할지 우리는 쉽게 결론 내리지 못한다.
식물은 그 질문을 현실에서 살아낸다.
뿌리와 줄기가 다르고 기원이 다른 조직들이 하나의 몸을 이루어도
그 나무는 계절을 건너가고 열매를 맺는다.
같다고도, 다르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상태로 그저 살아간다.
유럽의 포도도 그런 선택을 했다.
19세기 후반, 포도뿌리혹벌레(Phylloxera)가 유럽 전역의 포도밭을 휩쓸었을 때
병은 단지 몇 그루의 나무를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잎이 조금 작아지고, 열매가 덜 맺히고, 생장이 이유 없이 늦어졌다.
그래도 줄기는 여전히 푸르게 서 있었고 포도는 여느 해와 다르지 않게 달려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변화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땅속에서는 작은 곤충이 뿌리를 갉아먹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수분과 양분이 오르내리는 통로가 조금씩 무너졌고,
나무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힘을 잃었다.
포도밭은 그렇게 위에서부터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무너졌다.
눈에 보이는 줄기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가 먼저 상했다.
그 사실이 분명해졌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나무가 회복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있었다.
포도밭은 뿌리부터 무너졌고,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품종과 지역의 이름들이 한순간에 흔들렸다.
처음에는 병을 막으려 했다. 약을 뿌리고, 토양을 바꾸고, 해충을 제거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포도뿌리혹벌레는 사라지지 않았다.
땅속에서 뿌리를 갉아먹는 작은 곤충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포도의 생을 조금씩 끊어냈다.
결국 유럽이 택한 방법은 병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땅속 깊이 숨어 있는 곤충을 모두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선택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기울었다.
병에 강한 뿌리를 빌리는 것.
북아메리카의 포도종은 그 곤충에 비교적 저항성을 가지고 있었고,
유럽의 포도는 그 뿌리 위에 자신을 올리는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접붙이기는 농업에서 흔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 의미가 달랐다.
한 대륙의 뿌리를 다른 대륙의 땅 아래에 심고,
그 위에 수 세기 동안 이어진 품종의 가지를 얹는 일.
전통을 지키기 위해 전통이 아니었던 것을 받아들이는 선택이었다.
땅 위에는 여전히 Vitis vinifera의 줄기와 열매가 자라고,
품종의 이름도, 지역의 명성도 유지되었다.
그러나 땅 아래에는 다른 기원을 가진 뿌리(Vitis labrusca)가
그 생을 떠받치고 있었다.
보이는 부분은 예전과 같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은 이미 달라진 뒤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포도를 여전히 같은 품종의 포도라고 부른다.
지역의 이름도, 와인의 이름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라벨에는 익숙한 단어들이 적히고, 사람들은 그 와인을 전통의 연장선 위에서 마신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바뀌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같은 포도라고 부른다.
열매의 맛이 비슷하고 줄기의 모습이 같다면 그 나무는 여전히 그 나무일 것이라고 믿는다.
뿌리가 달라졌다는 사실은 향과 맛보다 덜 중요하게 취급된다.
어쩌면 우리가 ‘같다’고 말할 때 지키고 싶은 것은
식물의 구조가 아니라 그 위에 쌓아 올린 기억과 의미인지도 모른다.
보이는 부분이 유지된다면 보이지 않는 변화는 조용히 배경으로 물러난다.
그러나 식물은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나누지 않는다.
뿌리와 줄기는 서로의 조건이 되고,
한쪽이 바뀌면 다른 쪽도 같은 방식으로는 자라지 않는다.
같은 품종이라 불리지만, 그 생은 이미 다른 토대 위에서 이어지고 있다.
포도뿌리혹벌레는 유럽의 포도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다.
대신 포도라는 존재의 기준을 조금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그 변화를 위기 극복이라 부를 수 있고,
지혜로운 선택이라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이후의 포도는
이전과 완전히 같은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나무를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보이지 않는 변화 위에서도 익숙한 말을 계속 사용한다.
아마도 우리가 ‘같다’고 말할 때, 지키고 싶은 것은 식물의 구조가 아니라
그 위에 쌓아 올린 기억과 의미이기 때문일 것이다.
포도는 그렇게 다른 뿌리를 딛고도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