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by 청비

그녀는 마당 가득 좋아하는 튤립을 심었다.

서서히 겨울이 사라지자 꽁꽁 언 바닥에서 연두빛 새순이 돋아났다.

뾰족이 고개를 내민 새순은 봄 햇살을 만끽하며 파릇파릇 마당을 메워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봉우리를 맺고 꽃을 피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알록달록 색이 다른 꽃 봉우리들을 볼 때마다

그녀는 설렜다.

만개한 튤립을 상상하며 그녀는 코를 킁킁거렸다.

튤립 향기를 맡는 사소한 일만으로도 그녀의 하루는 충분히 행복했다.


튤립이 새순을 틔우고 봉우리를 맺고 드디어 만개했다.

마당 가득 행복이 아름답게 피어났다.


꽃이 지기까지 그녀의 봄은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그녀의 눈에 그녀의 코에 그녀의 마음에

튤립이 피어났으므로


시간이 흘러 서서히 꽃이 시들어갔고 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사그라지기 전에 그녀는 생각했다.

한 해를 기다리면 내년 봄엔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튤립이 사라진 자리, 공허함이 맴돌았다.

그녀의 바쁜 일상으로 튤립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졌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났다.

온 세상이 다시 푸른빛으로 맴돌았고, 햇살이 따스했다.


꿈틀꿈틀 봄이 기지개를 켜자,

그녀는 아주 오래 전 연인의 이름을 떠올리듯 튤립이 생각났다.


그녀의 마당에 다시 튤립이 피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땅 속에 박힌 튤립 구근은 봄이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걸까?

튤립이 피고 진자리 , 봄바람만 나뒹굴고 있다.


그 해 봄, 그녀의 마당에 튤립은 피지 않았다.

아무래도 튤립 구근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다시 한 해가 지나고 그녀의 마당에 새순이 돋아났다.

다시는 못 볼 거라고 아쉬워하며 떠나보냈던 튤립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당 가득 완벽하게 아름다운

전보다 더 완벽하게 아름다운 꽃이 가득 피어났다.

튤립의 향기가 그녀의 코를 지나 마음까지 전해졌다.


그녀의 마음은 온통 봄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한 해를 걸러 피는 꽃도 있다고

우리 삶도 다 끝났다고 좌절하고 포기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희망이 찾아오기도 한다고


애걸복걸 애태우고 목매지 않아도

어느 날 갑자기 피어나기도 하는 게 인생이라고.


인생은 그렇게 피었다 시들고

겨울 속에 어둠속에 갇혔다 다시 봄을 향해 일어서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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