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와 나무고사리
최근에 뉴질랜드에 갈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정말 다양한 식물을 보았지만,
그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나무고사리를 떠올릴 것이다.
이중 내가 본 것은 뉴질랜드의 은나무고사리(Cyathea dealbata)였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나무고사리(Dicksonia)와는 또 다른 계통이다.
잎 뒷면이 은색을 띠는 것으로 다른 나무고사리와 쉽게 구분이 가능하고,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물이기도 하다.
내가 이식물을 처음 본 곳은 수목원 안쪽, 일부러 그늘지고 습하게 조성해 둔 공간이었다.
햇빛은 위에서 잘게 부서져 내려왔고, 공기는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냄새와 식물의 숨이 섞인 향기가 따라왔다.
마치 짧은 통로를 지나 다른 시간대로 들어선 듯한, 원시림을 흉내 낸 공간이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야자수를 닮은 듯 줄기를 세우고 있었지만, 잎은 분명 내가 아는 고사리의 모양이었다.
부채처럼 넓게 갈라진 잎, 끝이 부드럽게 말려 올라가는 어린잎의 형태.
교과서나 과학 잡지에서 보았던 중생대의 삽화 속, 공룡 곁에 서 있던 양치식물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잠시 고민이 필요했다.
야자수인가, 고사리인가.
높이는 나무였고, 잎은 고사리였다.
그리고 곧 알아차렸다.
이 식물이 바로 뉴질랜드에서 유명한 나무고사리 종류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그 직전의 망설임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범주가 잠시 작동을 멈추던 순간.
이건 조금 사족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고사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대칭적으로 펼쳐지는 잎의 질서도 좋고,
산 사면을 따라 군락을 이루며 지면을 덮는 모습도 좋다.
이끼가 덮인 전석지 사이로 조심스럽게 잎을 펼친 풍경을 보고 있으면,
평소의 숲이 아니라 훨씬 오래된 시간, 먼 과거의 원시림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곤 했다.
고사리는 늘 그런 식으로 기억되었다.
땅을 따라 번지고, 바위에 기대어 자라고,
낮은 자리에서 숲의 바닥을 채우는 식물.
도감 속 사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잎의 모양과 포자의 배열은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지만,
그 높이는 언제나 내 허리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숲에서 만난 고사리들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내 머릿속에서 고사리는 이미 자리를 배정받은 식물이었다.
나무는 위에 있고, 풀은 아래에 있다.
고사리는 그 아래쪽에 속하는 존재.
키는 곧 자리를 의미했고, 자리는 곧 식물의 성질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숲에서 흔히 보는 고사리와 달리, 이런 나무고사리들은 별도의 무리로 분류된다.
환경이 허락하면 줄기를 세워 수 미터까지 자라며, 숲의 한 층을 이루는 계통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놀라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설명이 붙는다고 해서, 내 안에 굳어 있던 이미지가 곧바로 수정되지는 않았다.
나무고사리는 내가 정해둔 위계를 조용히 흔들어 놓았다.
풀이라고 생각했던 식물이 숲의 중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래에서 고개를 들어야 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식물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식물을 바라보는 틀이 고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나는 각 식물마다 하나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고사리는 낮고, 나무는 높고, 풀은 작고, 덩굴은 기대어 오르는 존재라고.
그 이미지는 너무 익숙해서, 마치 식물의 본질처럼 느껴졌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식물조차
나는 어느새 정해진 틀 안에 두고 있었던 셈이다.
나무고사리는 그 틀을 조용히 부쉈다.
그래서 나는 더 오래 바라보았고, 더 크게 감탄했고,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그 숲을 떠난 뒤에도 나무고사리를 자주 떠올렸다.
높이 자란 고사리의 모습보다도, 그 앞에서 느꼈던 낯섦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식물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는 내가 익숙해진 모습을 반복해서 확인해 왔을 뿐인지도 모른다.
자주 본 장면을 기준으로 삼고,
그 범위를 벗어나는 모습은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것으로 여겼다.
식물은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달라진 것은 내가 식물을 놓아두던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모습들 역시,
어딘가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로 서 있지 않을까.
나는 이제 가끔 멈춰 묻게 된다.
내가 익숙하다고 부르는 것들, 당연하다고 여겨온 풍경들 속에는
아직 내가 보지 못한 크기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